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천년 역사가 무너지는 소리가 안 들립니까. 바로잡자고 촉구합시다. 힘을 모읍시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 이이화 선생은 예순 일곱의 나이를 잠시 잊은 듯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젊은이들이 이에 화답하듯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선생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중국 정부 규탄대회장에 나오기는 했지만 보잘 것 없어진 현실 속의 우리 역사교육이 눈앞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역사교육이 중요해요. 역사학자들,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겁니까. 어려운 한자투성이 역사책 보게 하려고 한자교육 강화하자고 할 겁니까. 교육 당국은 뭐합니까. 국사교육이 다른 과목과 형평성 맞춰가며 교육해야할 대상입니까.”
이런 선생의 일갈을 프레시안 기자만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MBC, EBS 등 방송사에서 나온 카메라들은 벌써부터 선생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모두다 중국의 고대사 왜곡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풍경을 선생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사회적 이슈가 돼서 우리 고대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을 좋아해야 할까요? ‘반짝’하지 맙시다. 이제라도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해요.”
***“눈 뜨고 역사를 도둑맞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6월 한국통사를 다룬 <한국사 이야기> 22권을 모두 완간하셨는데, 어떤 목적으로 쓰신 겁니까.
이이화 선생 : 우리 역사교육, 얼마나 어렵습니까. 좀 깊게 알아보려면 온통 한자로 돼 있지 않아요. 또, 교과서는 짧은 시간에 방대한 분량을 다루어야 하니 얼마나 부실합니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쉽고 재미있게 우리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주어야 합니다.
만화면 어떻습니까. 역사에 흥미를 갖게끔 만들고, 역사를 배워볼 만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지금 어른들은 그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어야 해요.
프 : 학교교육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이 : 무슨 국사교육 수업시간이 그리 짧습니까. 대입수능 비율은 또 어떻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교육부는 다른 과목과 형평성을 맞춰 선택과목으로 했다고 하데요. 그런데 자국의 역사를 가르치는데 다른 과목과 비교할 일입니까.
한 예로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을 봅시다. 중국 정부는 조선족들의 풍습 등은 그대로 놔둡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만은 못 가르치게 해요. 철저히 자신들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죠. 이는 일종의 민족혼 말살정책입니다.
프 : 역시 현행 교육과정을 개선해야한다는 말씀이시죠.
이 : 어디 교육과정뿐입니까. 예전에는 국가공무원 시험이나 심지어 유학을 갈 때에도 국사시험을 치르도록 했어요. 이것도 지금은 모두 없앴죠. 미국에 유학 가 있는 한 학생이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외국사람들이 ‘너희 나라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하는데 도대체 설명을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게 다 우리 역사를 여러 분야에서 홀대한 탓입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눈 뜨고 역사를 도둑맞고 있는 지경 아닙니까.
***“이대로 가면 우리 땅은 대동강 이남이 된다”**
프 : 현행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신다면.
이 : 5천년이 넘는 역사가 아닙니까. 한 두 권에 담는 건 애초부터 무리입니다. 지금 교과서를 보면 고대사 분량이 무척 적습니다. 일부에서는 근현대사 비율을 먼저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짓눌려 온통 왜곡돼 왔으니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죠. 교육전문가들과 역사학자들이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대사 또한 소홀히 다뤄서는 안됩니다. 이에 앞서 문헌사료 연구와 유물유적 발굴이 서로 협조해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 ‘상상’이나 ‘허구’가 아닌 바른 고대사가 정립됩니다. ‘상상’은 문학적 표현 아닙니까. 급한 마음에 앞서 가다가는 우리 스스로 고대사를 왜곡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프 : 나름대로 생각하신 국사교육 강화방안이 있다면.
이 : 사실 고대사는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고대사 관련 자료나 유물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훼손됐습니다. 간도 또한 19세기까지 영토분쟁의 대상이었죠. 고대사에 있어 남한보다 연구가 앞서 있는 북한의 경우 경제난으로 인해 더 이상의 유물유적 발굴이 이뤄지지 않고 있잖아요.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고대사부터 시작해 근현대사에 이르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이를 각각으로 때놓고 교육시키면 중국은 언제고 ‘대동강 이남만 한국’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한가지 더 첨가할 것이 있어요. 중국은 이번 동북공정에 무려 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제야 연구재단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아차산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적들도 지금 서울대 지하실에 다시 묻혀있습니다.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으로 보도해 주길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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