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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마음으로 우리 교육 기르고 치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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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마음으로 우리 교육 기르고 치유할 것"

[인터뷰] 서울시교육위 의장 맡은 김귀식 전 전교조위원장

지난 97년의 일이었다. 김귀식 선생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위원장에 출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육계가 술렁였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노(老)교사이었기에, 더군다나 평생을 교단에서 학생들만 가르치고 싶어 평교사로 남았던 김 선생이었기에 교육계는 신선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김 선생은 당시에도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었던 비합법 전교조의 수장이 됐고, 한 겨울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시린 콘크리트 바닥에서 단식농성을 벌인 끝에 마침내 99년 1월 합법 전교조의 문을 열었다.

김 선생은 전교조가 합법화 된 뒤 모든 활동을 훌훌 털고 곧바로 아이들이 기다리는 서울 중화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돌아갔다. 진보정당 활동을 제안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 선생은 아이들이 그리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 8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정년 퇴임식을 갖고 평생을 받쳐온 정든 교단을 떠났다.

김 선생의 왕성한 활동은 그 뒤에도 계속됐다. 우리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둘러싼 제도와 행정의 변화가 필수적이었기에 2000년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전교조 위원장이었다는 전력은 오히려 김 선생의 열망에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지난 8월, 김 선생은 4기 서울시교육위원회 후반기 새 의장에 선출되면서 비로소 소신으로 갖고 있었던 제도개혁의 포부를 펼칠 수 있게 됐다. 김 선생은 앞으로 2006년 8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전력을 다해 우리 교육의 미래를 바꿔 놓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시교육위 의장실에서 김 선생의 구상을 들어봤다.

***"권위주의 걷어내면 장관 백 번 바뀐 것보다 효과 클 것**

프레시안(이하 프) : 시교육위 의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김귀식 의장(이하 김 의장) : 한마디로 시교육감이 행정부문의 수장이라면 교육위 의장은 입법부문의 수장이다. 시교육감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물론 시교육예산의 심의·의결 기능을 맡게 된다.

프 : 교육을 두고 말들이 많다.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나.
김 의장 : 우리 교육은 지금 '방황'하고 있다. 장관이 수없이 바뀌며 교육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학교 현장은 변화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전 국민들은 입시에 매달려 있고, 아이들은 점수로 매겨져 한 줄로 서 있는 형국이다. 초등학교 시작된 이러한 모습은 대학으로 이어지다 다시 사회의 서열화로 굳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교 등급제는 사회통합을 깨는 상당히 나쁜 제도다.

프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김 의장 : 우리 교육은 과정을 무시한 결과주의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초·중등학교 모두 주입식 교육과 문제집 풀이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성 있는 문제집만 풀고 있으니 문제아가 되는 것 아니겠나. 무엇보다도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의 고민 시간을 박탈하면서까지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넣으려 해서는 안된다.

프 : 나름대로 갖고 계신 대안이 있다면.
김 의장 : 우선 학교 현장에서 권위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학교장이 갖고 있는 권위주의적인 권한은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에게 넓게 내주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토론과 대화, 주장이 모두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교육의 한 주체로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지난해 유인종 전 시교육감과 초·중등 모든 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교장들은 여전히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알아야 한다. 생활 전체가 교육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만 제대로 이뤄져도 장관이 백 번 바뀌는 것 보다 효과가 클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서로에게 배우는 지혜 가져야"**

프 : 정기국회 개원 뒤 사립학교법 개정을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김 의장 : 앞서 말한 대로 세상은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 변화되고 있다. 사학법 개정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시대를 바꾸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진정 훌륭한 사학 운영자라면 학교를 구성원들의 합의와 동의로 경영하자는 것에 대해 반대해서는 안된다.

프 : 사회일반과 마찬가지로 교육계도 진보-보수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데.
김 의장 : 지난 7월 교육계의 모든 진보-보수단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토론 시작 전에 '상대방의 주장을 폄하하지 말자' '서로 존중하자'는 원칙을 세우고 토론에 임하니 싸울 일이 없었다. 뒷풀이 자리 또한 화기애애했다. 이처럼 대화란 중요한 것이다. 앞으로 2차, 3차에 걸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생각이다.

서로 존중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 진보는 보수에게 배우고, 보수 또한 진보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존중하지 않기에 국보법 얘기가 나오자마자 사회가 갈라지고 있지 않나. 한 가지 더. 언론은 더 이상 선정적인 보도로 사회는 물론 교육계를 갈라놓지 말아야 한다.

프 : 후배 교사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김 의장 : 농사를 짓는 이들도 도시에 나가 살면 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자식같은 농작물을 두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자도 바로 그런 농부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

개인적으론 19세기 러시아에서 일었던 '브나로드 운동'이 후배 교사들에 의해 현대에 맞게 새롭게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브나로드'가 무엇인가. '민중 속으로' 아닌가. 민주화운동은 이미 민주화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에 파견된 선교사들처럼 사회변화를 위해 학교 현장과 사회 곳곳에서 후배 교사들이 애써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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