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음양오행설은 고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중국인들이 음양오행 사상의 발전에 있어 공로가 크지만, 그 원류는 동이(東夷)족이 만들었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 한민족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음양오행설의 고향과 원류,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음양오행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중국 문화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중국 문화는 크게 나누면 세 개의 문화가 융합되어 형성되었다. 그 하나는 중국 내부의 서쪽에서 발전해 온 주(周)문화, 그리고 오늘날 발해만 일대에서 흥기한 동이(東夷)문화-사실상 우리 문화의 뿌리-와 양자강 일대의 초(楚)문화, 이렇게 세 개가 융합된 것이 중국 문화의 원류이다.
그 이후 공자(孔子)가 주(周) 문화를 숭상한 영향을 받아 중국인들은 주 문화를 그 으뜸에 두는 전통을 만들었다.
그러나 기묘한 것은 공자 역시 동이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는 오늘날 중국 산동반도에 있는 태산의 서쪽에 자리했던 나라인 바, 동이족의 나라인 은(殷)을 멸한 주 나라가 은나라 사람들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주 나라 동쪽 끝의 전초기지였다.
사실상 주 문화는 그에 앞선 왕조인 은(殷)에 비해 여러 면에서 후진적이었지만, 백성과 인민을 중시하는 인본사상, 즉 덕치(德治)의 풍조가 있었기에 중국 황하 일대에서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공자 역시 주 문화의 그런 인본(人本)사상을 인(仁)이라는 말로 집약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주창했던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서 괴력난신이란 바로 자연과 세계의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현상들이며,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던 노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음양오행설이며 동이 사람들의 창안이었던 것이다.
동이의 문화는 그 근본에 있어 해양문화였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해양이란 바로 오늘날의 발해만 일대를 말한다.
오늘에 와서는 발해만이지만 그것은 지리적 개념이 더 확장되어 황해라는 명칭이 주어진 다음의 일이며 원 명칭은 발해이다.
발해(渤海)는 저번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발’은 바다를 뜻하는 원래 우리말이다. 용비어천가에 적혀있듯이, ‘내를 이뤄 에 가나니’의 발이다. 여기에 중국인들이 다시 그네들 말로 바다를 뜻하는 해(海)를 붙였으니 발해는 동의반복인 셈이다.
발해는 오늘날의 만주에 있는 요동반도와 중국 동쪽의 산동반도가 엄지와 검지를 조여들 듯이 형성된 바다이다. 그리고 이 발해만을 에워싸고 있는 일대는 우리 문화의 주된 원류(原流)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래서 발해만 일대에서 형성된 문화를 환발해(環渤海)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해만 일대에서 생겨난 나라로서 역사적으로 사실성을 인정받는 나라는 은(殷)이지만, 우리의 옛 조선 역시 이곳에서 태동했다. 그 이후 제비 ‘연’을 썼던 연(燕)나라와 제(齊)나라를 들 수 있다.
은(殷)의 시조는 검은 새, 즉 현조(玄鳥)가 내려와 생겨났다고 사마천의 사기에 전한다. 그런데, 현조는 바로 제비이니 연(燕)나라와도 그 유래가 통한다.
여기서 얘기해두고자 하는 것은 동이 사람들의 시조 신화(神話)는 예외 없이 새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 고대 삼국의 신화에 새의 알로부터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른바 난생설화(卵生說話) 역시 새와 관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의 주와 초 등의 나라에서는 시조 신화로서 새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왜 새와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 여기서의 새는 태양신의 사자,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일러둘 것은, 현조라고 하니 검은 새인 줄 알지만, 원래 현(玄)자의 의미는 ‘검다’는 뜻이 아니라 ‘빛난다’는 의미였다는 점이다. 빛난다는 말이 나중에 어둡다 또는 검다는 뜻으로 변하는 의미전도 현상은 현(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언어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바람에 잘못 알려진 단어들이 대단히 많다.
영어의 ‘검다’인 BLACK 도 원 의미는 빛이 난다는 뜻이었고, 흑해라고 알려진 카스피 해 역시 원 뜻은 빛나는 대양이란 뜻이다. 한ㆍ일간에 있는 현해탄 역시 검은 바다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한 바다라는 뜻이었다. 옛날 징기스칸의 도읍이었던 카라코럼도 마찬가지이다. 검은 숲 해서 흑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역시 빛나는 숲이라는 뜻의 몽고말이다.
그런데 이 현(玄)자의 뜻이 ‘빛나는’에서 ‘검은’이라는 것으로 의미가 전도된 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일로서 전 세계적으로 기원 전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은의 시조가 현조에서 왔다는 말을 했을 때의 현조는 빛나는 새였지만, 그 이후 검은 새인 제비를 나라 이름으로 했던 연(燕)나라 때 와서는 이미 검은 새로 변해 있었으니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세기를 전후한 시점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검은 새는 중국에서는 제비, 한국에서는 까치,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그 대표 주자였으니 이 모두 그 지방에 흔한 검은 새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조는 원래 빛나는 새, 즉 태양의 사자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무용총 그림을 보면 무사들이 머리에 새의 깃털을 꽂고 말을 몰고 사냥을 하고 있다. 이렇듯 머리에 새의 깃을 다는 풍습이 말해주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태양의 사자로부터 조상이 유래했다는 신앙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풍습은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관리들이 쓰는 갓에는 새의 깃털이 달려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이번에는 제 나라 이야기를 해 보자.
나라 이름 제(齊)는 세상의 중앙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제 나라 사람들은 그네들이 세상의 중심에 산다고 여겼던 탓이다. 한자로 배꼽을 제(臍)라고 하는데 그 역시 몸의 중앙에 위치해 있기에 그런 글자를 만든 것이다.
중국 문화에 있어 제나라는 변방 문화로 치부되고 있지만, 한자가 만들어지던 당시에 제는 천하의 중앙이라는 뜻이었으니 이 또한 한자(漢子) 역시 동이 사람들의 창안이며, 은과 제는 당시 중국에서 중심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난 것은 제(齊)라는 글자가 중앙이라는 뜻이라 했는데 그보다 더 앞선 의미에서 제는 우리말에서 ‘땅’을 뜻하는 말이라는 점이다. 우리말에서 ‘제’는 시간이나 장소를 가리키는 대명사이며, 그 중에서 장소는 ‘데’라는 말로 그리고 시간은 ‘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동이족에 속하는 제(齊)나라 사람들은 그네들이 사는 곳을 처음에는 그냥 ‘땅’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천하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의미를 격상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연태나 청도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나가 있는 산동 반도에 가보면 산동인들의 골상은 중국인보다 우리 쪽에 더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 청도를 중국 발음으로 ‘칭다오’라고 하면 오히려 못 알아듣고 그냥 청도라 하면 더 잘 알아듣는 것을 보면 그 지방 사람들이 혈통과 언어가 우리와 대단히 가깝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산동 지방 사람들은 충직하고 용맹하여 무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수호지에 나오는 그 유명한 양산박도 산동 지방에 있으며, 과거 만주의 마적(馬賊)들 역시 고향은 대부분 산동이었다. 그리고 산동 지방은 독특한 무술이 싹을 피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사마귀의 자세를 흉내 낸 당랑(螳螂)권이나 강맹한 기세를 중시하는 팔극(八極)권 역시 산동이 고향이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공자가 싫어했던 해양문화적인 요소가 가장 강했던 곳이 바로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인데, 그 대표가 은(殷)이고 그 다음으로 연과 제의 지방이었다.
그러나 중국 문화에 엄청난 자양분을 공급했던 요소들은 모두 연과 제 일대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음양오행설과 산해경(山海經), 신선사상, 나아가서 도교(道敎)의 원 뿌리는 연과 제에서 주어진 것이며, 춘추전국 시대의 다양한 문화와 학문 역시 그 요람은 공자의 고향인 노(魯)와 제 나라, 그리고 연 나라였다.
이는 질박하기만 했던 중국 내륙의 주 문화에 동이 사람들이 꽃피운 해양 문화의 다양성이 들어가면서 그토록 화려한 사상과 학문의 르네상스를 개화시켰던 것이다.
연과 제의 바닷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 현상과 세상의 신기한 일을 상상력을 발휘해서 설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음양오행설이며, 신선 사상에 그 기원을 두는 도교 사상이다.
오행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추연이라는 사람 역시 연과 제 출신의 방사(方士)였으며, 이 지방에는 그 외에도 무수한 방사들이 등장하고 활동했다는 것을 역사서는 전하고 있다.
진시황을 설득해서 불로초를 구한다고 삼천 동남동녀를 데리고 바다로 떠났던 서불-한자로는 徐市라고 쓰는데 이 역시 市의 원음은 ‘시’가 아니라 마을을 뜻하는 우리 고유의 말인 ‘불’ 또는 ‘부리’라는 점 언젠가 이 칼럼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과 기타 무수한 방사들이 황제나 권력자들을 유혹하곤 했었다.
발해만 일대의 사람들은 신기루 현상을 발견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신(蜃)이라는 바다의 용이 기를 내뿜어서 만들어내는 공중누각이라고 설명했던 점은 무척이나 즐거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공상이 집적된 책이 산해경(山海經)이니 이야말로 그리스 신화에 뒤지지 않는 상상력의 보고라 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와 상상력이 활개를 치던 발해만 일대는 바로 우리 한민족의 주된 뿌리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고조선이 이 곳에서 강역을 세웠고 나중에 또 다른 동이 사람들이 만든 연(燕)과 이 일대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것이니 발해만은 진실로 우리 문화의 원류가 형성된 곳인 것이다. 나중에 그 갈래가 한반도 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서서히 반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니 오늘은 여기서 그치고 다음에는 한반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