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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토조의 승리와 미국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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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파토조의 승리와 미국 선거

김민웅의 세상읽기 <17>

"엘 파토조(El Patojo)" 과테말라 은어로 “꼬마”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른이지만 키가 아이처럼 작은 자를 부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난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과테말라의 한 혁명가, 훌리오 로베르토 케세레스 발레에게 체 게바라와 그의 동료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합니다.

훌리오 로베르토는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 회상기” 첫 장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몸이 작고 약했지만, 그의 마음과 생각은 매우 위대했다고 체 게바라는 적고 있습니다. 엘 파토조는 바로 그의 작은 체구 때문에 생긴 별명인 것은 물론입니다. 쿠바 혁명 회상기는 이 엘 파토조가 과테말라 혁명의 와중에 사망한 소식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체 게바라와 엘 파토조의 만남은 1954년 과테말라의 아르벤츠 정권이 미국이 배후에서 조정한 군사 쿠데타로 전복된 이후 멕시코로 가는 길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은 의대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리학을 공부한 언론인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수중에 몇 페소도 없는 상황에서 함께 사진 찍기를 해서 생활을 해결하는 가운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을 나누게 되지요.

훗날, 엘 파토조가 쿠바 혁명의 과정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 때 피델 카스트로는 그가 과테말라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혁명군이 국제적 성격을 띠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 파토조는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혁명 산채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조국 과테말라의 혁명에 뛰어들기 위해 쿠바를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났던 그가 결국 군부세력과의 대결 과정에서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엘 파토조는 쿠바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몇 편의 시를 남기게 되는데, 그 시가 그의 유품이 되어 체 게바라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엘 파토조의 시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앞으로 보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그대여, 가지세요. 그것을 그대의 손에 잡고 있어줘요. 어느 날이 동이 트는 때가 오면, 그 마음을 잡고 있던 손을 살그머니 펴주어요. 그리고는 태양이 그 심장을 따뜻하게 하도록 해줄 수 있나요?”

어두운 세월을 통과하면서 사랑하는 이에게 그의 마음과 심장을 맡긴 엘 파토조는, 역사의 아침이 속히 와 밝고 따뜻한 햇볕을 모두가 누리기를 고대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이 시를 남긴 그의 심장, 그의 마음이 바로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모든 이들의 손에 있다면서 엘 파토조의 기원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와 함께 할 것이라며 뜨거운 헌사를 바칩니다.

체 게바라는 오늘날 젊은 세대를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생김새 자체가 그 매력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의 아름다움은 그의 외모에서가 아니라 그의 영혼에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작은 자들에 대한 사랑, 그 작은 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열정. 그리고 거대한 자들이 이 작은 자들의 생명과 미래를 뒤흔들고 있는 현실에 침묵하지 않은 용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훌리오 로베르토, 즉 엘 파토조, 꼬마라고 불린 그의 삶에서 발견한 위대함도 다르지 않습니다. 힘없고 무력한 존재들이 강자들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지 않음을 입증해낸 그에 대한 깊고 깊은 존경입니다. 이제 미국은 대선의 마지막 초침 앞에 서 있습니다. 세계의 거인, 그리고 강자, 그러나 이 거대한 나라가 세상의 무수한 작은 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를 우리는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숱한 엘 파토조는 그저 무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세계사의 진로는 다만 미국 대선에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작은 자들이 어떤 생각과 열정, 그리고 용기를 가질 것인가에 또한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작은 자들의 승리, 이것이 보다 소중해지는 역사의 순간인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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