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가 주로 북한에서 군가로 불리고 있는 '적기가'를 시사만화 꼭지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자체 확인돼, 제작진이 서둘러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초동진화에 나섰다.
***제작진 "외주 프리랜서의 단순 실수"**
KBS <미디어포커스>는 지난 14일 방영분 가운데 '조남준의 시사플래시' 꼭지에서 도입부 초반에 '적기가'의 일부를 40초가량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당일 '시사플래시'는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해 국방부의 포괄적 보도제한(엠바고) 조처를 받아들인 언론의 문제점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발견한 KBS 심의팀은 즉각 제작진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제작진은 16일 저녁 <미디어포커스> 게시판에 제작진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초동진화'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조사 결과 외주제작물인 '시사플래시'의 배경 음악을 전담하는 외부 프리랜서가 군가 멜로디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사용하면서 이 음악이 '적기가'의 멜로디인 줄 모르고 선정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제작진 역시 음악 작업을 마친 완성본 테이프를 전달받아 녹화와 최종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이를 전혀 모른 채 단순히 군에서 사용하는 행진곡 멜로디인 줄로만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제작진은 또 "이번 일은 음악 담당자의 실수와 더불어 이를 사전에 철저히 챙기지 못한 제작진의 실책임을 통감한다"며 "외주 음악 담당자는 즉각 교체했고, 회사 또한 제작진을 상대로 이에 상응한 후속 조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적기가' 배경음악 삽입 소동은 17일 오전 이를 뒤늦게 안 보수신문들이 앞다퉈 취재에 들어가면서 정치 쟁점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KBS 한 관계자는 "확인 결과 외주 음악 담당자는 캐나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또 군 복무 경험도 없었던 터라 단순히 빠른 행진곡풍의 음악을 찾다가 '적기가'의 멜로디를 선택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올림픽에서 북한선수를 응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시대 상황이나 국민 정서 모두가 변화됐지만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적기가', 원음은 독일민요 '소나무'**
'적기가'는 이에 앞서 올해 3월 관객 1천만명 시대를 열었던 영화 <실미도>에서도 사용돼 강우석 감독이 보수단체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피소를 당하고, 또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보수성향의 의원들로부터'좌경·용공 영화'라는 공격을 받는 등 사회적인 논란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계 일각에서는 '적기가'의 멜로디가 독일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 당시 널리 불렸던 점 등을 감안하면, 단순히 북한의 군가로 취급해 '색깔론'의 시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제시하고 있다.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가 지난 3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적기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민요 '소나무'(탄덴바움, Der Tannenbaum)의 멜로디를 차용했기에 가사를 모르고 멜로디만 들으면 쉽게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1889년 영국의 사회주의자 짐 코넬에 의해 멜로디는 그대로 살아 있는 가운데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라는 노동가요로 개사됐고, 이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라는 제목의 노동가요로 번안됐다가 1930년대 한반도로 건너와 북한지역과 만주 일대에 널리 유포됐다.
민 교수는 "대립·갈등과 전쟁이라는 20세기 한반도 비극의 현장에 항상 이 노래가 있었기에 어찌 보면 '적기가'를 둘러싼 논란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면서도 "다만 우리들은 남북대립과 갈등의 시대에서 남북화합의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에 살고 있기에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과잉대응에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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