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구려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이런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중국은 엄청난 예산을 지원하여 고구려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은 수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사 전문 연구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접하는 국민들은 걱정을 넘어서 "해보았자 중국은 못 당한다"는 자조의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서길수 교수(서경대, 전 고구려연구회 회장)는 다른 주장을 편다. 이런 현상은 한ㆍ중 고구려 연구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최근 자신이 양국의 고구려 연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중국측은 박사 2명 석사 12명, 한국측은 박사 32명 석사 1백98명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10일 서울 대우재단 세미나실에서 열린 '고구려연구회 10년의 성과와 방향' 학술발표에서 나왔다. 서 교수는 지난 10년간 고구려연구회를 개척적으로 이끌어오다 새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8월 회장직을 사퇴하고 마지막으로 이 행사를 마련했다.
그는 이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발상과 접근의 전환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고구려 연구자가 많고 연구 결과도 탄탄하다. 다만 중국은 고구려사가 중국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귀속문제'에 중점을 둔 논문이 많은 반면, 한국에서 순수 학술적인 연구가 중국의 몇 배 이상 많다. 한국의 학자들은 고구려사가 당연히 한국사이기 때문에 고구려사가 우리 것이라는 연구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역량과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고구려의 정체성을 연구한다면 쉽게 중국의 논리를 누를 수 있다. 다만 중국은 사회과학원이라는 거대 국가 연구기관에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준하는 막강한 연구재단을 세워 맞서야 할 것이다."
이날 서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전문을 3회로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
***한ㆍ중 고구려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
***Ⅰ. 머리말**
2003년 12월 9일, 한국사 관련 17개 학회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학술발표회>(주관 : 한국고대사학회, 후원 : 교육인적자원부)를 열고 4개 항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발표회에서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을 발표한 최광식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경우 수 십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책정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내년 예산에 수억 원 정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중국의 경우 수 백 명의 연구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 고구려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와 고구려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 모두 해도 수십 명의 연구자를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및 발해 연구자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 부분에 대한 예산을 늘리고, 학문후속 세대들이 고구려와 발해 및 고조선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1. 중국은 엄청난 예산을 지원하여 고구려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2. 중국은 수 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은 수 십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 달 뒤, 한국고대사학회 2004년도 기획발표회 '중국의 고구려 유적 정비 현황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방안'(1월 30일, 대우재단빌딩)의 2부 종합토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방안'(여호규)에서도 같은 내용이 발표되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학문적 동기가 아니라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정제변화에 대하려는 정치적 목적 아래 진행되고 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는 이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만한 역량과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함. 무엇보다 고구려사 전문 연구자가 너무 적고, 기초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초보적인 연구기관조차 없는 상태임."
결국 우리나라는 고구려사 전문 연구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메스컴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고, 국민들은 걱정을 넘어서 최근에는 "결국 해 보았자 중국은 못 당한다"는 자조의 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의 결과로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의 이사장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고구려 역사, 고구려 문화, 벽화․고분과 관련해서 지정 과제로 응모하게 했는데 지정과제 둘이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다섯 사람이 한 팀이 되어서 들어와야 되는데 고구려연구재단에 사람이 있다 보니까 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입장입니다. 그 정도로 맨 파워가 약하다 …
해방 후에 고구려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14명 있습니다. 해방후 지금까지 14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고 대처하는 과정에 맨파워가 얼마나 부족한가 하는 것을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은 한ㆍ중 고구려 연구자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한 주장들이 가져온 결과이며, 그것은 결국 전 국민을 패배주의적 포기상태로 빠트리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고구려연구 단체를 만들고 지원을 받기 위해 한 방편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에게 주는 역효과는 엄청나게 크고, 이미 10년 이상 고구려 연구를 전문으로 해온 단체나 학자들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본 고대사 연구자들이나 고구려연구재단의 주장은 잘 못 된 것이라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바로 이 점을 실증적 분석을 통해서 밝히고 그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중국의 고구려 연구 현황**
***1. 고구려 전문 연구인력**
***1) 고구려 연구 관계 석ㆍ박사 학위 취득 현황**
중국의 고구려 연구와 연구 학자를 분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앞으로 많은 시간과 인력을 들여 조사 분석해야 하겠지만 이번 논문은 한국과의 비교가 주된 것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조사가 가능한 한도 내에서 보기로 한다.
중국에서 학위 취득자나 논문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알음알이를 통해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현재까지 중국에서 고구려에 관계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모두 4명이다.
모두 연변대에서 나왔는데 4명 가운데 3명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 3명은 현재 중국에서 학술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나머지 한 명인 박찬규 박사는 조선족이다. 한편 한국에서 박사를 받은 연변대의 서일범 교수(「북한 고구려 산성 연구」, 2000년, 단국대)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중국에 박사 학위를 가지고 고구려 연구활동을 하는 학자는 2명이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연구 주제도 문헌연구, 관제, 신앙으로 한정되어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연변대에서 한국 사람이 고구려사로 학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학위과정을 마친 사람은 신라사로 바꾸거나 학교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박사학위에 비해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 수가 많지만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고구려를 전공으로 하려는 젊은 학자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구려 관계 석사학위 소지자는 주로 길림성의 장춘에 있는 길림대(고고학과 4명, 역사학과 1명)와 동북사범대(1명),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에 있는 연변대(3명)에서 배출되었고, 요령성에서는 심양에 있는 요령대학(2명)과 요령사범대(1명)에서 나왔다. 우신수(于新水)와 한국인 임찬경 씨를 빼놓고 보면 거의가 1999년 이후 최근에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표 1> 중국의 고구려사 관계 학위 취득자
중국에서 대학원이 활성화 된 것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학위 취득자가 적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규적인 학위과정을 밟아 고구려를 전공하는 학자가 뜻밖에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주요 고구려 연구 학자 분석**
현재 고구려연구회에서 수집 분석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 연구논문 1000편을 논문 편수에 따라 표를 만들어 보았다(표 3 참조). 아직은 자료를 수집중이라 정확한 통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연구자의 현황을 파악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고구려에 관한 논문을 6편 이상 쓴 학자는 모두 26명이다.
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중국에는 대학이나 학술기관 보다는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출연한 기관의 연구자가 더 많다. 연구인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기관은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6명)이고 이어서 사회과학원(중국 2, 길림성 2), 박물관(요령성 1, 집안시 2, 본계시 1) 등에서 8명이 나와 공공기관모두 14명으로 전체의 54%에 가까운 연구인원을 배출하고 있다. 다음이 대학인데 주로 길림대, 연변대, 통화사범대, 동북사대, 요령대에 재직하는 교수들이다. 민간연구단체인 동아연구중심의 활략도 특기할만하다.
2) 26명 가운데 절반인 13명이 이미 정년퇴직을 하거나 작고(2명)하여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90년대 들어와서 고구려 연구를 시작한 유자민(연변대), 양춘길(통화사범대), 마대정(중국사회과학원) 같은 학자들은 주로 고구려사 귀속문제에 초첨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학술적인 연구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도 전체적으로 연령이 높아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른 젊은 학자들의 참여는 둔화되고 있다. 옛날처럼 국가에서 직장을 배정해 주지 않고 경제발전에 따라 젊은 사람들이 학문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3) 한 두 사람을 빼놓고는 대부분 80년대에 들어와 고구려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고구려 연구가 늦게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26명의 학자들 가운데 61.5%인 16명이 (사)고구려연구회에서 주최하는 국내,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표 3>을 작성할 때 사용한 상당한 데이터가 이런 국제적인 교류의 결과로 가능했다.
<표 3> 중국의 주요 고구려 연구 학자
***3) 고구려 연구자들의 동북공정 참여 현황**
2002년부터 시작한 동북공정에는 고구려 연구 학자들이 크게 참여하고 있지 않다.
1차(2002)년도에는 번역과제 7과제 가운데 1과제, 연구과제 26과제 가운데 3과제가 고구려에 관한 것으로 전체 과제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2003년도 15과제 가운데서는 1과제뿐이며, 2004년도에는 고구려에 관한 과제가 하나도 없다.
이처럼 고구려사에 관한 과제가 많지 않은 것은 동북공정을 시작할 때는 이미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는 이미 1996년 현재 동북공정을 이끌어가는 마대정을 팀장으로 해서 『고구려 역사 연구』가 사회과학원 중점과제(重點項目)로 선정되어 1997년까지 연구를 마쳤다. 그 결과가 2001년 발행된 『고대 중국 고구려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史叢論』이다. 동북공정은 그 다음 해인 2002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 못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동북공정의 과제를 자세히 보면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넘어서 명청시대와 간도 같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사의 왜곡은 이미 1995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각종 연구소와 여러 번 열렸던 고구려 학술대회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이런 연구 성과들을 사회과학원이 모아서 공식적으로 『고대 중국 고구려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史叢論』펴내므로 해서 1차 사업은 일단락 된 것이다.
'동북공정' 제1차년(2002)도 프로젝트 일람표
1. 번역과제
1) 《朝鮮韓國史學系的古朝鮮, 夫餘硏究論著選編》, 孫啓林
2) 《朝韓學界高句麗的硏究文獻》, 權赫秀
3) 《國外渤海史硏究資料彙編》, 鄭永振
4) 《朝文相關重要著作和資料飜譯》, 張璉
5) 《中朝邊界史》- 白山資料院叢書選擇, 高敬洙
6) 《朝鮮半島現況硏究》, 張英
7) 《韓國和朝鮮的經濟, 社會狀況比較》, 吳建華
2. 연구과제
1) 《黑龍江通史》, 步平, 흑룡강성사회과학원
2) 《二十世紀中國東北邊疆文化硏究課題》, 黃定天, 흑룡강성사회과학원
3) 《好太王碑1580年》, 耿鐵華, 길림성통화사범학원
4) 《箕子 箕子朝鮮硏究》, 張碧波, 흑룡강성사회과학원
5) 《渤海國史》, 魏國忠, 흑룡강성사회과학원
6) 《渤海史論》, 朱國 , 흑룡강성考古硏究所
7) 《中國東北古民族發展史》, 李德山, 길림성동북사범대학
8) 《中韓相關姓氏族源考論》, 王雅軒, 요녕대학
9) 《民國時期東北地方政府治邊硏究》, 胡玉海, 요녕대학
10) 《東北民族區域設置硏究》, 程 娜, 길림대학
11) 《歷朝東北治邊硏究》1-7권, 徐德源, 鄭川水, 요녕대학
12) 《國際法 中朝邊界爭議問題》, 焦潤明, 요녕대학
13) 《簡明高句麗史》, 孫玉良, 길림성사회과학원
14) 《淸代邊疆城鎭硏究》, 李治亭, 길림성사회과학원
15) 《長白山地區歷史 文化及其歸屬問題硏究》, 劉厚生, 동북사범대학
16) 《東北漢族人口史硏究課題》, 孟廣耀, 흑룡강성사회과학원
17) 《中國歷代治理東北邊疆思想硏究》, 劉信君, 길림성사회과학원
18) 《渤海移民的治理 歸屬問題》, 武玉環, 길림대학
19) 《淸代鴨綠江流域的封禁 開發硏究》, 張杰, 요녕대학
20) 《鴨綠江以南的高句麗遺跡調査硏究》, 徐日范, 연변대학
21) 《東北邊疆多民族文化交流 融合硏究》, 正, 길림성사회과학원
22) 《僞滿時期東北邊界衝突 界務交涉硏究》, 王慶祥, 길림성사회과학원
23) 《中國東北 俄國經濟關係史》, 張鳳鳴, 흑룡강성사회과학원
24) 《俄國東部移民開發問題硏究》, 王曉菊, 흑룡강성사회과학원
25) 《"三國史記"詳注及硏究》, 劉子敏, 朴燦奎, 연변대학
26) 《俄羅斯遠東地區的中國人》, 張宗海, 흑룡강성사회과학원
'동북공정' 제2차년(2003)도 프로젝트 일람표'동북공정' 제3차년(2004)도 프로젝트 일람표
***2. 고구려 전문 연구 단체**
***1) 심양동아연구중심(沈陽東亞硏究中心)**
설립 : 1991년 심양시동아문화연구소(沈陽市東亞文化硏究所)
1992년 심양동아연구중심(沈陽東亞硏究中心)으로 개명
주임 : 손진기(孫進己)
현재 직원 30명 남짓, 겸직연구원 100명 남짓
주된 사업 :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고고학 연구.
산하 연구소 : 동아역사연구소, 동아민족연구소, 동아고고연구소, 동아문고 편집부
주요 저작 : 『東北亞硏究』 26권, {中國考古集成』東北편, 華北편 등 총135권, 『高句麗 渤海硏究集成』6권, 『北方歷代人物傳』 7권, 『東北地方史硏究系列』4권, 『遼寧省市縣文物志』5권,『高句麗硏究系列』5권.) 현재 출판 준비중인 책 : 『中國考古集成·華南卷』,『契丹 女眞硏究集成』,『烏桓 鮮卑硏究集成』,『高句麗民族史』,『渤海民族史』,『遼代民族史』
***2) 통화사범대학(通化師範學院) 고구려연구소**
설립 : 1995년 7월, 소장 : 耿鐵華 교수/현재 소장 - 楊春吉 교수
부소장 : 黃甲元 교수(長白山區地方史 전문가)
설립목적 : 고구려 역사와 고고 연구, 인재와 地緣 우세함을 발휘. 고구려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및 族源, 族屬, 고구려와 중원왕조·백제·신사·일본·발해와의 관계 문제 연구
성과 : 통화사범대학의 고구려연구소는 몇 가지 면에서 다른 연구기관보다 우수한 바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바로 고구려 705년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수도였던 국내성이 바로 통화시에 있으며, 첫 수도인 환인 오녀산성도 국내성과 같이 짧은 거리 안에 있어 현장에서 직접 고구려 유물을 발굴하고 유적을 답사할 수가 있다. 둘째, 가장 먼저 생긴 고구려 전문연구소이기 때문에 각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중국학자 고구려연구 문헌목록}이나 고구려자료집인 {고구려사적회요(高句麗史籍 要)} 같은 기본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셋째, 고구려사 연구 전문가가 있다. 그리고 집안 박물관의 연구자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어 연구인력 확보가 쉽다. 넷째,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있는 큰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비해 이 대학은 고구려 연구를 특화하여 전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고구려연구소는 다른 어떤 단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연구성과는 다분히 경철화 교수 한 명의 활약에 힙입은 바 크다.) 연구 책임자 耿鐵華·倪軍民·楊春吉의 연구성과
***3) 길림성사회과학원 고구려연구중심**
설립 : 1997년, 소장 : 孫文範(정년퇴직),
길림성사회과학원의 고구려연구중심은 고구려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으나 아직 그렇다 할만한 연구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 국제학술대회 같은 중요한 행사를 중국변강사연구중심과 함께 공동주최하는 등 힘을 쓰는 듯 하지만 괄목할만한 연구성과가 없는 것은 고구려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인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 동북사범대학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東北民族與彊域硏究中心)**
구성 학자 : 劉厚生, 孫啓林, 李德山
성과 : {黑土地的古代文明}, {中國東北民族與彊域硏究}, {高句麗史話}, {渤海國史話},
동북사범대학은 동북지방에서 가장 우수한 역사학과를 두고 있다. 길림대학이 고고학이면 동북사범대학은 역사학인 것이다.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에서 제1차 전국 동북 민족과 강역에 관한 학술토론회(東北民族與彊域學術硏討會)를 주관하였다. 이 회의에서 고구려에 관한 논문이 여러 편 발표되었다. 유후생 교수는 중국변강지구 역사사회연구(中國邊疆地區歷史與社會硏究) 동북공작참(東北工作站) 부참장 일을 맡고 있으며, 동북공정에서도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고구려 문제는 주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내고 있다.
***5)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중국변강지구 역사사회연구(中國邊疆地區歷史與社會硏究) 동북공작참(東北工作站)
* 1995년 -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 주임 마대정 '제1차 전국고구려학술대회' 참석
* 1996년 하반기 - 고구려 문제를 중국사회과학원 중점연구 과제로 정식 입안
* 1997년 - 연구참가자들 길림성 고구려 유적 고찰, 길림, 요령, 흑룡강성 고구려사 동북지방사 연구 학자들과 교류 및 연구
* 1997년 연말 - 과제 초고 완성
* 2001년 - 邊疆史地叢書 {古代中國高句麗歷史叢論}) (黑龍江敎育出版社, 1998년12월)
* 2003년 - 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
<표 2> 중국의 고구려 연구단체중국에서는 민간 연구소, 대학연구소, 지방정부 출연 연구소, 국가 출연연구소가 서로 할 일을 나누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3. 고구려 전문 학술대회와 학술지**
***1) 고구려 전문 학술대회**
(1) 1993년 제1차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토론회
곳 : 집안시
때 : 8월 11∼14일
주최 : 해외한민족연구소, 중국조선사연구회, 조선일보사
협찬 : 롯데그룹
이 토론회에는 중국, 한국, 북한, 일본, 대만, 홍콩에서 많은 학자들이 참석하였다. 이 토론회에서는 원래 귀속문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기획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첫날 종합토론이 진행되는 도중 발표자가 아닌 방청석에서 당시 북경대학 청화대학에서 근무하는 정인갑 교수가 고구려의 귀속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당시 집안박물관 부관장이었던 경철화(耿鐵華)가 "나 개인의 학설이자 중국 동북지방 역사 및 고고학의 성과인데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서기 427년부터는 고구려가 조선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고구려 문화가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중국 동북 지방의 용(龍)문화에 속한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 김일성대학의 역사학계 원로인 박시형(당시 84세) 교수가 "한 나라의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법이다. 과거의 고조선·고구려 땅이 지금 중국 영토가 되었다고 해서 그 역사를 어떻게 중국사에 갖다 붙여 중국 소수민족 운운하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고구려야 옛날부터 고조선·부여와 함께 중국인들 스스로가 역사책에서 '동이족'이라고 독립해 지칭했고,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란 서술은 역대 어느 사서에도 없다."고 반박하였다) 김태익 [고구려는 누구의 역사인가], {아! 고구려}, 조선일보사, 1994, 82쪽.
중국 학자들이 오늘날의 국경을 가지고 역사상 고구려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측 손진기는 "우리들이 고구려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의 국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상 고구려는 오랫동안 중국의 중앙 황조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후예는 조선족이라고 할 수 없고 대부분은 오늘날 중국의 각 민족이 되었다"고 되받았다.
이 당시 회의에 참가한 한국의 학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번도 고구려 역사가 한국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은 한국 학자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논의는 있었지만 그 주장이 주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인 학자들에게도 큰 놀라움이었다.
이 국제학술대회가 끝난 뒤 한국과 중국 양국에는 갑자기 고구려 붐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1994년 이후 갑자기 고구려 연구열이 달아오른 것은 당시 연구의 흐름이 '고구려=중국사'로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제대회에서의 있었던 뜨거운 논쟁은 많은 중국 학자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이 회의에 참석한 학자들이나 당시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도 그 동안 그에 대응을 하지 않은 정부와 학계의 반성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2) '제1차 전국 고구려 학술토론회(全國首屆高句麗學術硏討會)
때 : 1998년 6월 26일∼28일(3일간)
곳 : 통화시
공동주최 : 길림성 사회과학원 고구려연구중심
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3) '제2차 전국 고구려 학술토론회(第二屆東北邊疆歷史與現狀 高句麗學術硏討會)
때 : 2002년 7월 9일∼13일(5일간)
곳 : 장춘시, 통화시
주최 : 中國社會科學院 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 吉林省社會科學院
후원 : 遼寧省社會科學院, 黑龍江省社會科學院, 吉林大學, 東北師範大, 遼寧大學,
延邊大學, 北華大學, 吉林師範大學, 長春師範學院, 通化師範學院
참가 : 100명 남짓, 논문 70편.
(4) 고구려·발해문제학술토론회(高句麗渤海問題學術討論會)
때 : 2003년 8월 23∼24일(2일간)
곳 : 길림성 延吉市
공동주최 : "동북공정" 사무실·연변대학 中朝韓日文化比較硏究中心(교육부 文科基地)
주관 : 연변대학 中朝韓日文化比較硏究所
참가 : 25명(흑룡강사회과학원, 흑룡강성문물고고연구소,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통화사범학원, 연변대학, 요령성박물관, 요령대학, 심양동아연구소, 정주대학 및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5) 제3차 전국 고구려 학술토론회(第三屆全國高句麗學術硏討會)
-고구려 학술연구,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 지정 촉진, 고구려 국내성 천도2000주년 기념 -
때 : 2003년 10월 9∼11일(3일간)
곳 : 길림성 집안시 집안호텔
주최 : 길림성사회과학원·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
* 9일 오전에는 집안시 정부 주최 고구려 국내성 천도2000주년 기념축전과 상징건축물 제막식에 참가
* 대회 참가 논문은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紀念高句麗遷都國內城2000周年學術論文集}으로 출판될 예정
***2) 고구려 전문 학술지**
중국에는 고구려만을 주제로 하는 정규 전문 학술지는 없다. 다만 학술대회를 마치고 그 대회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서 책으로 낸 것이 있다.
***각주**
1) 같은 내용이 공청회에서도 발표되었다.
2) 고구려 박사(총 4명, 한국인 3명)
韓相皓, 「高句麗 傳統信仰 硏究」, 延邊大, 1998
高在輝, 「高句麗 前期 中央官制와 地方統治 制度」, 延邊大, 1998
朴燦圭, 「三國志 魏志 高句麗傳 硏究」, 延邊大, 1999
林燦慶, 「高句麗 官制 硏究」, 延邊大, 2000
3) 고구려사 관계 석사학위 취득자(총 12명, 한국인 1명)
于新水, 「高句麗古城硏究」, 吉林大 考古學科, 1991
林燦慶, 「高句麗 官制硏究 - 中央官制를 中心으로-」, 延邊大 歷史學科, 1996
崔仙香, 「高句麗壁畵硏究」, 延邊大 歷史學科, 1999
陳平, 「高句麗山城硏究」, 吉林大 考古學科, 2000
孫泓, 「高句麗民族的形成、發展及消亡」, 遼寧大 歷史系, 2000
張春霞, 「論高句麗政權與中央皇朝的關系」, 遼寧大 歷史系, 2000
沈英淑, 「高句麗平壤遷都硏究」, 延邊大, 2001
李樂榮, 「論高句麗的自然宗敎」, 東北師范大學, 2002
盧東梅, 「從宗敎信仰看高句麗文化與中原文化的關係」, 遼寧師范大學, 2002
李梅, 「高句麗瓦當發現與硏究」, 吉林大 考古學科, 2003
卑琳, 「高句麗陶器硏究」, 吉林大 考古學科, 2003
徐海雲, 「高句麗早期政權結構硏究」, 吉林大學 歷史學科 , 2003
4) '중국의 고구려 연구 논문 현황'을 분석하기 위한 자료수집을 위해 '한국청년회의소'에서 1,500만원을 지원하였다.
5) 전국 제1차 고구려 학술토론회 『論文集』, 길림성 사회과학원 고구려연구중심·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199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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