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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름버그의 피살, 그리고 '아버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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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름버그의 피살, 그리고 '아버지의 전쟁'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3> 김선일 사건과 그 처리 과정을 보고

고 김선일씨의 피랍과 살해, 한국 정부의 처리방안, 그리고 유가족들의 슬픈 모습을 살펴보면서 지난 봄 아르헨티나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악셀 불름버그 사건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1> 22세의 나이에 인질범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악셀 불름버그의 생전 모습.

블름버그 사건은 22세의 대학생이였던 악셀 불름버그라는 젊은이가 몸값을 노린 범죄자들에게 지난 3월17일 납치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는 부모들의 애타는 호소가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전해졌고 악셀의 생사 여부는 전 국민의 관심거리가 됐다.

그러나 그는 납치 6일째인 3월22일 밤, 몸값을 전해주는 과정에서 경찰들이 오히려 범죄자들을 도와주는 것 같은 모호한 태도를 취한 가운데 납치범들이 체포 직전 도주하면서 악셀을 잔인하게 살해하여 모든 아르헨티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장래식을 마친 그의 아버지 후안 까를로스 불름버그는 "내 아들의 납치와 살해사건은 경찰의 비호 아래 이어진 게 분명하다"며 공무원 부정부패 척결과 사법부 개혁을 외치기 시작했다.

<사진 2> 15만의 성난 아르헨티나 군중들,범죄자들의 엄정한 처벌을 외치고 있다.

후안 까를로스 불름버그는 "아르헨티나 형법이 너무나 인도주의에만 얽매어 범죄자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왔는데 이런 물렁한 법이 강력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면서 "공직자들과 사법부 판사들이 범죄 근절과 예방에 대해 더 큰 의무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법부 판사들은 국민들보다 범죄자들과 살인자들과 훨씬 친밀하게 지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아르헨티나 국민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4월2일 형사법 개정을 위한 2백만명 서명운동 촛불집회를 국회의사당 앞에서 주도하고 '악셀 범죄
추방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이날 시위는 일반시민 15만명 이상이 운집하여 입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들 시위대는 대통령궁 앞까지 행진, 정부의 개혁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악셀의 아버지는 또 형사법개정안을 심의하는 국회의사당을 방문, 범죄예방법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고 국회의원들을 향해"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충고했다. 그의 행동은 아르헨티노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악셀 범죄 추방운동'은 범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악셀 불름버그의 죽음으로 불법무기소지와 무장강도 처벌법이 강화됐으며 강력범에 대한 집행유예 금지법이 신설됐다. 또한 연방경찰의 수사본부장이 불름버그 납치 연루혐의로 체포됐으며 5백여명의 경찰간부들이 부정 부패와 범죄자들과의 연루혐의으로 줄줄이 옷을 벗었다.

사법부 역시 불름버그가 높이 쳐든 개혁의 촛불에 의해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4명의 대법원판사가 개혁성 인사로 바뀌었으며 재판과정의 개혁이 이루질 전망이다. 사법부 개혁과 형사법 개정을 위한 2백만명 서명운동은 현재 4백8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후안 까를로스 불름버그는 이제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이번 주 유럽을 방문, 범죄예방과 사법부개혁에 대해 각종 세미나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다. 또 악셀 범죄 추방운동을 국제적인 단체로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불름버그 납치 살해 사건과 한국의 김선일씨 납치 살해사건을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악셀의 납치범이 단순히 돈을 노린 국내 범죄조직이었다면 김선일씨 납치범은 반미 이슬람 항전을 펼치는 고도의 정치적 조직이다. 나아가 우리 외교부의 무능과 무관심이 문제의 전부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김씨 비디오를 최초 입수한 미국 AP 통신의 모호한 사후 처리, 이라크 주둔 미군의 사전 인지 여부 등 아직도 밝혀져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따라서 지금은 김선일씨의 납치에서 살해까지의 과정이 소상히 밝혀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드러난다면 철저한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국가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 아닌가.

<사진 2> 아르헨티나 사법부개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외치는 악셀의 아버지 후안 까를로스 불름버그.

김선일씨 사건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란을 바라보며 얼마전 후안 까를로스 불름버그가 내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절규처럼 외친 마지막 말이 필자의 뇌리에 남는다.

"나는 이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아들을 잃었다.그러나 내 아들의 죽음이 아르헨티나 사법부를 바꾸고 정부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제2의 악셀 불름버그 사건이 다시는 생기지 않는다는 데 일조를 했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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