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경계선이 캐나다 국경인 노스 다코타주의 파고(Fargo)시는 미네소타주와 노스 다코타주 사이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소도시이다. 남한 땅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노스 다코타는 동쪽으로 맞닿아 있는 미네소타주와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2002년 63만 추산)는 미네소타에 비해 8분의1, 인구밀도는 6분의1 수준이다. 인구는 90년대부터인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며, 방문자들도 거의 없어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관광수입이 49번째이다.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도 노스 다코타 하면 대부분 만년설로 덮여있는 춥고 황량하고 쓸쓸한 별천지를 연상하기가 일쑤다. (황량하고 쓸쓸할 수는 있겠으나, 만년설로 덮여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주 이름에 붙어 다니는 ‘North’라는 수식어가 추운 지방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큰 원인이라며 주 이름을 그냥 ‘Dakota’라고 고치자는 개명안이 선거 때마다 이슈가 될 정도니, 뭔가 특이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동네임엔 틀림없다.
코엔(Coen) 형제는 그들의 1996년 영화 ‘Fargo’의 제목을 정하는데 있어서, 노스 다코타주에 대해 세상이 갖고 있는 이 같은 인식과, 아울러 ‘Fargo’라는 도시명이 풍기는 신비스러운 느낌의 문학적 울림을 활용하려 했던 것 같다.
Fargo. Go far.
멀리 가면 무엇이 있을까. 영화는 범죄계획을 드러내 보이는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코엔 형제에게 친숙한 미네소타주(Joel과 Ethan은 모두 미네아폴리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를 모든 액션의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액션의 핵심과는 거리가 먼 ‘Fargo’라는 곳은 현실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영화관습을 깨고, 이제까지 가보지 못했던 곳에 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어쨌든 이 영화는, 코엔 형제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영화들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관념의 저편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크고 작은 충격을 선사한다. 그 크고 작은 충격이 뿌려져 있는 영화의 중심에 주인공 마지 군더슨(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있다.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 평범한 외모의 30대 후반의 여성이며, 타운의 경찰서장이다. 이 경찰서장은 임신 8개월,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있다. 그런데 그녀는 콜롬보 탐정도 부럽지 않을 수사감각으로 살인사건을 빈틈없이 추적하여, 결국 자신보다 덩치가 두 배쯤 되는 살인범을 단독으로 검거한다.
시골 동네의 작은 경찰서이지만 주인공을 일반 여경도 아닌 경찰서장으로 설정하고,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만삭의 몸매를 부여했다는 것은 무엇이든 특이하게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코엔 형제의 작가 성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마지 군더슨이라는 캐릭터의 설정은 상식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Fargo’는 코엔 형제의 여느 작품만큼이나 엽기적 요소들이 풍부한 영화지만, 마지의 인물설정은 어떤 면에서 이 영화 중에서 가장 엽기적인 요소이다.
물론 특이한 인물설정만으로는 명작을 보장하지 못한다. ‘Fargo’가 마지 군더슨의 캐릭터를 이같이 설정해 놓고, 엽기적 폭력에만 치중하며 그녀의 캐릭터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 설정은 한낱 장식효과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97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는 이 여자 주인공을 오래 기억될 여걸로 만들어 주었다. 뒤뚱거리는 몸 동작의 한계를 계산에 넣어 액션을 꾸미고, 곧 아기엄마가 될 그녀와 남편 사이의 다정한 관계를 곁들여 캐릭터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파고’의 마지 군더슨은 사건을 뚝딱 해결하는 단순한 2차원적 영웅이 아니라, 해방된 여성의 아주 구체적인 이상형으로 승화된 것이다.
1984년에 나온 코엔 형제의 데뷔작 ‘Blood Simple’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영화의 엽기적이면서 아이러니컬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애비(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모든 상황이 끝나면서 내뱉은 마지막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공포에 질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그녀는 화장실 문 저편에서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후,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쿵 하고 쓰러지자 이렇게 나지막하게 말한다. “I ain’t afraid of you, Marty.” – 마티, 난 당신이 무섭지 않아. 그녀는 물론 총을 맞고 쓰러진 남자가 남편(Marty)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지만, 그녀의 조용한 이 한마디는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내적으로 강한 여성의 명심해야 할 선언으로 필자에게 와 닿았었다.
이같이 첫 작품에서부터 일찍이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었고,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버나)이나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에드위나)에서 처럼 강한 여성들을 액션의 핵심으로 심어 놓았듯이, 코엔 형제는 자신들이 매우 모던한 여성상을 품고 있음을 시사해 왔다. ‘파고’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서 종종 봐온 여성상의 완성체를 이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성스럽게 빚어진 이 여성상의 완성체는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대수롭지 않은 듯 우리 앞에 나타난다.
‘파고’에서는 경찰서장인 마지 군더슨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으며, 그녀가 임신 8개월이라는 것조차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무슨 사무직도 아니고, 만삭의 몸인 여자가 완전 무장을 하고 살인범을 뒤좇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
마지의 임신상태가 몇 차례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녀 자신이 지나가는 말로 대수롭지 않게 얘기할 뿐이다.
1. [마지가 새벽에 전화를 받고 첫 살인사건의 현장에 나갔을 때, 현장을 조사하다가 갑자기 허리를 굽힌다]
LOU: Ya see something down there, Chief?
(서장님, 그 아래 뭐가 보이십니까?)
MARGE: Uh - I just, I think I'm gonna barf.
(어, 그냥, 토할 것 같아서.)
LOU: Geez, you okay, Margie?
(이런, 괜찮아요, 마지?)
MARGE: I'm fine - it's just morning sickness.
(괜찮아요. 그냥 아침 구토증이에요.)
[눈을 털고 일어서며]
MARGE: Well, that passed.
(휴우, 지나갔군.)
LOU: Yah?
MARGE: Yah. Now I'm hungry again.
(그래요. 이젠 또 배가 고프네.)
2. [부인의 납치를 사주한 제리 룬드가드(윌리엄 H. 메이시 분)의 사무실에서]
MARGE: [배를 두드리며] Mind if I sit down? Carrying quite a load here.
(잠깐 앉아도 될까요? 짐이 꽤 무거워서요.)
JERRY: [이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처럼 ‘파고’에서는 경찰서장인 마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화두가 되지 않음은 물론, 그녀가 만삭의 몸을 끌고 살인범을 잡으러 다닌다는 것도 호들갑을 떨 일이 못 된다. 코엔 형제의 시나리오는 의식적으로 시종일관 이러한 태도를 유지한다. 영화에서는 대사 중에 여성 경찰서장인 마지를 지칭하여 ‘woman’이라는 표현이 단 한번도 쓰이지 않는다. 이 대단한 주인공이 여성임을 생색내지 않겠다는 얘기다.
오히려 마지는 자신의 직업이나 임신후기 상태를 생색내기는커녕, 수시로 남편 놈(Norm: Norman의 애칭, 우리말로 적어놓으니 좀 그렇다)을 챙기고 그가 하는 일에 대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는 출세지향적 커리어 우먼이 아니라, 커리어를 가진 아내이자 임부일 뿐이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에게 낚싯밥을 사다 주기도 하고, 우표그림 대회에 응모한 남편이 자신의 그림이 3센트짜리 우표에 당선됐다고 하며 쑥스러워 하자, 그에게 3센트짜리 우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며 “당신이 참 자랑스럽다”고 하는 마지의 모습 – 꼭두새벽에 나가는 마지를 위해 “아침은 먹고 나가야지” 하며 아침상을 차려주는 남편 놈의 모습과 함께, 여기에 이 영화의 가치의 중심(moral center)이 있다. 온갖 비양심적 행동과 엽기적 폭력과 살인의 장면들을 관객에게 선사한 뒤에, 영화는 말미에 그 중심을 다시 찾는다. (일하는 아내를 ‘내조’하는 남편의 이름 ‘Norm’이 ‘표준’을 뜻하는 단어와 같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듯하다.)
희대의 살인사건을 단독으로 해결하는 임신 8개월의 여성 경찰서장. 이 대단한 설정에 대해 ‘파고’는 전혀 티를 내지 않는다. 영화는 마지 군더슨의 모든 면면을 일상적인 차원에서 보여주며, 그녀에게 선심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녀 또한 단 한번도 ‘나 이런 사람이오’ 하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며, 자신의 지위나 임신상태에 대해 특별한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결국 ‘파고’는 완벽하게 평등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평등’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조차 무안하게 만든다. 많은 것을 이룩한 여성에 대해, 사회가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괜한 시선을 주지 않는, 모두가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여성해방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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