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교사였던 이슈마엘은 바다에 대한 꿈과 모험심으로 포경선 피쿼드(Piquod)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바다는 생각 이상으로 거칠었고, 그가 맡게 된 임무는 종적을 알 수 없는 괴물에 가까운 존재를 찾아나서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의족으로 한 선장 아합은 그 배가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을 포획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고래를 발견한 자에게는 스페인 금화를 보상으로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허만 멜빌(Herman Melville)이 1851년 발표한 흰 고래, 또는 백경(白鯨) 이야기는 바로 이 선장 아합의 고래사냥 의지로 그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슈마엘은 이 작품의 증언자로 등장합니다.
아합 선장의 “모디 빅(Moby Dick)” 찾기는 거의 광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다리가 그 고래에 의해 절단된 것에 대한 복수로부터 기인했던 것이며, 피쿼드 선의 선원들은 선장의 이러한 생각에 하나하나 물들어 갔습니다. 아합은 피쿼드 호의 독재자였고, 그러한 그의 지도체제에 대하여 그 누구도 반기를 들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태평양을 지나 일본해까지 이르기도 했던 포경선은 영국 선박을 만나 백경잡기를 포기하라는 권고를 받습니다. 그 배도 포경선으로서 영국 선장 자신도 모디 빅을 잡으려 했지만 막대한 피해만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위험하다는 이야기였지만 아합은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러한 아합의 완강한 자세에 대하여 오로지 선원 스타벅만이 도전을 할 뿐이었습니다. 스타벅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선장 아합의 개인적 복수심과 야망에 피쿼드 호 선원들을 희생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피쿼드 호 선원들은 아합의 논리를 자신의 논리로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들의 인생 전체에서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양 생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모디 딕을 발견한 아합은 3일간의 치열한 사투를 치르게 됩니다. 모비 딕의 옆구리에 작살을 꽂은 아합은, 그러나 그 작살을 이은 밧줄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피쿼드 호는 아합의 운명과 다를 바 없이 깊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맙니다. 이슈마엘은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하여, “바다는 5천 년 전에 그랬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넘실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선원들을 삼킨 모비 딕의 바다는 헛된 야망과 이에 그대로 굴복하고 만 자들의 무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허만 멜빌의 이 작품이 세간의 주목을 보다 집중적으로 받게 된 것은 이 책이 출간되었던 시기보다 훨씬 더 지난 1차 대전의 시기였습니다. 모비 딕을 잡겠다는 것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야만적 쟁투가 어떤 몰락의 비극을 낳게 될 것인지를 일깨운 메시지가 시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비극을 막아내는 것은 스타벅과 같은, 아합의 전제적 시스템에 도전하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이 허만 멜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모비 딕을 목표로 움직였던 모든 이들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합은 모비 딕의 허리에 작살을 꽂았지만, 그것으로 도리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자초하고 맙니다. 바다 속의 그 거대한 백경은 포획의 대상이 아니라 그 바다의 힘 그 자체인 것을 깨닫지 못한 결과입니다.
미국인 절반이 왜 부시가 당선되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겠노라고 비탄과 회의에 빠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마치 누군가를 악으로 지목하여 포획해야 할 모비 딕으로 삼아 피쿼드 호의 선원들을 모두 그 포경작업에 끌고 가는, 백경의 아합과 겹쳐 보이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닌 듯 합니다. 단 하나의 생존자 이슈마엘이 목격한 포경선 피쿼드 호 최후의 장면은 바다의 논리를 거부하고 아합의 명령에 순응한 이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아합이 중도에서 마음을 돌이켰다면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선장 아합 자신과 피쿼드 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합을 거부할 수 있는 선원들의 몫이었던 것입니다.
모래시계에 나와 유명해진 Iosif Kobzon의 Cranes(백학)에는 이러한 가사가 등장합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전사하여 백학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애원합니다.”
허만 멜빌이 보여준 그 무겁고 깊은 바다 위로 지금도 백학이 날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학들은 도대체 우리들에게 무엇을 애원하고 있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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