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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과 절차적 민주주의 그리고 수도이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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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과 절차적 민주주의 그리고 수도이전 논란

김민웅의 세상읽기 <11>

1749년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1등을 한 논문은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글이었습니다. 논문의 핵심적 주장은 “인간이 만든 인위적 질서가 인간을 질식시키고 있다. 따라서 자연 상태의 인간적 본질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문을 쓴 사람은 인간이 세운 문명이 도리어 인간을 타락시키고 있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선한 힘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 논문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이후 근대 혁명의 사상적 원천이 되는 장 자끄 루소였습니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함께 살아가면서 그 인간적 본질을 잃지 않고 더불어 공동의 선과 의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질서가 어떻게 하면 인간의 본질적 자유를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보장해나가는 역할과 능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질문과 발상이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근대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왕조시대 또는 봉건사회의 권력은 왕과 봉건제후의 힘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인간의 자유를 제약해왔습니다. 그렇다고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생성 발전하고 있다고 인간이 보다 자유로워졌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근대사회로의 변화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을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서나 족쇄에 채워져 살고 있다.” 근대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쟁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근대사회로 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어떤 특정한 집단이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가지면서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기서 루소의 이른바 일반의지의 문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일반의지(volonte general)란 인간이면 누구나 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자유와 공동의 선에 대한 열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강제하거나 또는 조작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일반의지를 사회적 합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계약에 의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사회계약>의 발상은 그 사회의 권력, 권위 등이 어느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뜻과 염원을 하나로 모아나가는 과정에서 성립된다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시민들의 의지가 곧 일반의지화 되어서 그 공동체의 권력과 그 권력의 결정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을 국민의 뜻이라고 내세워 권력이 자신의 의사를 합리화하거나 밀어붙이는 식의 독재에 이용하는 경우도 역사상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의지가 권력의 근거이자 기초라는 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그렇지 않은 권력은 혁명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루소의 사상은 자연스럽게 프랑스 혁명과 그 이후 서구 사회뿐만이 아니라 인류역사의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여,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은 바로 이 일반의지로 표현되는 사회적 합의와 계약과정을 이루어가는 것에 그 의미가 모아진다고 하겠습니다.

이 절차적 정당성을 소홀히 할 경우, 어떤 의의 있고 중대한 작업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반의지의 주체인 인간의 기본권에도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다소 어려운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루소의 계약론이 일깨우는 교훈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이전과 관련한 헌재 판결이 위헌으로 나왔습니다. 수도이전 자체에 대한 판결이라기보다는 그 이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라고 하겠습니다. 수도이전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안을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정의 사회적 합의로 성숙시켜나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현안에 모두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안이 아닐까 합니다. 법리논쟁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합의에 기초한 깨끗한 승복, 우리 사회로서는 본격적인 논쟁의 시작이 이루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다시 성찰되는 시기인 듯 합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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