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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베리건 그리고 팔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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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베리건 그리고 팔루자

김민웅의 세상읽기 <21>

필립 베리건 신부.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8년, 여덟 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메릴랜드 주 캐톤즈빌의 징집영장 관리소에 잠입하여 베트남 전 참전 징집영장을 불에 태워버립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당연히 이들 주모자들은 모두 국가문서 훼손죄로 구속, 형을 살게 됩니다.

베리건 신부는 “베트남이 불타고 있다”면서, “징집영장을 소각시키지 않으면 베트남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라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그는 징집영장을 태운 것은 누구의 목숨도 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희생당할지도 모를 미군과 베트남 인들의 생명을 함께 구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교할 수 없이 우세한 화력과 물량공세, 그리고 전략의 과학성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패전이었습니다. 베트남 민중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비판 그리고 미국사회 내부의 비폭력 불복종 방식의 반전평화 운동으로 인해 미국은 베트남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971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관련 비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한 죄로 이후 재판을 받았다가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던 미 국무부 소속 고위관리였던 다니엘 엘즈버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하바드 경제학박사 출신의 전도양양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엘즈버거는 애초에 베트남 전쟁의 목적에 대하여 미국 정부가 주장했던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국무부 관리로서 베트남 현장에 가서 본 현실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는 번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에 “아 이 전쟁이 참 문제가 많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전쟁에서 발을 빼지 않으면 미국은 어려움에 처하겠구나”라고 생각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이 전쟁은 범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그로 하여금 <펜타곤 페이퍼>라는 기밀문서를 빼내어서 공개하도록 만들었고, 당시 미국 대법원은 그의 행동이 국가의 안보를 해친 것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용기와 진정한 자유에 대한 헌신이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다니엘 엘즈버거의 최근 회고록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의도로 지켜지고 있는 국가기밀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잘못된 국가적 선택을 중단시키고 무수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상상할 수 없이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는 누가 옳았는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팔루자 총공세 이후, 미국사회 내부와 세계의 비판여론이 비등해지고 있습니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대량희생은 물론이고 한 이라크 포로에 대한 확인사살 장면이 공개되면서 팔루자 공세의 이면에 대한 보다 깊고 진실한 성찰이 요구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군 당국조차도 팔루자에 대하여 점령은 했으나 정복하지 않았다고 시인할 정도로 사태는 험악합니다. 게다가 팔루자를 이렇게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한, 이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총을 겨누는 일은 아마도 중단되지 못할 것입니다. 대량살상 무기도 없었고 테러조직과의 연계도 없다는 것이 밝혀진 이라크에 대한 이러한 전쟁행위가 이대로 계속 용납되어야 하는 것인지 세계의 양심은 묻고 있습니다.

곧 또다시 파병연장 동의안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불타오르고 있는 팔루자의 현실 앞에서, 그리고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요? 혹 우리를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까요? 진정 얼마나 많은 세월이 가야 저 푸른 바다를 향해 나는 갈매기가 포성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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