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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의 운명,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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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의 운명, 그리고 진보개혁세력의 현주소

김민웅의 세상읽기 <14>

로마신화의 사투르누스(Saturnus)에 해당하는 그리스의 신 크로노스(Cronos)는 “시간을 주재하는 존재”로 전해집니다. 영어의 “시간”을 의미하는 Chronos가 여기서 나왔고 연대기를 의미하는 chronology도 그 어원이 이로써 비롯됩니다.

아무튼 크로노스는 하늘을 의미하는 아버지 우라노스(Uranos)와 땅을 뜻하는 어머니 가이아(Gaia) 사이에서 태어나는데, 어머니와 공모하여 아버지를 거세한 후 왕좌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앉는 반역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후 크로노스는 누이인 레아(Rhea)와 결혼하여 헤라, 포세이돈, 제우스 등의 자식을 낳게 되는데 크로노스도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와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해 자식들의 반격으로 왕위를 찬탈당할 것이라는 예언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여 그는 낳은 자식들을 차례차례 삼켜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제우스가 태어나자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제우스를 크레타 섬에 숨기고는 성인이 될 때까지 길러냅니다.

제우스가 어른이 된 후 그는 마침내 아버지와 대결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크로노스로 하여금 뱃속에 있던 제우스의 형제와 자매들을 모두 토해내게 하고, 그 후 신들의 왕이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크로노스의 운명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섬의 동굴 감옥에 갇혔다고 하기도 하며, “황금시대의 왕”으로 재기하였다고 하기도 하는 등 설이 여러 갈래가 됩니다. 어쨌든 간에 크로노스의 탄생과 그 성장, 그리고 이후의 처지에 대한 이 신화적 전개는 시간을 주재하는 신의 운명에 대한 인간의 성찰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에 저항하여 그를 거꾸러뜨리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은 시간, 또는 역사란 그 앞선 세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상징해주고 있습니다. 기성의 질서가 새롭게 등장하는 시대에 대하여 절대적 권위를 발휘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권좌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그리스인들의 역사관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크로노스가 땅을 의미하는 어머니 가이아와 손을 잡고 이러한 반역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 몸을 붙이고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가 더욱 큰 동력을 가지고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라노스로 상징되는 그 어떤 절대적 원칙이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을 자기 손에 쥔 크로노스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자신의 권리로 움켜쥐고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해서 크로노스도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새롭게 등장하는 세대의 길을 열어주고 격려하면서 훗날의 성취가 더욱 빛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화의 크로노스는 그렇게 현명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역사의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납니다. 낡은 시대를 깨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겠다고 나선 존재들이 도리어 그들 자신이 기득권 세력이 되고 새로운 발상과 도전 그리고 비판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삼켜버린 크로노스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의 진전은 가로막히고 앞으로 나가려는 발걸음은 거기에서 멈추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지점에 와 있는 것일까요?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전의 구태를 반복하면서 미래의 자식들을 삼켜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논리의 일관성을 상실하고 거친 목소리만 높다면 아무리 목표가 좋아도 민심은 따르지 않게 될지 모릅니다.

개혁과 진보를 외쳤던 목소리를 이 시대가 외면하게 된다면 그것은 다만 보수와 과거회귀의 세력에게만 책임을 돌리기 어렵습니다. 크로노스의 교훈은 그 마음이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시간에 마음을 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과거의 감옥에 유폐되어버릴 것입니다. 아니라면 두고두고 황금과 같은 찬란한 시절로 기억되어 현재에도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는 그런 힘을 가질 수 있겠지요. 크로노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암울했던 시절, 새로운 시간, 새로운 역사를 꿈꾸던 화사한 꽃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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