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학회가 대통령 탄핵방송을 "공정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낸 것과 관련해 이번 연구 보고서의 의뢰 당사자이기도 한 이효성(성균관대 교수)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오히려 보고서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 부위원장 "산술적 균형을 공정보도로 오인"**
이 부위원장은 지난 11일 인터넷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언론학회 '탄핵방송' 분석의 오류> 제하의 글에서 "공정성은 결코 시시비비 없는 중립성이나 초연성과 동의어가 아니며, 또한 대립되는 의견의 기계적 또는 산술적 균형과도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의 이같은 지적은 한국언론학회의 이번 보고서가 공정보도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산술적인 방식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 부위원장은 자신이 이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영국 BBC방송의 예를 들었다.
이 부위원장은 "BBC는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한 규정에서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적정한 정확성과 불편부당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또, '적정한 불편부당성이 모든 문제에서 절대적인 중립성이나 기본적인 민주적 원칙에서의 초연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제작지침서>에는 '사실적 프로그램에서 불편부당성은 각각의 견해가 단순히 동등하고 대립적인 견해로 보완되는 수학적 균형에 의해서는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산업적 또는 정치적 논란의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상이한 주요 견해들은 그 논쟁이 활발한 동안에는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이 부위원장은 "여기서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는 말은 의견의 지지도에 따라 보도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수학적 균형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공정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따라서 탄핵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언론학회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이 점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부위원장의 이같은 견해는 방송위가 이후 각 방송사에 대한 제재수위를 결정하는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언론학계의 뜨거운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언론 현업단체, 언론학회 규탄 목소리 잇따라**
한편,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에 대해 언론 현업단체들은 지난 11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언론학회의 오류를 질타했다. 이들 단체들은 오는 15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의 외압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방송위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 위원들의 전원사퇴를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은 11일 논평에서 "탄핵 국면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성찰을 요구하는 계기였고, 방송이 민주주의에 강조점을 두는 보도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한국언론학회 보고서가 주창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대다수 언론들이 극도의 '자본 편향'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진실 보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이명순)도 11일 논평에서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는 '3.12 대통령 탄핵사건'을 '정치적 쟁점' '갈등 사안'으로 치부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출발점 자체가 잘못됐던 것으로 평가된다"며 "방송위는 이미 지난 4월 16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탄핵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분석보고서에서 '언론매체는 상반된 두 입장을 균형적, 중립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지만 이는 찬성과 반대가 엇비슷한 현재진행형인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결론을 내린 것도 심의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이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
***<언론학회 '탄핵방송' 분석의 오류>**
보도에서 공정성 또는 불편부당성이 크게 문제되는 경우는 보도 사안에 관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다. 이때 시시비비 없이 중립적이거나 초연한 자세로 대립되는 의견을 산술적 균형을 갖추어 제시하는 보도가 공정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성은 결코 시시비비 없는 중립성이나 초연성과 동의어가 아니다. 공정성은 또한 대립되는 의견의 기계적 또는 산술적 균형과 동의어도 아니다.
***영국 BBC의 보도 공정성 원칙**
이렇듯 공정성은 산술적 균형이나 중립성이 아니라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방송으로 칭송 받는 영국 BBC가 공정성에 관해 강조하는 기본 원칙이다. BBC는 여왕으로부터 칙허장을 받을 때마다 문화부와 합의서(the Agreement)를 작성한다. 그 합의서의 제5부는 프로그램 기준(Programme Standards)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5.1조에서는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적정한 정확성과 불편부당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treat controversial subjects with due ccuracy and impartiality)고 하면서도 5.5조에서는 "적정한 불편부당성이 모든 문제에서 절대적인 중립성이나 기본적인 민주적 원칙에서의 초연함을 요구하지 않는다"(due impartiality does not require absolute neutrality on every issue or detachment from fundamental democratic principles)고 단언하고 있다.
BBC가 칙허장과 합의서에 기초해서 마련한 <제작자 지침>(Producers' Guidelines)은 이점을 보다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침서>의 불편부당성에 관한 섹션에서 "사실적 프로그램에서 불편부당성은 각각의 견해가 단순히 동등하고 대립적인 견해로 보완되는 수학적 균형에 의해서는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impartiality in factual programmes may not be achieved simply by mathematical balance in which each view is complemented by an equal and opposing one)고 지적하는가 하면 "산업적 또는 정치적 논란의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서 상이한 주요 견해들은 그 논쟁이 활발한 동안에는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In reporting matters of industrial or political controversy the main differing views should be given due weight in the period during which the controversy is active.)고 못박고 있다. 여기서 "적절한 무게가 주어져야만 한다"는 말은 의견의 지지도에 따라 보도의 양이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수학적 균형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공정하다는 뜻이다.
***수학적 균형보다 지배적 의견 반영이 우선**
이러한 공정성 또는 불편부당성의 원칙은 BBC가 최근에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을 BBC가 수용한 것이다. 1977년의 <방송의 미래에 관한 위원회 보고서>(일명 <애넌 위원회 보고서>)는 적정한 불편부당성은 균형이나 중립성과는 다르다며 그것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지적했다.
첫째, 가급적 최대 범위의 견해와 의견(the widest possible range of views and opinions)이 표현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방송은 견해의 범위뿐만 아니라 그 견해를 갖는 의견의 무게(the weight of opinion which holds these views)도 고려해야 한다. 공중으로 하여금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해야 한다는 방송의 의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조차 비중 있게 다루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방송은 견해의 범위와 의견의 무게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이런 원칙 하에서 방송이 논쟁적인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권고했다. 공정성에 관한 이 지적은 이후 BBC의 프로그램 기준으로 수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BBC의 공정성에 관한 원칙은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다룰 때는 기본 상식이다.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분석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탄핵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언론학회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이 점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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