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트로이 전쟁의 우주 주역들 ‘소행성’부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트로이 전쟁의 우주 주역들 ‘소행성’부대

이향순의 '우주 읽어주는 엄마' <19>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헤라, 아프로디테와 아름다움을 겨루어 현상금을 차지하려고 했다.

펠레우스왕과 테티스의 결혼식 날, 다른 신들은 모두 초대를 받았는데 오직 한 사람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대를 받지 못했다. 에리스는 자기만 따돌림당한 데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혼인 잔치가 무르익을 때쯤 황금 사과 하나를 휙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씌어 있었다. 그러자 헤라와 아프로디테와 아테나가 저마다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순간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제우스는 하찮은 싸움판에 끼여들고 싶지 않았기에 세 여신들에게 이데산으로 가서 결말을 지어보라고 떠넘겼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양치기 파리스가 제우스의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 제우스는 이 파리스에게 미의 판정을 맡긴 것이다.

세 여신은 파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꾀를 다 냈다. 헤라는 파리스에게 유럽과 아시아의 왕을 차지하는 최고의 권력을, 아테나는 아카이아에 대한 트로이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파리스는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여 아프로디테가 황금 사과를 차지했다. 반면에 그는 헤라와 아테나의 적이 되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보호 아래 그리스 땅으로 건너가, 스파르타왕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인 메넬라오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던 것이다.

결혼하기 전 그녀에게는 여러 명의 구혼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녀가 배우자를 결정하기 전, 구혼자의 한 사람이었던 오디세우스의 제안에 따르기로 약속했다. 즉 그들은 헬레나의 남편으로 선택된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반드시 존중하며 헬레네를 강탈하려는 자가 있으면 함께 쳐부수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유혹한 뒤 함께 궁전을 빠져 나와 조국 트로이로 도망쳤다. 이 때 메넬라오스는 궁전을 비우고 크레타 섬을 방문중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된 메넬라오스는 그리스의 영웅들, 즉 헬레네의 옛 구혼자들에게 파발을 보내 일찍이 맹세했던 대로 트로이를 쳐부수고 아내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요청했다.

트로이는 프리아모스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이데산의 양치기이자 헬레네를 유혹해 데리고 트로이로 간 파리스는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파리스는 양치기 노릇을 하며 산 속에서 버려지다시피 자랐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그가 장차 자라면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불길한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넬라오스의 호소에 따라 트로이를 쳐부수고 헬레네를 되찾아오기 위한 그리스 연합군의 대원정이 시작되었다. 그리스 연합군의 군비는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아르고스의 패왕이자, 메넬라오스의 친형이기도 한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전군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무장인 아킬레우스와 그에 버금가는 장수 아이아스, 디오네데스, 오디세우스, 네스토르 따위가 즐비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네스토스는 모든 그리스 장수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이에 맞서는 트로이 진영도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프리아모스 왕은 나이가 좀 들긴 했지만 옛날부터 현명한 군주로 이름을 날렸다. 국내 정치에 힘을 쏟고, 이웃 나라들과는 동맹을 맺어 나라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져 놓은 바 있다. 프리아모스 왕위를 버텨 주는 기둥이자 그의 아들인 헥토르를 비롯해 아이네이아스, 데이포보스, 글라우코스, 사르페돈 따위가 있다.

2년 동안에 걸친 전쟁 준비가 끝나자 그리스 연합군은 보이오티아의 아우리스항에 집결했다. 바로 이 지방에서 사령관 아가멤논이 사냥을 나갔다가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숫사슴 한 마리를 죽인 죄로 역질이 번져 군대가 희생되고 바람이 멎어 출항을 미루고 있다가 눈물을 머금고 그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자 순풍이 불어 함대가 출항했다. 함대는 트로이 해안에 군대를 내려놓았다. 트로이군은 그리스군의 상륙을 저지하려고 공격을 퍼부어 최초의 공격에서 그리스 군 장수 프로테실라오스가 프리아모스왕의 아들인 헥토르의 손에 전사했다.

프로테실라오스는 라오다메이아라는 사랑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왔는데, 그녀는 남편이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자 세시간 동안만이라도 남편과 작별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간곡히 빌었다. 신들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헤르메스는 프로테실라오스를 다시 이승으로 데리고 왔는데, 작별인사가 끝나고 그가 두 번째로 죽자 라오다메이아도 따라 죽었다.

‘내 피로 먼저 트로이의 흙을 물들이는 피의 파도로 삼겠다고.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여! 그대를 잃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생각나느니 그대와의 아름다운 추억뿐,
이승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기쁨뿐, 함께 걷던 오솔길, 아 그 샘, 그 꽃,
내가 설계했던 새 도시, 미완성 탑루.’

그리스와 트로이 양군의 전세는 막상막하여서 장기전의 양상을 띠며 이렇다 할 진전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계속되었다. 두 진영 모두 수많은 영웅들만 희생될 뿐이었다.

지리멸렬한 전장에서 그리스군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스 연합군의 으뜸가는 전사 아킬레우스와 총사령관 아가멤논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스군은 소아시아의 해안도시와 내륙도시를 습격하여 해적성 약탈을 일삼았다. 이 때 아킬레우스는 테베의 도시를 점령하고 안드로마케의 아버지 에에티온왕과 7명의 왕자를 살해하고 왕비를 납치하였다. 또한 그는 루르네소르를 침략하여 아이네아스를 패주시키고 아리따운 브리세스 공주를 잡아다 애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아가멤논은 테반을 침공할 때 아폴론 신전의 사제 크류세스의 딸 크류세이스를 납치하여 첩으로 삼았다.

신들도 이 전투에 끼어 들었는데, 아프로디테와 아르테미스, 아폴론 신들이 트로이 군을 지원하고 파리스를 미워하는 헤라와 아테네 따위는 그리스 연합군 편을 들었다.

아폴론 신은 자기 신관의 기도를 받아들여 그리스군 진영에 역질을 보내 많은 인명피해를 입혔다.

사령관 회의에서 이를 막을 대책이 논의되고 있었다.

아킬레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처럼 비참하게 그리스 군이 당하고 있는 참화는 아가멤논 장군이 크리세이스를 방면하지 않은 데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좋아요. 크리세이스를 놓아줄 터이니 대신 아킬레우스 장군이 차지한 브리세이스도 내 놓으시오.” 아가멤논의 어조가 격앙되었다.

“예, 그렇고 말고요. 대신 나는 이 전쟁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전리품을 분배할 때 차지한 브리세이스를 내놓자마자 자기 군대를 본진에서 철수시키고, 그리스로 돌아가겠다고 막무가내로 선언했다.

아가멤논은 자기의 지나친 행동을 후회하고 오디세우스와 포인니크스와 아이아스를 아킬레우스 진영으로 보내 브리세이스는 물론 트로이가 함락시킬 경우 최고 미인 20명과 자기 딸은 물론 좋은 영토도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이 내민 화해의 손을 잡는 것은 고사하고 그리스 땅으로 회군하겠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는 트로이 군에 밀린 그리스 군 진영의 보루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함대 갑판에서 팔장을 끼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서 수세에 몰린 그리스 군의 전황을 그대로 전해들었다. 디오메데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마카온이 모두 부상을 입고 방벽이 무너지고 적군이 함대에까지 쳐들어와 불을 질러 풍전등화와 같은 전세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비참한 소식을 전해듣고 있는 사이에도 그리스 군이 타고 온 배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그의 부대 ‘미르미돈인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고 자기 갑옷을 빌려주었다.

아킬레우스의 부대를 이끈 파트로클로스가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돌진해 들어가자 트로이 군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먼저 배에다 불을 지른 무리가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그리스 군은 배를 다시 찾아 불길을 간신히 잡을 수가 있었다. 남은 트로이 군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아이아스, 네넬라오스, 그리고 네스토르의 두 아들의 활약상이 크게 돋보였다. 이 때문에 트로이 군의 장수 헥토르도 허둥대는 부하들을 버려 두고 포위망을 빠져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은 파트로클로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는 트로이 군을 격퇴시키고 그리스 군을 위기에서 구할 수 가 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전세가 뒤바뀌었다. 헥토르가 전차를 몰고 달려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트로클로스는 헥토르를 향하여 커다란 바위 하나를 던졌는데 바위는 마부 케브리오네스를 맞추어 전차에서 떨어뜨렸다. 헥토르는 부하이자 전우인 케브리오네스를 구하려고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파트로클로스도 전차에서 뛰어내려 승리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두 영웅은 이렇게 하여 일 대 일로 맞붙었다.

파트로클로스가 쓰고 있던 투구와 창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뒤에 숨어 있던 트로이 병사가 그의 등을 찌르자 헥토르가 창으로 다시 그를 찔렀다. 파트로클로스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빼앗으려는 공방전이 치열했다. 결국 파트로클로스가 입었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적장 헥토르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헥토르는 자기 갑옷을 벗은 뒤 파트로클로스의 시체에서 벗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다시 전장에 나타났다.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전사 소식을 몹시 슬퍼했다. 그리고 그는 슬픔을 달래는 유일한 길은 복수뿐이라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에겐 전장 터에 입고 나갈 갑옷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 테티스가 헤파이토스에게 주문하여 하루 저녁 걸려 만든 갑옷을 몸에 두르고 지체없이 그리스군 진영으로 달려가 장수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소집했다. 아킬레우스는 뮤르미돈의 왕 펠레우스와의 사이에 태어났다.

전쟁터에 선 아킬레우스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찼다. 그토록 용감히 날뛰던 그의 적장들은 그를 보는 순간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따금 앞을 가로막아선 적장들은 그의 창끝이 스치기만 해도 쓰러졌다. 헥토르는 아폴론으로부터 미리 주의를 받은 바 있어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아폴론은 프리아모스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아이네이아스를 충돌질 하여 아킬레우스와 맞서보게 했다. 그러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프리아모스 왕은 성벽 위에서 이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력 질주해 오고 있는 트로이 군을 향해 성문을 활짝 열어 하나도 남김없이 피신하자 곧바로 성문을 굳게 닫아 추격대는 하나도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헥토르만은 성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아킬레우스와 일전을 각오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연로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벽 위에서 아킬레우스와 일 대 일 대결을 벌이려는 헥토르를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며 소리쳤다.

“헥토르, 헥토르, 헥토르” 그의 어머니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어서 왕이,

“헥토르, 넌 나의 후계자야! 잊었느냐? 대결만은 피하고 성 으로 들어와!” 하고 괴성을 버 럭 질렀다.

헥토르는 왕과 왕비의 말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아킬레우스를 쳐다본 그의 눈빛은 불타 올랐다.

“오늘 회전에 출전하여 목숨을 잃은 부하들은 모두 내 명령으로 그리 되었다. 어찌 나 하나 적과의 교전을 피해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

두 사람은 성벽 바로 밑까지 쫓고 쫓기었다. 성벽을 세 바퀴 돌 때까지 도망과 추격은 계속되었다. 헥토르가 용기를 내 창을 던졌지만 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때리고는 저만치 튕겨 나갔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기왕 죽을 목숨이라면 부끄럽게 죽을 수는 없다.”

“음, 너의 죄를 알고 있구나.”

헥토르는 칼을 뽑아들고 돌진했다. 반대편에선 아킬레우스가 방패를 꼬나들고 헥토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헥토르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아킬레우스는 헥토르 갑옷의 사각지점인 목의 울대를 겨누어 창을 던졌다. 헥토르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니, 내 시체만은 돌려주기 바란다. 몸값은 내 양친에게 물리더라도 내 시체만은 돌려 주어 트로이 군이 장사지낼 수 있게 해다오.”

아킬레우스가,

“개가 따로 없구나. 몸값이니 자비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 나에게 그토록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안긴 네가 아니냐! 네 시체를 개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네 몸값의 스무 배, 아니 몸무게만큼의 금을 가져온대도 필요 없다.”

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 몸에서 갑옷을 벗기고는 그 발을 끈으로 묶어 전차 뒤에다 매달고, 전차에 올라타서는 준마를 채찍으로 때렸다. 그는 시체를 끌고 트로이 성 앞을 때로는 질주하고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욕을 보였다. 평소 온화하지만 친구의 주검 앞에서 광폭해진 아킬레우스를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프리아모스왕과 왕비 헤카베는 너무나 기가 막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신하들은 성문을 뛰쳐나가려는 왕을 한사코 붙잡았다. 왕은 진흙 밭을 뒹굴며 신하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발버둥쳤다.

아킬레우스와 그리스 군은 정식으로 파트로클로스의 장례식을 치렀다. 날이 새기도 전에 막사를 나온 아킬레우스는 전차에다 발빠른 말을 매어 헥토르의 시체를 끌게 하고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두어 바퀴 돈 뒤, 시체를 땅바닥 위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아폴론의 신전에서 혼담을 벌이다 발뒤꿈치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을 맞고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였다. 인간과 결혼한 테티스가 어린 아킬레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스튝스 강물에 담갔는데 손으로 잡은 뒤꿈치가 물에 닿지 않아 그 부분만 불사신이 되지 못한 탓이었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제공하였을뿐 아니라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죽인 파리스도 그리스군에 참가하여 트로이 원정에 따라나섰으나 자기 화살에 발을 다쳐 렘노스섬에서 휴양하고 있는 필록테테스의 독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다.

트로이 성은 그리스 군의 9년 동안에 걸친 끈질긴 포위와 공격에도 끄떡도 하지 않은 채 난공불락이었다.

아홉 해가 지났을 때 오디세우스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그리스 군은 일단 포위를 푸는 척 했다. 그리스 군은 위장 전술의 하나로 선단의 일부를 철수 시켜 가까운 섬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 거대한 ‘목마’를 만들었다. 그들은 ‘목마’가 아테나 여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한 제물이라고 거짓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그 ‘목마’ 안에는 무장한 장수들이 꽉 차 있었다. 그리스군은 각기 함선으로 돌아가 트로이를 완전히 철수하는 척 할뿐만 아니라 실제로 돛을 올리고 항구를 떠나는 척 했다.

트로이군은 진영이 풀리고 선단이 항구를 떠나는 것을 보고 적군이 포위를 풀고 완전 철수하는 것으로 믿었다. 트로이 백성들은 성문을 열고 나와 오래 미루어 두었던 자유를 한껏 즐기며 진영이 있던 곳을 구경하러 다녔다.

시논이란 그리스인 포로가 끌려왔는데 트로이군 들 앞에서 그 목마는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한 제물인데 목마가 트로이 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트로이군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칼카스의 예언에 따라 목마가 성 으로 끌려 들어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크게 만든 것이라고 거짓 증언을 하였다.

시논의 증언은 트로이인들의 귀에 솔깃하게 들렸다. 그리고 큰 뱀 두 마리가 나타나 해상을 누비다가 이윽고 육지로 올라온 불가사의한 사건까지 함께 일어났다.

트로이인들은 정식으로 의식을 베풀고 그 목마를 성안끌어들일 준비를 했다. 노래와 승리의 환호가 이어진 축제로 날이 저물었다.

밤이 되자 첩자 시논의 신호로 목마에서 빠져 나온 그리스 장수들은 그리스군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성문을 활짝 열었다. 성안에 들어온 그리스군은 여기 저기 불을 질러 성안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즐거운 축제로 피로에 지쳐 잠들어 있던 트로이 백성들은 차례로 참살 당했고, 트로이성은 그리스군에게 완전히 정복당하였다.

트로이에 머무른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트로이 병사로 변장해서 성안으로 숨어 들어가 팔라디온을 빼낼 때 앞장서 도와주었다. 헬레네는 오디세우스를 보는 즉시 그 정체를 알아보았으나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두 사람을 도와 팔라디온 상을 압수할 수 있게 했다.

‘여신의 집’인 팔라디온은 아테나 여신의 상으로 트로이 백성들은 이 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어서 그 상이 있는 한 트로이 성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트로이가 함락되자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먼저 수소문해 찾아냈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의 손에 이끌려 트로이를 떠나 고향 땅으로 향했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무사히 스파르타로 돌아가 다시 왕위에 앉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따금 지구촌의 운명을 위협하는 소행성들은 트로이전쟁에 참전한 영웅들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이 우주에서 발견한 최초의 작은 섬 세레스는 1801년 1월 1일 뿐 아니라 1월 11일, 13일 잇따라 관측돼 머나먼 곳에 있는 우주에서 행성 탐사를 꿈꾸고 있던 19세기 천문학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세레스 발견 사실은 이탈리아에서 나폴리를 건너고 알프스를 넘어 약 두 달만에 베를린 천문대장 보데에게도 보고됐다.

세레스는 소행성 가운데 가장 크다. 그러나 세레스의 지름은 약 992㎞ 정도로서 우리 달의 질량의 15분의 1 수준이다.

1802년에는 의사 올바스에 의해 소녀자리에서 두 번째 소행성 팔라스가 관측됐고 1804년에 세 번째 유노가 발견되는 등 19세기 천문학계에 일대 파문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소행성 탐사 시대가 열렸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사진 기술을 천체 관측에 응용함에 따라 지름 1㎞ 미만의 작은 소행성까지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천체가 없다는 의구심에서 출발한 소행성 탐사는 날이 갈수록 기대치 이상의 수확을 거두며 우주 여행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천문학자들이 실제 화성의 궤도와 목성의 궤도 사이에 눈길을 돌렸을 때 소행성 고향의 앞마당에는 무수한 소행성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그것들은 보통 조그마한 지구형 행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큰 것은 지름이 수백 ㎞나 되는 것도 있다. 소행성의 대부분이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으며 회전하면서 우주를 날고 있다.

두 개 이상의 소행성의 궤도가 서로 접근해 있기 때문에 이따금 충돌하여 소행성의 일부가 부서져서 그 파편이 지구 쪽으로 날아들어 오기도 한다. 그것이 지상에 떨어지면 운석이 된다.

목성 주기를 따라 도는 것을 트로이 소행성이라고 부른다. 이 트로이 소행성은 1906년이래 14개가 발견되었다.

트로이 소행성의 장남은 뭐니뭐니해도 1906년 독일의 천문학자 우프가 발견한 아킬레우스이다. 이 아킬레우스 소행성의 이름은 트로이 전쟁에 등장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지배한다.

일반적으로 소행성의 이름은 여성의 이름을 붙이는데 트로이 소행성들은 모두 남성 명사를 하사 받았다. 아킬레우스는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1906년 말경에 아킬레우스와는 대조적으로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뒤서서 따라가는 소행성이 발견되었다. 이 소행성은 아킬레우스의 다정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관장한다.

또 다른 소행성들이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주변에서 잇따라 발견되었는데 모두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의 이름을 이어 받았다. 그들은 트로이 목마의 전설을 빛낸 신들이었다.

한편 천문학자들은 화성, 목성 , 해왕성 등의 달 가운데 어떤 것은 한 때 트로이 소행성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화성의 두 달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소행성이 화성의 인력에 끌려 붙잡힌 것이라는 설과 목성의 달이 무려 20여 개에 이르는 것은 목성 주변을 맴돌던 트로이의 소행성군이 양아버지 목성의 손에 끌려들어 온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