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를 비디오로 보고 나서, 제목에 대해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솔직히 일본 만화의 원제나 박 감독의 영화 제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한국에서 너무도 유명해진 ‘old boy’라는 말이 미국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미국에서 ‘old boy’ 하면 즉각 ‘old boy network’라는 표현을 연상하게 된다.‘Old boy’란 물론 표면적으로 동창생을 뜻하는 말이지만, 보통 동창생보다는 기득권층의 백인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인다. 미국의 지배층의 세력은 서로 문화가 통하고 코드가 맞는 백인들끼리의 인맥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눈엔 쉽사리 보이지 않는 이런 ‘동창생’들의 은밀한 ‘네트워크’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존재는 미국에서 살다 보면 분지를 에워싼 산세처럼 누구나 자연스레 의식하게 되며, 이를 지칭하는 ‘old boy network’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에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old boy’라는 말은 영국의 prep school(상급 예비교)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국의 상급 예비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사립고등학교를 말하는 미국의 prep school과는 형태가 약간 다른데, 경쟁률이 높은 영국의 공립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8-13세 소년들이 다니는 특수 학교를 말한다. 대영제국의 전성기 때 해외에 파견된 문ㆍ무관의 자식들의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 생겨나기 시작한 이들 예비교는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남학생들만 다니는 기숙학교였다.
부모가 모두 같은 지배계층인데다가, 학우는 모두 남자이고, 타 인종도 없이 백인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기에, 몇 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한 그들만의 문화와 언어가 그들을 평생 동지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old boy’라는 표현에는 이제 나이가 들어 나름대로 한몫씩 하는 자들이, 소년(boy)때 고락을 함께했던 학우들을 향해 느끼는 애정이 담겨있다. 요즘 영국에서나 미국에서나 prep school들이 많이 남녀공학으로 바뀌고 학생들의 인종분포도 다양해지고는 있으나, ‘old boy’라는 말에는 여전히 백인 기득권층의 냄새가 배어있다.
미국도 학교의 형태는 달라도, ‘올드 보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맥락은 같다. 미국에서 상류층 백인들간의 ‘old boy’ 관계가 형성되는 현장의 분위기는, 1989년에 나온 피터 위어 감독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들은 풍치 좋은 시골의 풍경 속에 그림 같이 자리잡고 있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버몬트주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Welton Academy)의 캠퍼스에서 함께 먹고 자며, 고상한 학업에 파묻혀 있는 ‘빽 든든한’ 백인 청소년들이다. 그들이 출세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돈 많은 부모들의 기대의 무게에 주눅들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하며, 때때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특권층의 자식들인 그들의 미래는 대체로 보장되어 있다. 약간 단순화하여 말한다면, 이 같은 특권층의 아들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형성하는 파워그룹이 바로 ‘old boy network’이다.
필자가 한때 다니던 미국직장에서도 ‘old boy’와 ‘old boy network’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곤 했는데, 여성직원들이나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류세력을 두고 약간 소외감이나 불만을 표시하며 언급되곤 했다. 쑥덕공론을 늘어놓는 와중에 ‘올드 보이’라고 칭해지는 이들은 예외 없이 백인이었고, 대부분 간부직원이거나 간부직원들과 막역한 사이었다. 대개 불만의 요지는 이들이 서로간의 커넥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서로를 부당하게 감싼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학벌이 한국에 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출신학교를 따지지 않아도 백인 남성들끼리는 쉽게 통하기 마련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도, 백인문화를 공유하는 가진 지배계급이라는 것이 이들 ‘올드 보이’들이 갖는 공통분모이다.
이런 견지에서, 클린턴 정부에서 법무부 인권담당 차관보를 지내고 최근 예일법대 학장에 선임된 고흥주씨는 엄밀히 따져 ‘old boy’라고 할 수 없다. 같은 명문대를 나왔다 해서 누구든지 그렇게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old boy’란 무엇보다도 예로부터 백인들끼리 서로를 지칭하여 사용해온 동질감의 표현이다. 학벌과는 관계없이, 같은 백인끼리의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편하게 같이 지낼 수 있는, “오래된 느낌을 주는” 친구를 얘기하는 것이다. 최소한 통념상으론, ‘old boy’라는 표현은 그 원천이 영국의 백인 상류사회인만큼 백인이 아닌 사람을 두고 썼을 때 어색하게 들린다. 돈도 학벌도 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고흥주씨는 피나는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같은 예일대를 다니다가 성적이 나빠 중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부통령이 된 딕 체니의 출세과정을 보자.
이 사람이 예일에 입학(1959년)하게 된 것은 여자친구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체니가 고등학교에서 만나 사귄 린 빈센트(현재 체니의 부인)는 체니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낸 와이오밍주의 석유갑부 토마스 스트룩(Thomas Stroock)의 비서로 취직해 있었는데, 스트룩은 그녀가 소개한 체니의 풍채가 대번에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조지 부시와 함께 예일을 나온 스트룩은 얼마 후 예일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친구 좀 받아주지 그래”라고 했고, 체니는 그 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예일대학에 입학했다. 그래도 체니는 끝내 예일에서 중퇴했고, 와이오밍으로 돌아와 전기공으로 취직해 6년을 일했다. 그러다가 와이오밍 주립대에 입학한 후, 결국 스트룩을 위시로 한 여러 인맥을 통해 정치에 입문하여 1966년 위스콘신 주지사 보좌관이 됐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체니가 오늘날 부통령 자리에 오를 때까지 그 인맥의 영향이 그를 항상 따라다녔음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백인들의 ‘old boy network’는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도도하게 존재한다. 같은 피부색과 문화를 편하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낚시를 다니고, 테니스를 치고, 서로 집에 초대하여 뒷마당에서 바베큐를 하며 조용하게 인맥을 키워간다. 이 네트워크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요란하게 공식 모임을 갖지도 않지만,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을 연결하는 전력선을 타고 움직인다. 누군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The old boy network is the community of interests that tries to keep society out of its sanctuary” – “올드 보이 네트워크란 사회가 자기의 성역권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려 애쓰는 이해집단이다.”
체니는 요즘 연방 대법관 안토닌 스칼리아와 가끔씩 제물낚시를 하러 나간다. 스칼리아는 연방대법원의 2000년 플로리다주 대선 개표에 대한 심리에서 부시-체니의 손을 들어준 5명의 대법관 중 한 명이다. ‘올드 보이’들은 이렇게 미국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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