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성 강화를 강조해온 방송사업자들이 방송법시행령개정 공청회에서는 자사 이익과 관련한 요구만을 전면에 내세워 빈축을 사고 있다. 공청회에서 방송사업자들은 줄곧 '규제완화'를 주장했고, 이에 맞서 언론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공익성과 공영성은 뒷전으로 한 채 시장성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방송위, 방송법 13개 주요항목 개정 추진**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는 지난 5월 15일 입법예고한 '방송법시행령중개정령안'(시행령개정안)에 따라 지난 2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유관단체 초청 공청회를 가졌다.
방송위가 추진하고 있는 시행령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모두 13개항으로 압축된다. 기존의 지상파방송 종합유선방송 위성방송으로 구분해 오던 방송 분류를 바뀐 미디어상황에 따라 텔레비전방송 라디오방송 데이터방송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도입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가장 큰 취지다.
시행령개정안에는 이와 함께 △방송사업의 겸영에 있어 '경영'으로 보는 최소 주식 소유범위를 1%이상으로 규정해 규제 완화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지상파DMB사업자간 겸영범위와 위성방송사업자 상호간의 겸영범위 신설 △방송채널사용사업의 등록요건 규제 합리화 △비상업적 공익광고 등 사후 심의 △종합편성 데이터방송프로그램의 편성비율 완화 △국내 제작 영화·애니메이션 의무 편성비율 완화 △지상파DMB사업자와 위성DMB사업자에 대한 토막광고·자막광고 규제 완화 등이 담겨 있다.
***방송사업자들 "규제 더 완화해 달라"**
이같은 방송위의 시행령개정안은 상당 부분 현행보다 방송사업자 입장에서 각종 규제의 틀을 완화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KBS, MBC, CJ케이블넷,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 TU미디어(위성DMB사업자) 등 방송사업자들은 이마저도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지상파방송사업자들의 협의체인 한국방송협회 몫으로 공청회에 참석한 KBS와 MBC 관계자들은 이번 시행령개정안에 대해 "기존 방송사들의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이준안 KBS 방송문화연구소 차장은 "시행령개정안은 여전히 기존 지상파방송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 같다"며 그에 대한 이유로 "지상파DMB 참여에 있어 기존 방송사의 진출을 지나치게 견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윤희 MBC 정책기획팀장도 "시행령개정안은 기존 지상파방송사의 지상파DMB 진출을 2개 채널로 묶어두고 있으나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앞으로의 방송환경 변화를 예상해 4개 채널을 패키지로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팀장은 또 △시청률 1%미만에 그치는 창작 애니메이션의 편성비율 완화 △방송사업자의 과태료 인하 △현행 5.25%인 MBC의 방송발전기금을 KBS EBS 수준인 3%대로 인하해 줄 것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밖에 CJ케이블넷측은 "사업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시행령개정안의 소유지분 제한 등 각종 규제를 더욱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TU미디어측은 "위성DMB와 관련해 방송분야의 교육적·사회적 역할 등을 고려, 방송위가 고시한 채널을 포함토록 한 것은 잘못된 처사인 만큼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시민단체 "차라리 방송법 없애자고 해라" 반발**
방송사업자들이 '규제 완화'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자 이번에는 공청회에 참석한 언론·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럴 바에야 솔직히 방송법을 없애자고 요구하는 게 낫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경조 한국애니메이션제작사협회 이사는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을 살리자고 하면서 의무 편성비율을 낮추고, 심지어 시청률까지 운운하는 것이 과연 방송위와 방송사들이 할 일인가"라며 "특히 MBC는 공영방송사임을 내세우면서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 투자에 있어 SBS에 훨씬 밑도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고, KBS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전체 편성의 44.4%이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셈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민 이사는 "이런 식으로 법을 개정해 나간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송위와 방송사를 상대로 전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몰아세웠다.
최영재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차장은 "시행령개정안은 국내 영화의 경우 현행 30~50%였던 편성비율을 20~40%로 하향 조정한 반면, 외화는 100분의 60에서 100분의 70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이는 방송개방까지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스스로 몸을 낮춰 안방에 외화범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 이제 자리잡혀가고 있는 문화정책에 찬 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성토했다.
김상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처장은 "신규 미디어의 진출에 따라 시행령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전반적인 흐름은 마치 공익성과 공공성은 뒷전으로 한 채 시장성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법을 고쳐서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이남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정책위원은 "오늘 공청회에 참석하고 보니 방송의 공익성이 시장성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그것이 어떤 규제이며, 또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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