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 나라는 官妓도 많고나"- 재담의 效用**
한미수교 1백주년을 기념하여 축하사절로 미국 각지를 순회할 때의 일이다.
단장인 김용식(金溶植) 전 외무장관은 매우 유능하고 노련한 외교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만찬에서의 테이블 스피치도 일품이다. 그는 서두에 꼭 한번씩은 좌중을 웃긴다.
"백년전 우리 사절이 워싱턴에 도포 입고 왔을 때 파티에 미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으니까 '아, 이 나라는 관기(官妓)도 많고나...' 했답니다. 조선엔 부부동반이 없으니까요."
"미국사람들이 한국에는 웬 김씨가 그리 많으냐고 하기에 '여러분, 한국에 가려면 김포공항을 통해 가지요. 바로 그 김포에 공장이 있어, 김씨를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전에 어느 동양 나라 외교사절이 파리의 최고급 식당인 맥심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차린 것도 변변치 않고 맛도 없겠지만 많이 드세요' 했답니다. 그 후 맥심 주인에게 소송을 당하지 않았겠어요. 오늘은 맛좋은 음식을 많이 차렸으니 마음껏 드십시오."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 홍을 돋구니 자리가 유쾌할 수밖에 없다.
서양사람들의 말솜씨는 그렇다. 스피치는 짧든 길든 꼭 농담이나 익살로 웃음을 선사하면서 한다. 긴장이나 경계심을 푸는, 그래서 서로간에 교감이 더 원만해지는 효용이 있지 않은가. 상대를 분위기상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다. 아이스 브레이크(ice breakㆍ얼음을 깬다)라고 한다.
내가 정치에서 경험한 제일 가는 재담꾼은 심상우(沈相宇) 의원이었다. 당시 정계의 만장일치일 게다. 함께 있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웃긴다. 돌발적인 일에도 즉각 유머다. 내장산에서 세미나를 할 때 심 의원 선거구인 광주의 무등산수박을 차로 실어 왔다. 쪼개 보니 거의가 설익은 것. 그랬더니 심 의원 마이크를 잡고 "사무국장에게 수박을 보내라고 말했더니 잘못 듣고 호박을 보냈지 뭐예요." 그 심 의원은 코트 제스터(court jesterㆍ궁정 익살꾼) 역할을 맡다가 미얀마에서 불행을 당했다.
나도 정치를 시작하여 그런 비방을 써 먹기로 했다.
로타리클럽의 오찬에 초대받고 인사말에서 "일찍이 대문호 버나드 쇼가 말하기를 '어디로 가는 로타리냐, 점심밥을 먹으러 가는 로타리냐'고 익살을 떨었다는데..." 라고 시작하다가 반응이 냉담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해만 받았다.
중년부인들의 회식자리에 갔더니 맥주를 어지간히 마신 후였다. 인사를 하고 첫 인상이 어떠냐고 애교로 말했더니 "보아하니 찐빵 같구료" 한다. 무안을 당한 셈인데 이때 잘해야 한다. "어머님들(주부들은 그렇게 호칭해야 흐뭇해 한다), 마침 찐빵 최희준(崔喜準)씨가 제 대학 동기입니다." 그랬더니 웃음이 여기저기 터진다. "어머님들, 웃지 마십시오. 나는 최희준씨를 우리의 위대한 철학자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어머님들, 학교에서 공자 ㆍ맹자ㆍ소크라테스ㆍ플라톤 배웠지요. 그런데 지금 기억나는 게 있습니까. 최희준 박사야말로 우리에게 항상 인생이 무엇인가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 인생은 나그네길" 주부들 여럿이 입을 모은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한번 불러보세요"-이번은 대성공이다.
버스회사 사장이 왔다 가라기에 그 회사의 다과회에 갔더니 기사 정비사 차장(그때는 있었다) 등 1백여명을 앞에 두고 사장이 천하대세부터 시작하는 장광설을 지루하게 한 후 나에게 인사말을 하란다. 자칫 표를 잃을 수도 있다. 나는 재담으로 대신했다.
"창경원(그때 동물원이 있었다)의 원숭이와 표범이 답답하여 우리를 탈출, 서울 구경을 마음껏 했는데 배가 고픈데 돈이 없어 표범이 하는 수 없이 원숭이라도 요기꺼리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눈치 빠른 원숭이가 달아났으나 어찌 표범을 당하겠습니까. 막다른 지경에 필사적으로 전신주에 올랐으나 표범도 나무를 잘 타는 것을 알기에 눈을 감고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여러분들, 원숭이 무어는 빨개, 빨가면 홍시... 하지 않습니까. 도시에 사는 표범인지라 교통규칙은 알고 있어 푸른 신호가 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교통규칙 안 지킬 때는 속상하시죠."-히트다. 그 후 그 사회에 그 재담이 유포된 것 같다.
기독교 장로가 경영하는 공장의 점심모임에 초청받았다.
"미국 카터 대통령 때 일입니다. 대통령 전용기에 카터, 브레진스키 안보특보, 키신저 전 국무장관, 신부, 그리고 히피청년이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게 되었는데 중간에 기체이상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사람은 다섯인데 낙하산은 네 개뿐이 아니겠습니까. 높은 순서대로 낙하산을 타고 내리고 마지막에 신부와 히피청년이 남게 되었는데 낙하산은 하나뿐입니다. 그들은 서로 "젊은 히피청년이 타고 내리게. 나는 세상을 살 만큼 살았지." "아닙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히피입니다. 신부님이 타고 내리시어 세상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신부와 히피가 나란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까닭인 즉, 오만한 키신저가 "이래봬도 나는 전직 국무장관이야" 하고 성급하게 타고 내린 게 낙하산이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히피의 배낭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주워들은 이 재담을 서울서 타임잡지의 미국인 특파원에게 전했더니 그가 다른 한 가지를 들려준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 이집트 군 수뇌회의서 수에즈운하 둑 밑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헬리콥터가 새털을 떨어트려 그게 땅에 닿을 때를 기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기로 했다. 헬기에서 새털이 떨어졌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제공격이 시작되지 않는다. 가서 보았더니 이집트 군인들이 일제히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새털을 불어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재담을 국회에서 행정부의 책임전가ㆍ무사안일을 꾸짖으며 인용하였다.
키신저 재담은 그를 미워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기에 생긴 것일 터인데, 그가 공교롭게 유태인이이라 타임 특파원이 형평을 위해 아랍인을 꼬집는 이집트군대 재담을 소개한 것 같다.
서울대 정치과 출신의 친구 하대돈(河大敦) 형은 창녕에서 10대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선거운동이란 결국 밥 사 주는 것이더군" 하고 간명하게 정의한다. 구식 선거운동은 그랬다. 또한 구식 정치란 "술자리와 말"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재담도 많이 필요하다. 자꾸 되풀이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심상우 의원이 불행을 당한 후 그의 재담 메모 노트가 복사되어 나왔다는 설도 나돌았다.
선거구에서 술자리가 거듭되다 보니 재담도 질이 떨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의원님, 의대 다니다가 법대를 나왔다면서요."
"예, 나는 공교롭게 초등학교 두 곳, 중ㆍ고등학교 과정도 두 곳, 대학도 두 곳 다녔습니다. 다만 마누라만은 하나뿐이지요."
자녀 이야기가 나오는 자리면---.
"나는 천당행 티켓을 주머니 속에 갖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볼이 넷이면 포볼로 한 루를 거저 가지요. 나는 딸만 넷이니까 포볼, 천당행은 약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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