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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김제동, '삭발' 이외수도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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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김제동, '삭발' 이외수도 좋지만…

[데스크 칼럼] 합리적 유권자가 되는 방법

내가 사는 곳은 재미없는 선거구다. 떠들썩한 쟁점도 없고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판세도 확연히 기운 것 같다. 인물 면에도 5선에 도전하는 그저 그런 현역의원과 건설 관료 출신의 그렇고 그런 후보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이 '리턴매치'를 벌인다고 하니 두 사람 사이의 양자택일로 지역의 8년을 선택하게 된 나와 이웃들은 대체로 무덤덤할 수밖에. 그래도 투표를 꼭 해야 하나?

사람들은 어떤 동기로 투표장에 나올까? 투표 참여에 대한 고전적인 공식은 PB+D>C이다. P(Probability)는 개인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확률, B(Benefit)는 지지 정당이나 후보가 이겼을 때 돌아올 것 같은 이득, D(Duty)는 사회적 의무처럼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C(Cost)는 투표에 드는 시간이나 비용을 말한다. 수학적으로 P는 0에 가깝다. 따라서 결정적 변수인 D가 C보다 높아야만 투표 참여 행위가 이뤄진다. 이 냉정한 공식은 '합리적 유권자'가 투표하지 않는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다. 선거일에 출근도 해야 하고 비까지 온다고 하니, 내 경우 C가 무척 높게 느껴진다.

그래도 투표 할 생각이다. 정확하게는 정당 투표를 위해 투표장에 갈 생각이다. 지역구 후보만 뽑아야 한다면 '귀찮음증'이 C로 몰리겠지만, 내가 가진 2표 가운데 1표는 D, 즉 정파적 지지에 따른 만족감을 부여할만하다. 따져보면 선택의 즐거움이 있다. 생태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녹색당이 나왔다. 진보정당의 명맥을 양분하는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도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양당 질서가 정당 투표에서만큼은 평등하게 해체된다. 잇따르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서 각성된 탈핵의 가치가 'MB심판'이라는 정치적 의미와 상충될만한 여지는 없다.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달성, 혹은 골수 진보주의자들의 때묻지 않은 진정성도 평가해주고 싶은 요인이다.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한다면 진보정당사에서 장족의 발전으로 기록될만하다. 반면 기대에 못 미치면 또 한번의 후폭풍을 맞게 된다. 녹색당과 진보신당은 3% 지지를 얻으면 비례대표 의원을 갖게 되는 반면 2%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해체된다. 어느 쪽이 한국 정치의 발전일까.

우리 정치가 보수 양당의 독과점 체제로 정착하면서, 또한 제도의 미비로 대표성이 심각하게 왜곡되면서 역대 총선 투표율은 꾸준히 하락해왔다. 탄핵 역풍에 힘입어 간신히 60%를 회복했던 17대 총선을 빼면 71.9%(14대 총선)→63.9%(15대 총선)→57.2%(16대 총선)→60.6%(17대 총선)→46.1%(18대 총선)로 이어진 투표율 추이는 민주주의의 위험 징후로까지 거론된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만한 정당과 후보를 찾지 못하다보니 운동의 정치가 과격해지는 반면 제도 정치는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선거 이후에는 정당의 붕괴라는 초유의 진단까지 나왔던 터다.

특히 몇 해 전 나온 노동운동가 손낙구 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는 투표할 이유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정치구조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참고할만하다. 그에 따르면 흔히 말하는 '계급배반투표' 현상은 허상이다. 못 사는 사람이 부자정당을 지지한다는 속설은 그의 실증적 연구에서 부정됐다.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를 토대로 살펴보면 잘 사는 사람은 맹렬히 부자정당을 찍었고, 못 사는 사람도 그런대로 반(反)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투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차이가 나는 이유, 비밀은 투표율이었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개 동과 투표율이 가장 낮은 10개 동을 들여다보니, 잘 사는 동네는 투표율이 높고(67%) 못 사는 동네는 투표율이 낮았다(44%). 못 사는 동네에서 자기 집도 없이 떠도는 유권자들, 비정규직 등 투표일에도 일하러 나가야 하는 유권자들은 '투표해봐야 뭐하냐'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결과다.

이처럼 투표할만한 동기부여가 안 되는 악조건을 두루 갖춘 우리 정치현실에서 투표율을 갑자기 높일만한 뾰족한 대안은 없다. 다만, 부자정당의 위세가 등등했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못 사는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의지를 발휘해 투표장에 나가 계급투표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도덕적 결론에 이른다. 'MB 심판론'이라는 회고적 투표만으로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내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정당의 가치에 투자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양당 질서에 균열을 내고 다양한 차이를 만드는 일이 그 다음 선거에서 우리를 투표장에 불러낼 이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투표율 65%가 넘으면 김제동의 '베이글 몸매'를 볼 수 있고 70%가 넘으면 삭발한 이외수를 볼 수 있다는 건 그런 수고로움이 주는 혜택의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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