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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돈키호테와 수구냉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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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돈키호테와 수구냉전 정치

김민웅의 세상읽기 <22>

아더 왕은 <원탁의 기사>를 이끄는 수장이었습니다. 그와 또 다른 기사 랜슬럿의 우정과 애증의 사연은 아더 왕 이야기에 흥미진진함을 불어넣습니다. 그가 나사렛 예수가 마신 성배를 찾아나서는 모험의 과정은 여기에 전설적 신비를 더해주기도 합니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전쟁과 권력의 쟁투 속에서 그는 사자와 같은 기세를 가진 영웅으로 빛나는 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반면에 돈키호테는 슬픈 사나이입니다. 라만차에서 온 남자, 또는 기사로 알려진 그는 이미 낡은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자신을 환상의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그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기사의 시대는 이제 석양의 지는 해와 더불어 끝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적을 무찌르고 용맹스럽게 귀향하는 꿈으로 가득 찬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하주유의 낭만을 즐기는 자가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고달픈 것은 그런 주인을 등에 모시고 다니는 로시난테입니다. 더군다나 돈키호테는 그의 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갑을 두르고 장수의 위용을 과시하려 합니다. 로시난테는 앙상하고 비루먹은 말에 불과한데 돈키호테는 로시난테를 적토마쯤으로 여기고 돌진 명령을 내리기에 바쁩니다. 풍차를 거인으로 여기고 그리로 달려가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전투의지를 불사르면서 풍차를 공격한 돈키호테와 로시난테는 그 풍차에 휘말려 공중에 날아갔다가 추락하고 맙니다.

중세는 끝났고 기사의 용기와 담력보다는 부르조아의 계산이 세상을 주도하는 때가 된 것을 돈키호테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종자가 된 농부 산초는 세상이 달라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에게 충직한 마음을 아직은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광인(狂人)의 행동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돈키호테에게서 산초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의 생각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605년 세르반테스가 출간한 이 소설은 원제가 “영민한 신사, 라만차의 돈키호테”였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모았고, 독자들마다에게 각기 다른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중세의 낭만에 대한 아쉬움의 기억으로, 혹자에게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느새 지나버린 시절의 틀 속에 갇혀 사는 존재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풍자로 읽혔다는 것입니다.

풍차는 평화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전투로 살아가는 기사와 풍차의 번성은 서로 대치합니다. 그 풍차는 그래서 낡은 시대를 붙잡고 사는 기사에게는 넘어서야 할 거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외면해버린 시대에 항거하여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은 그 풍차를 공격하여 무너뜨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러한 공격은 허망해질 뿐입니다. 바람이 불면 풍차는 돌고 돈키호테와 로시난테의 운명은 추락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돈키호테에게 아직도 애정을 가진 산초에게 이러한 현실은 그저 비극적이기까지 합니다. 라만차에서 온 늙은 기사는 시대의 바람이 바뀌고 있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신의 용감무쌍한 돌진으로 역사를 거꾸로 되돌릴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믿음이 그의 비극의 씨앗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낡은 복장과 낡은 전술로 슬픈 돈키호테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 무대 중앙에서 찬란한 영광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산초의 안타까운 눈빛입니다. 돈키호테는 그나마 세상을 바로잡고 의를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라만차의 사나이들은 도대체 가슴에 무엇을 품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도리어 마음을 다져 힘을 내야 할 바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엉뚱한 돌격 명령에 사로잡힌 세태, 세르반테스가 자신의 소설이 아직도 읽히고 있는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네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그런 꿈, 이루어내는 맑은 용기와 아름다운 의지 아닐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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