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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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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159>

고풍(古風)의 피서

인사동이 지금처럼 번잡한 거리가 되기 전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아마도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고서를 취급하는 통문관 앞에 서서 가게 안에 쌓여있는 책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누런 황구 한 마리가 몹시도 따분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필자의 손에 들린 얼음과자를 발견하고는 꼬리를 치는 것이었다. 저 놈도 더우니까 시원한 것을 먹고 싶은가 보다 하고, 반을 떼어서 그 강아지에게 내밀었더니 어쩜 그렇게 맛있게 빨던지.

그런 연후에 건너편, 동문선 출판사가 직영하던 허름한 중국 책방으로 올라가 하루 종일 책을 보며 놀았었다. 냉방도 없이 책 곰팡이 냄새만 그저 코를 자극하던 그 책방 안에서 거의 반나절을 이 책 저 책 구경으로 시간을 넘겨다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긴 시간을 있었건만, 책방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손님이라곤 겨우 서너 사람에 불과했으니 아끼고 사랑하는 이 책방, 곧 문 닫겠구나 싶어 버럭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결국 동문선의 중국서적 사업은 얼마 안 가서 그만 두고 말았다. 그 때, 샀던 책이 대만의 삼민서국에서 나온 서유기(西遊記) 상하권이었다.

대만의 출판물은 대단히 값도 저렴하고 내용도 충실하다. 두 권으로 된 책이지만, 축약본이 아니라 전체를 다 싣고 있다. 그 때 샀던 서유기를 이번 여름, 심한 무더위 속에서 다시 읽었는데 그럭저럭 피서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오피스텔이라 문만 걸어 잠그면 옷을 훌러덩 다 벗고 팬티 바람으로 앉아 있어도 뉘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진종일 냉방을 틀고 있자니 그 또한 골치가 아플 노릇이라 냉수를 덮어쓴 후, 거의 전라에 가까운 차림으로 선풍기를 틀어놓고 서유기를 마루바닥에 펼쳐놓고 소리 높여 낭독하고 있노라면 그 또한 대단히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서유기는 유불선의 사상들이 혼효되어 사실상 구분이 없으며, 음양오행에 견주어 사물을 설명하는 대목이 실로 풍부하다.

손오공이 수보리조사를 만나 성과 법명을 받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손오공이 원래 성도 이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부는 먼저 원숭이 호(猢)에서 옆에 있는 부수를 뗀 호(胡)가 어떨는지 싶어 따져본다.

그러나 호(胡)는 고(古)와 월(月)로 되어있다. 고(古)는 늙을 노(老)와 같고 월(月)은 달이니 음의 정기이다. 따라서 늙고 음(陰)하다는 뜻이니 화육(化育)을 못할 징조, 즉 발전성이 없어 보여서 그만 두기로 한다.

다음으로 사부는 원숭이 손(猻)을 가지고 따져본다. 부수를 떼고 나면, 아들 자(子)와 이을 계(系)가 된다.

자(子)는 사내아이란 뜻이고, 계(系)는 갓난아이란 뜻이니 아주 적합하고 발전성이 있어 보인다 싶어 사부는 손(孫)을 성으로 내린다.

그런 다음, 법명은 자기의 제자 항렬을 따져서 열 번째 문도에 해당되는 오(悟)자에 이어 빌 공(空)을 주니 오공이 된다. 재미난 것은 이름을 주는 과정은 음양오행의 사상에 따라 지으면서 정작 주어진 이름은 오공(悟空)이니 이는 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공(空)을 깨우친다는 뜻이 되었다.

손오공이 태어난 화과산의 바위도 그렇다.

높이가 3장 6척 5촌인 것은 365일과 원둘레 365 도-원의 내각을 360 도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 천문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365 도였다-를 닮은 것이고, 둘레 2장 4척은 일년의 24절기를 본 뜻 것이다. 또 바윗돌에 뚫린 아홉 구멍과 여덟 구멍은 구궁(九宮)과 팔괘(八卦)를 의미한다.

이처럼 천지와 일월의 정화(精華)가 모여서 생겨난 영물인 손오공은 보리조사로부터 도술을 배우는 과정을 보면 황당하면서도 재미가 가득하다.

서방 정토의 수보리 조사는 불교의 인물이건만, 자신이 알고 있는 도(道)에는 360 가지 방문(傍門)이 있다고 얘기한다.

먼저 술(術)자 방문은 음양오행이나 주역을 통해 점을 치는 기술이고, 유(流)자 방문은 유가나 도가, 음양가, 의가 등의 경전을 통해 학문을 하는 길이다. 그리고 정(靜)자 방문은 이른바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통해 하는 공부, 즉 내공(內功)을 쌓는 공부이다. 그런가 하면 동(動)자 방문은 무술을 닦는 것과 같다.

이처럼 불교의 수보리 조사가 가르치는 도술은 한 마디로 말해 유불선의 모든 공부가 다 들어가 망라되고 있으니 그 또한 재미난 일이다.

하지만 손오공은 그 모두가 장생불사의 방법이 되지는 못한다는 말에 배우기를 거부하자 마침내 사부는 손오공의 머리를 세 번 두들겨 야반삼경에 ‘진정한 도(道眞)'의 공부를 가르쳐주마 하고 암시를 준다.

그러나 정작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금단(金丹)을 연성하는 도교적인 구결이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있어 부처와 신선은 거의 가치(價値)가 대등한 것으로 여겨졌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손오공의 공부에 대해 수보리 조사가 물어보자, 손오공은 법성(法性)과 근기(根器)가 모두 익어가고 있다고 대답한다. 도교 학문을 배우고는 불교식 답변을 하는 대목에 가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런 연후에 손오공은 삼재(三災)를 막는 방법을 배우고 이어서 일흔 두 가지 지살수(地煞數)의 술법을 배우게 되고 그 마지막에는 근두운을 타고 하늘을 나는 술법까지 익힌 후, 스승의 하산(下山) 또는 퇴출(退出)명령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나중에 천상에 올라가 복숭아 파티를 망치고 한껏 분탕질을 한 손오공은 천계에서 도망쳐 와서는 자신의 근거지인 화과산 수렴동에서 천상의 10만 대병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데, 그 천계(天界) 병력의 내용을 보면 바람 우주삼라만상 그 자체이다.

태양과 달, 하늘의 별 자리인 28 성수(星宿), 태산을 비롯한 다섯 명산(名山), 사해(四海)의 용신(龍神),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12지(支)의 제신들, 그리고 육정육갑, 그리고 불교의 사대 천왕 등등 갖은 종교의 신들과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대표 사물들이 손오공과 전쟁을 치른다. 어느 신화에도 한 영웅이 이처럼 거대한 힘과 맞서 싸운다는 얘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도교의 지존 옥황상제는 석가여래의 힘을 빌리게 된다. 석가여래는 손오공에게 천궁(天宮)을 걸고 내기를 한 결과 이기게 되었으니, 불(佛)과 선(仙)이 합작(合作)을 한 셈이다.

손오공은 이리하여 석가여래의 다섯 손가락이 목화토금수의 다섯 봉우리로 변한 오행산(五行山) 밑에 갇혀버리고 만다. 석가여래는 손오공이 결코 탈출할 수 없도록 옴마니반메훔의 진언이 적힌 부적을 오행산 위에다가 붙여놓기까지 한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손오공은 현장 법사와 함께 천축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는 먼 길을 떠나게 되고, 그 길에서 저팔계와 사오정, 용마를 만나 한 무리로서 구구팔십일, 여든 한 번에 달하는 난관을 넘어 호법(護法)의 일을 수행한다.

이렇듯 서유기는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사상들이 두루 섞여 구분이 안 될 정도이고, 음양오행에 관해 노래하는 시(詩)도 대단히 풍부하다.

필자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중에서 서유기와 수호지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 두 소설은 근대에 와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중국 무협소설의 원류가 되었다. 그 중 서유기는 신마(神魔)소설이라고 부르며 수호지는 영웅담이다. 무협지는 바로 신마와 영웅이 함께 등장하는 환타지라서 더욱 재미가 있는 것이다.

번역본도 자주 읽어보지만, 실로 번역이 어렵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된다. 서유기의 경우, 최근에 나와 번역이 충실하다는 국내 번역본들도 원문과 대조할 때, 오역이나 역자가 충분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싶은 부분들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 가장 많이 번역된 삼국지 역시도 오역이 남아있을 정도이니 문학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이 역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지난한 일이 아닌가 싶다.

공을 깨우친다는 뜻의 오공(悟空),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의(如意)봉, 십만팔천리를 단숨에 날아오를 수 있는 근두운의 능력을 지닌 손오공이야말로 출세간의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하겠으니, 올 여름, 바닷가로 피서를 떠나진 못했지만, 사무실에서 비지땀을 흘려가며 서유기를 낭독하는 재미에 더위는 간 곳이 없으니 피서 중에 상등 피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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