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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유령과 진보정당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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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유령과 진보정당의 위기

[기고] 통합진보당, 새로운 변화를 찾아야

1884년 영국에서 사회의 진보적 개혁을 주장하는 페이비언협회가 탄생했다. 페이비언협회는 사회정의를 주장했지만, 자유당의 개혁보다 진보적이었다. 최저임금제, 보편적 의료서비스, 세습적 상원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처럼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반대했다. 페이비언 협회는 의회를 통한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초기 페이비언협회를 주도한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 부부는 1900년 노동당의 창립을 주도했다. 페이비언협회는 독일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함께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는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을 주도했다. 사회정의와 평등과 함께 대의민주주의, 법의 지배, 인권은 진보적 가치로 수용되었다.

오류를 수정하는 개혁의 중요성

페이비언협회가 모든 점에서 옳았던 것은 아니다. 초기 페이비언 지도자들은 과학적 계획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려고 시도했으며, 심지어 우생학과 불임수술을 지지했다. 그리고 산업의 국유화를 지지하고 모든 토지 수입의 국유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페이비언 협회는 과거의 오류를 수정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지속적 개혁을 추구했다. 1920년대 이후 새로운 '2세대' 사상가들은 개혁적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했다. 1945년 클레먼트 애틀리 총리는 자유당의 윌리엄 베버리지가 제안한 국민보험을 도입했다. 1956년 노동당 국회의원 앤소니 크로슬랜드는 '사회주의의 미래'에서 국유화와 관료적 통제를 비판하고 혼합경제와 복지국가를 지지했다.

페이비언협회는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정치단체이지만,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참여하여 토론할 수 있는 싱크탱크이기도 했다. 페이비언협회는 램시 맥도널드, 클레먼트 애틀리, 헤럴드 윌슨,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에 이르기까지 노동당의 유력한 정치인이 회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R. H. 토니, G. D. H. 콜, 해롤드 라스키, 버나드 클릭, 니콜라스 칼도, 피터 타운젠드 등 저명한 지식인들도 참여했다.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상호비판이 가능한 조직문화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라는 시대정신이 변화하는 환경에 새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진보운동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 실수도 하고 중대한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적 토론과 심의가 있는 곳이라면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난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폭행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정당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한국의 통합진보당의 위기가 심각하다. 통합진보당은 사실상 '한 지붕 두 가족'으로 분당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4% 수준으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필요하다. 통합진보당의 위기는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위기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통합진보당 내부의 '종북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른 이들은 민주적 토론이 사라진 통합진보당의 '조직문화'를 지적한다. 최근 현실을 보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의 정파 가운데 '민족해방파'는 과거의 유령에 매달려 있으며 변화하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의 민족해방파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판단의 오류를 범했다. 1920년대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이 소련을 방문한 후 소련 사회의 폐쇄성과 획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지만,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는 민족해방파는 아직도 김일성의 항일 경력의 신화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지 북한 경제의 실패, 인권 유린, 핵무기 개발, 세습체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진보통합당 내부에서 북한에 관한 치열한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지 않았다는 문제이다.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과 진보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악용되었던 '색깔론'의 위험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보정당이라면 자신들이 어떤 가치와 정책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내세우며 피해가지 말아야 한다. 결국 토론이 없는 조직문화는 정당의 공개회의를 폭력으로 막는 사태까지 만들었다. 최근에는 정당의 문제에 검찰의 권력이 개입하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이라도 검찰의 당원 명부 압수는 취소되어야 한다. 동시에 통합진보당의 위기의 원인에 대한 내부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진보적 정치운동은 사회정의라는 목적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지켜야만 정치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경선 부정 시비도 진보정당의 정당성을 약화시켰지만, 정당 내부의 다른 의견을 토론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진보정당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게다가 정당의 공식 결정에 내부 정파가 불복한다면 이는 더 이상 정당의 구성원으로 볼 수 없다. 정당의 절차에 불복하고 당 바깥으로 나가 사법부의 판결을 요구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정당을 떠나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통합진보당은 새로운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민족해방파'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북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시민사회에서 북한 인권과 민주화에 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다른 한편 '평등파'도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만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넘어 복지국가와 환경보호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바로 통합진보당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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