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미국. 미국은 이제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앞으로도 계속 '혈맹'이란 이름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자주의 관점에서 뛰어넘어야 할 나라인가. 미국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 내의 국론분열은 또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우리 언론의 '창'은 투명하지 않다"**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기정)이 최근 이같이 얽히고 설킨 복잡다난한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우리 언론 속에 비친 미국을 주제로 <저널리즘 평론>(통권 17호)을 냈다.
언론재단이 미국을 주제로 <저널리즘 평론>을 낸 것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과 우리의 대미 인식 사이에 갈수록 '괴리 현상'이 깊어지고 있고, 이를 풀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논쟁의 단초를 던져주고 있는 우리 언론의 모습을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저널리즘 평론>은 서문에서 결론적으로 "우리 언론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친미와 반미'를 지나치게 대립적으로, 이분법적으로 본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널리즘 평론>은 "투명하지 않은 '창'을 통해 보는 미국에 대한 시각, 미국에 대한 인식과 오해는 새로운 한·미 관계를 설정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며 언론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저널리즘 평론>은 '친미와 반미'를 넘을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모두 5장에 걸쳐 △한·미 관계를 생각한다 △주한미군 감축 보도 △미국의 중동정책 보도 △이라크 추가 파병보도 △일본 언론의 미국 보도 등으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숭미·반미 논쟁, 정부·국민 도외시한 언론만의 다툼"**
<저널리즘 평론>은 먼저, 정일준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가 쓴 <한·미 관계를 생각한다>에서 "우리가 막연하게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미국은 신보수주의로 변했고, 이에 맞춰 한국의 대미관 또한 변했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미국은 전체 한국과 동시에 개별 한국인을 대상으로 꾸준히 냉전문화정치를 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을 친구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냉전문화정치의 '대상'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주체적' 반응이야말로 한·미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또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과거 독재시절과 같이 '국익'의 이름으로 (미국 문제에 대한) 최종판단을 내릴 어떤 지도자도 갖고 있지 않다"며 "따라서 바람직한 한·미 관계의 재건을 위해 민주화된 한국의 시민사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정민(한국언론재단 조사분석팀) 연구원과 정재철(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강내원(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각각 주한미군 감축, 미국의 중동정책, 이라크 추가 파병 등을 둘러싼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를 통해 바람직한 한·미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정민 연구원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미군감축과 관련한 정책 결정시 동맹국인 한국과 깊이 있는 협의를 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조선, 동아일보의 각종 관련보도는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안보 상업주의' 비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제 우리 언론은 미국의 전략과 주한미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미래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하며, 한·미 관계를 대표하는 주한미군 담론에 대한 지나친 폐쇄성과 단순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원은 또 글 끝에서 "보수와 진보, 숭미와 반미의 이분법은 한국정부도, 우리 국민들도 아닌, 우리 언론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보수-진보 언론들, 공론화 역할 미흡"**
정재철 교수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 두 신문의 사설을 통해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한·미 동맹의 공고화를 강조하고 있는 반면 한겨레신문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며 모두 열린 공론장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이제 한국 신문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인 틀을 벗어나 보다 열린 자세로 미국의 중동정책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독자에게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내원 교수도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사설을 비교 분석한 결과 △언론의 공론장 역할이 미흡했고 △국론·여론의 분열을 도외시했으며 △추가파병에 대한 찬·반 입장은 있었을지언정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앞으로도 유사한 사안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음을 예상해볼 때 관련된 쟁점을 용이하게 다룰 능력 있고 전문화된 언론인의 확보를 보다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언론사의 전문화된 언론인 확보는 관련 사안에 대한 대안제시의 측면뿐만 아니라 갈등의 초기 단계에 사안의 공론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편 이홍천 (일본 게이오대 정책미디어대학원 박사과정) 씨는 <저널리즘 평론>의 마지막 장인 '일본 언론의 미국 보도'에서 "일본의 국제보도는 미·일 동맹이라는 틀 속에서 일본인이 가지는 미국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상당부분 반영돼 있다"며 "이러한 보도태도는 자국에 대한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타국에 대한 선동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보도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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