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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지혜의 일곱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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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지혜의 일곱기둥

김민웅의 세상읽기 <10>

모래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사막에서 말을 달리던 한 사나이가 남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꿈꾼다. 그러나 모두가 동등하게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지쳐 있는 밤에야 잠을 자면서 비로소 꿈을 꾸는 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그 꿈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한 낮에도 꿈을 꾸는 자들은 위험한 자들이다. 그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 꿈을 실현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위험한 자”들이란 압도하는 기존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915년, 오스만 제국이 몰락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제국이 지배했던 아랍의 각 부족들은 독립의 기치를 들고 반란과 봉기에 나서게 됩니다. 이른바 “위험한 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1차대전의 과정에서 일어난 이 아랍의 소용돌이는 오스만 제국의 운명과 아랍 제후들의 장래, 그리고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계산이 서로 뒤얽힌 거대한 역사 드라마였습니다.

한편 1888년, 영국에 장래의 인류학자 또는 작가를 꿈꾸는 한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옥스퍼드 대학의 최고학부 지저스 칼리지(Jesus College)에서 교육받은 그는 그의 어릴 때 소망과는 달리 이후 청년 시절, 영국의 정보장교로 카이로에 파견되고 거기에서부터 열사(熱沙)의 폭풍을 뚫고 아랍 독립 운동에 뛰어드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다름 아닌 아랍 근현대사에서 이후 전설적 존재가 된 “아라비아의 로렌스”였습니다. 이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1962년 영화로 만들어져 배우 피터 오툴을 아카데미 주연 후보에까지 오르게 하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당시 “앵무새를 죽인 자(To Kill a Mocking bird)”의 주연 그레고리 펙에 주연상의 자리를 넘겨줘야 했습니다.

아무튼 실제 인물인 T.E. 로렌스는 영국군 정보장교이면서도 아랍 독립 항쟁에 깊이 관여합니다. 가령, 아랍 독립운동 부대를 진두지휘하면서까지 터키를 상대로 다마스커스를 영국군에 앞서 먼저 공략하여 아랍 독립의 기세를 올리게 됩니다. 그는 터키는 물론이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서구 열강으로부터도 독립한 아랍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기대와 희망은 이미 이 지역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비밀 협약을 맺고 국제회의를 준비하고 있던 그의 모국 영국을 비롯하여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의 다른 속셈으로 좌절되고 맙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1916년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비밀 협약으로 중동지역을 남과 북으로 갈라 자신들의 보호령과 직접 통치하는 식민지로 구별하여 분할하기로 약속했었던 것입니다.

당시 처칠 영국 정부가 로렌스의 활약을 은근히 지원했던 이면에는 터키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아랍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기 위한 전략의 한 절차였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1차 대전이 끝난 이후 파리 강화회의에서는 아랍의 완전 독립이 아니라 보호령으로 만드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렌스는 파리 강화회의에 가서 이에 강력히 항의하고 문제를 제기하지만 이미 상황은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머리말에서 인용했던 대목은 이 좌절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로렌스가 1922년 쓴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책은 이후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기본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로렌스는 자신이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운다고 믿었는데, 그 열정은 당시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속셈에 철저히 이용당한 셈이 된 것이었습니다. 로렌스는 이후 이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역사의 현실을 직시한 것입니다.

이라크에 주둔한 자이툰 부대에 미 국방부 장관 럼스펠드가 방문하여 장병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혜의 일곱 기둥”은 무엇일까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그의 영광과 비운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에서 하는 3분 칼럼의 프레시안과의 동시 연재입니다. www.e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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