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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의 상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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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편견과 차별의 상호주의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18> ‘Snatch’,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영국 감독 가이 리치의 1998년 작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이하 'Lock, Stock')의 제목은 '몽땅'을 의미하는 'lock, stock and barrel'이라는 관용구에서 따왔다. 이 관용구는 총기의 3개 주요 부분인 격발장치(lock, 요즘엔 'action' 또는 'receiver'라고 함), 개머리판(stock), 그리고 총신(barrel)만 있으면 총 한 자루가 된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이 관용구에 형용사 'two'와 'smoking'을 곁들여 영화의 핵심 물건인 두 자루의 골동품 장총이 2연발식이라는 것을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동시에, 총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범죄액션의 즉시성까지 제목에 한꺼번에 담았다.

('Lock, stock and barrel'이라는 표현은 그 유래가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말로, 총이 하나의 큰 재산 목록이었을 시절에 생겨난 말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소유물의 전부를 뜻하는 관용구가 총기에서 나왔다는 것은 예로부터 앵글로색슨 문화에서 일반 개인에게도 총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중요한 물건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약간 욕심을 부린듯한 느낌이 있는 이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리치는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감독이다. 이 영국영화가 주는 즐거움의 절반쯤은 캐릭터들이 내뱉는 뒷골목 런던사투리(cockney), 그리고 평범하거나 진부한 표현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야물찬 대본에 있다. (한국에서 자막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목부터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즈'라고 '번역'되어 나온 것을 보면 그 언어의 유희가 자막에서 반영되었을지 자못 의심스럽다. 이 황당한 국내용 제목을 보고 있자니 수입영화 자막을 다는 장본인들의 철학이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Lock, Stock'으로 일약 주목 받는 감독으로 떠오른 리치 감독이 이어서 내놓은 '스내치(Snatchㆍ2000)'도 'Lock, Stock' 못지 않게 대사가 재미있는 영화인데, 제목만을 놓고도 얘깃거리가 무성했다. 'Snatch'라는 단어는 물론 '잡아채다', '낚아채다'의 뜻을 가진 말로 영국에서는 '도둑', '강도' 또는 장물 따위를 '조심스럽게 취득하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데, 이 말을 미국에서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snatch'라고 했을 경우 저속한 말로 둔갑해버릴 수가 있다.

미국에서 'snatch'라는 단어는 명사로 쓰일 때 비속어로 보통 여자의 질(膣)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할 당시 제목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배급사(Sony Pictures Entertainment)의 종용으로 제목을 'Diamonds'로 바꾼다는 얘기도 있었고, 원제를 동사 'snatch'의 과거분사인 'Snatch'd'('Snatched'의 단축형)로 슬쩍 바꿔 비속어 뜻을 아예 배제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만든 이들과 배급사의 실랑이 끝에 결국 다행히도(필자 생각) 원제 그대로 미국에서 개봉됐다.

각설하고, 필자가 이 두 영화를 함께 묶어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젊은 감독이 연달아 내놓은 작품이라서 그런지 소재나 스타일, 그리고 스토리 전개방식이 같기 때문이다. 'Lock, Stock'을 처음 봤을 때는 그 독특한 스타일과 엽기적 코미디가 신선했으나, 2년 후에 나온 'Snatch'는 집시족으로 출연하는 브래드 피트의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대사만 빼놓으면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는 영화다.

두 영화를 묶어서 생각하게 되는 또 한가지 이유는, 두 영화가 모두 한결같이 보여주는 인종과 편견에 대한 '영국식 접근방식'이 미국에서 경험하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영국사회 전반에 대한 일반론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지난 회에 뜯어 본 '펄프픽션'에서 보여주는 '색맹사회'가 인종주의와 편견을 대충 모르는 척 묻어버리려는 미국사회의 경향을 나타낸다면, 'Lock, Stock'과 'Snatch'는 인종이나 출신국가, 그리고 지방색 등을 끊임없이 들먹이면서 그룹간의 차이와 편견을 부각시킨다. 아래 풀이한 몇 가지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인종이나 출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1 'Lock, Stock' 중 대사

"Rory Breaker? The psychotic black dwarf with an Afro?"
(로리 브레이커? 아프로 머리를 한 그 또라이 난쟁이 흑인놈 말인가?)

'Don't 'huh' me, you Greek boy… Is this a declaration of war? Is this some white cunt's joke that black cunts don't get?"
(내 앞에서 모르는 척 하지마, 이 그리스 놈아… 선전포고를 하는 건가? 이거 검은 [놈]들이 이해 못하는 무슨 흰둥이 [놈]들의 장난인가?)
[곁가지 설명 1: "Don't 'huh' me"와 같은 "Don't (xx) me" 형식의 문장은 상대방이 하는 말 중에 못마땅한 부분(xx)을 따와 반복함으로써 "그런 말은 듣기 싫다" 또는 "난 그런 말에 안 넘어가니 그런 수작하지 말아라"라는 뜻으로 쓰인다.
곁가지 설명 2: 'Cunt'라는 단어도 'snatch'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말인데, 거의 예외 없이 심한 욕설로만 쓰인다. 반면에 'snatch'는 점잖지 못한 비속어이기는 해도 욕설로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Fucking Northern monkeys."
(x같은 북쪽지방 원숭이들.)

"I hate these fucking Southern fairies."
(난 x같은 남쪽지방 호모들이 너무 싫네.)

2. 'Snatch' 중 대사

"You mean Boris the sneaky fuckin' Russian."
(그 비열한 x같은 러시아놈 보리스 말이지.)

"Or Boris the Bullet Dodger. As bent as the Soviet sickle, and as hard as the hammer that crosses it."
(총알 피해 다니는 보리스라고도 하지. 소련 낫처럼 비뚤어지고, 가로놓인 망치만큼
이나 단단한 놈이지.) [구 소련의 국기에 비유한 말이다.]

"He's about as Jewish as he is a fucking monkey."
(그가 유대인이라는 건 그가 [x같은] 원숭이라는 것만큼이나 개연성이 있다.)

"They ain't pikeys, eh? I fuckin' hate pikeys."
(그놈들 파이키는 아냐? 난 x같은 파이키놈들이 싫다네.) [Pikey: 주로 아일랜드 계통인 집시 또는 유랑민을 지칭하는 영국식 표현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이동주택에 사는 하층민을 비하하는 'trailer trash'라는 표현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이 섞여 살고 있는 국제도시 런던을 배경으로 한 'Lock, Stock'과 'Snatch'의 캐릭터들은 이처럼 타 인종에 대해 자신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생각들을 숨기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은 인종간에 존재하는 굵은 선을 아예 무시하려 하지만, 리치 감독의 두 영화는 인종과 그룹이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서로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는 현실을 대사와 액션에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다.

그리고 필자 생각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이 영화의 비주류 인종과 그룹들은 주류사회에 예속되어 있거나 오로지 주인공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처럼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이든, '파이키'든, 흑인이든, 그들은 모두 각자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주인공들을 비롯한 앵글로색슨 백인들과 상대하는 데 있어서 (때로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백인들의 가치관을 강요 받지 않은 독특한 스타일과 존엄을 유지한다.

따라서 인종간의 구분이 너무도 뚜렷한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것은 한 그룹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종과 출신지역이 다른 여러 그룹들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종의 '인종 의식'(race consciousness)이다. 미국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영양가 없는 토크니즘은 여기에서 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영국사회의 인종문제 접근방식이 미국사회의 그것에 비해 더 건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피부색과 문화가 다른 그룹들이 서로 같아질 수 없을진대, 미국에서처럼 '색맹사회'를 운운하며 엄연히 존재하는 서로의 이질성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상책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인종간의 편견과 차별은 외교에서처럼 상호주의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차별을 당하기만 하면서, 차별하는 자들이 차별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굴욕적인 자세다. 편견과 차별의 근원들을 물론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으나, 내가 주류가 아니라고 해서 저자세를 취한다거나 그들이 내가 속해있는 그룹보다 우월하다는 열등의식에 빠져드는 것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 편견과 차별의식은 누구나 갖고 있는 만큼, 모두가 동등하다는 의식 하에 이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완벽할 수 없을지언정 그것이 상호공존과 상호존중의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 영국감독 리치의 'Lock, Stock'과 'Snatch' 두 작품은 문득문득 이러한 상호주의가 가능한 사회를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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