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광주에서 '민주당 텃밭 탈피'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선거를 아흐레 앞둔 광주 민심은 탄핵안 가결 과정에서 한나라당과의 공조로 충격을 안겨준 민주당에 기대는 대신 지역을 위해 힘쓸 '일꾼'에게 쏠리고 있었다.
***60,70대, "자식낳아 죽이는 마음이지만 이제는..." **
"민주당? 자식 낳아 죽이는 마음이지."
5일 오후, 광주시 남구 광주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60,70 노인들은 선거얘기가 나오자 담배부터 입에 문다. "김대중 선생을 30년간 지지했다"는 한 할아버지는 "허나 국민이 뽑은 '임금'을 갖다 내루는 꼴을 보고선 마음이 싹 돌아섰어"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옆에 앉은 다른 할아버지도 "민주당은 인심을 잃었다"며 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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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그들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수가 적어 수모를 얼매나 당혔어. 그 시절 생각혀서 여당을 도와야지, 차떼기 수괴들 손잡고 대통령을 끌어내리고는... 어찌 또 찍어달란 소리를 하는거여."
탄핵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마음만 움직인 것이 아닌 듯 했다.
마침, 5일은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이 사흘간의 3보 1배 종주를 마치는 날이었다. 노인들은 한결같이 "짠허다"는 심경을 밝혔지만 표심과 연결될 지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주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온 한 할아버지는 "석고대죄 해봤자 인제 민의는 떠났다"고 단정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한나라당 놈들한테 얼마나 당했는데... 즈그한테 총 겨눈 놈들이랑... 다시 뽑아주면 또 무슨 작당들을 할 것이여"라며 분을 삭히지 못해했다. 옆자리의 할머니도 "추미애씨를 보면서 아들 며느리들도 마음적으로는 참 안됐다고 허나 정치할 사람들을 인정을 둬서 뽑아서는 안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대여섯명씩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노인들 중 한, 둘씩은 "민주당 인물이 그 중 낫지 않어?"라며 조심스레 민주당 옹호론을 꺼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세론'에 밀렸고 "열린우리당을 뽑아 대통령한테 힘을 실어야지"라는 타박에 자리를 떠야 했다.
***청장년층,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양비론속 즉답 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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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날, 시내에서 만난 청장년들은 노인들 마냥 명쾌하지만은 않았다. 한나라당과 공조한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도 컸지만 분당을 감행했던 열린우리당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금남로에서 탄 택시를 운전하는 50대 기사는 '어느 당을 지지하냐'는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한민국에 지지할 당이 있냐"고 반문했다. 그는 탄핵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쪽으로 완전 기울었으니 야당이 선거 치르려면 탄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안된다는 걸 밀치고 끌어내려서 방맹이 쳐버린 것도 보기싫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인물이 마음에 들면 당이 싫고, 당이 괜찮으면 인물이 성에 차지 않는다"며 "이번 총선에는 투표를 않겠다"고 밝혔다.
충장로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만난 20대 점원은 "당은 옮기면 그만 아니냐"며 지지 정당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그는 집안 어른들은 어떠냐는 질문에는 "예전과 달리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드물다"며 "무관심해졌다기 보다는 한 당을 꾸준히 밀었던 사람들이라 많이 혼동스럽기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젊은 층에서는 민주당 간판이 감점요인? **
그러나 '민주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예전의 광주가 아님은 분명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대다수가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뽑겠다"고 답했고 "특정정당이라 막연히 호감이 가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마음에 드는 후보가 민주당 '간판'으로 나온 것이 선택을 주저케하는 요인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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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내에 위치한 조선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한 남학생은 "대통령이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일이고 우선은 힘을 실어주고 일 잘하도록 배려하는 게 국회의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탄핵을 주도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으로 치면 개혁하자는 사람들이 많아서 열린우리당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지만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니 현역의원이 4년동안 지역을 잘 돌본 것 같아 현역의원을 뽑고 싶지만 민주당 출신이라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다른 남학생도 "아직 누가 나왔는지 파악은 안했지만 인물을 보고 찍겠다"고 답했다. 그는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에 호감을 갖는 친구들이 많지만 민주당을 깨고 나간 데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아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 나오면 답답해 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분위기를 전하면서도 "광주도 이제는 어느 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찍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호남당이 아니냐'는 기자의 유도성 질문에 "어느시대 얘기냐"며 눈을 흘기는 광주 대학생들, 이들을 중심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인물론'은 광주는 더이상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남지 않겠다는 건강한 기세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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