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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에 방패가 필요한가?

[데스크 칼럼] 권재진 장관, 버틸만큼 버텼다

'시녀'니 '주구'니 하는 소릴 듣다가도 권력이 내리막길에 처하면 뒤꿈치를 무는 게 검찰이다. 비정한 생리이지만 풀만 뜯는 순한 양으로 검찰이 존재할 수는 없는 일. 권력의 비리가 도저히 입막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힘 빠진 권력에 대한 검찰의 '쇼타임'이 비로소 시작된다. 더불어 이를 막기 위한 권력의 마지막 몸부림도 처절해진다.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은 초대형 게이트의 기본 틀을 두루 갖췄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 규모는 25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이 전 대표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에 대한 로비 명목으로 브로커 이동률씨에게 건넸다고 밝힌 돈이 61억원이다. 이동률씨의 수첩에는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현정부 유력인사 10여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다른 여러 비리 의혹으로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던 권력의 핵심인사들이 한꺼번에 망라된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도 검찰 수사는 곧바로 사건의 중심으로 돌진하지 않는 분위기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정배 전 대표에게서 받은 돈을) 대선 때 MB 관련 여론조사에 썼다"고 했다가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말을 바꿨다. 때맞춰 한상대 검찰총장도 "사건의 핵심은 인허가 비리"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최 전 위원장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검토하던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번질 듯 보이던 수사가 최시중 개인비리로 축소되는 양상이다.

게다가 최시중 전 위원장이 벌이는 꼼수 퍼레이드는 필사적이다. 최 위원장은 이 전 대표로부터 받은 돈이 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영장 범죄 사실에 들어간 나머지 6억5천만원은 브로커 이동률씨가 배달사고를 냈다는 주장이다. 1억5천만원을 받은 시점을 2006년~2007년이라고 진술한 것도 알선수재혐의의 공소시효가 5년이라는 점을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다음달 14일 심장혈관수술을 받기 위해 종합병원에 예약까지 해놓았다. 익히 보아온 '휠체어 코스프레'는 구속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수사 초기부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검찰이 과연 최 전 위원장의 비리혐의를 낱낱이 밝혀낼 수 있을지, 박영준 전 차관의 연루 의혹을 입증해 낼 수 있을지 의심을 사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이 사건에 어른거리는 권재진 법무부장관의 그림자는 검찰 수사를 석연치 않은 방향으로 이끄는 핵심 이유라고 볼만하다.

이정배 전 대표의 진술에 따르면 "2010년 10월 최 전 위원장을 만나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권재진 (당시)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최 전 위원장의 청탁전화는 그가 파이시티 쪽으로부터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임에도 검찰은 권 장관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민정수석에게 곧바로 법무부장관 역할을 맡긴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최근 불거진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권 장관의 각종 연루설로 현실이 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민정수석실과 얘기가 다 돼 있으니 안심하라"며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권 장관은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사건 때에도 은행측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SLS 그룹 구명로비 사건에서는 "대구지역 사업가를 통해 권 장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국철 회장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각종 의혹에 두루 연루된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 장관이 사퇴 요구를 거부하는 배경엔 청와대의 수사 개입 의지가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검찰의 인사권을 쥔 법무부장관을 방패로 권력의 위기를 버텨보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절박함이야 이해하지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권 장관은 지난 25일 법의 날 기념식에서 "진정한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더욱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면서 "법조인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해 법을 준수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후배 검사들의 '엄정한 법집행'을 위해 그가 이제 할 일은 자리에서 물러나 검찰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뿐이다.
▲권재진 법무부장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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