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지난 4일 방영한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재규'편에 대한 논란이 일부 보수언론의 공세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MBC가 지난 99년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이제는…>은 그동안 묻혀왔던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발굴,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안팎의 호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는…>은 올해 방영분의 소재가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기에 <이제는…>이 박 전 대통령의 집권기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들추는 것은 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공격에 다름아니라는 것이다.
이같은 '음모론'적 주장은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이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동아, 조선, 한국, 세계일보 등 신문사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7일자 사설 'MBC, 박정희 때리기는 무엇인가'를 통해 다시 MBC의 편파성을 집중 부각했다.
논란의 와중에 박태균 교수가 7일 프레시안에 긴급 기고문을 보내왔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박 교수는 지난 99년부터 <이제는…>의 자문을 맡아오고 있어 누구보다도 이번 논란의 앞뒤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프레시안은 박 교수의 기고 글이 한쪽에 치우침 없이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판단해 전문을 게재한다.
***'꼬투리 잡기' 지겹지도 않나**
한국사회는 탄핵 정국을 거쳐서 총선 사태에 이르기까지 초유의 정치적인 사태를 건너가고 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심지어 필자를 가장 속상하게 하는 것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꼬투리 잡아서 거기에 대해 비난을 하는 행태이다.
토론을 할 때 가장 짜증나는 일이 꼬투리를 잡아서 토론 방식이다.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토론 중에 나온 한마디에만 신경을 쓰면서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토론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누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러한 말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가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슨 말실수를 하는가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전체적인 내용 속에서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꼬투리는 '남을 해코지하거나 헐뜯을 만 한 거리'란 뜻이고 그것을 찾아서 남을 비난하는 데에만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한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보면서 이러한 '꼬투리 잡기'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한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단지 무엇을 주제로 하였는가, 그리고 그 주제가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펴고, 꼬투리를 잡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현대사 다큐의 소중함부터 되새겨야**
필자는 현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1990년대 초부터 현대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제작에 소위 '자문'의 역할로서 관여해 왔다. 자문의 역할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묻는 것에 대해서 답해주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작진들을 만나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다.
같은 방송사 안에서 방송 제작하는 사람이면 그냥 같은 부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위 방송의 꽃이라고 하는 드라마를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비교하면 다큐멘터리 제작진들은 현장을 뛰어다니는, 마치 견습 기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 한 가지 작업이 추가된다. 공부를 해야 한다. 관련 소재와 주제를 잡고 이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그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해당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련 자료들을 찍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자 같은 자문위원은 옆에서 묻는 것에 대답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때때로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릴 때가 많다. 기껏 1시간의 시간을 내서 출연료도 한 푼 못 받으면서(받을 때도 있다) 인터뷰에 응해줬는데, 기껏 10초 정도 나가고, 그것도 앞뒤를 다 잘라서 내보낸다고. 때로는 인터뷰의 전체적인 내용을 왜곡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필자도 적지 않게 방송의 현대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대사 관련 프로그램들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 왜곡되었던, 그리고 묻혀져 있었던 현대사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노력들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현대사는 연구를 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금기의 소재였다. 따라서 현대사에 대한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방송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지난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관심이 있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것은 시대가 빚어낸 상황이었다.
그런데 최근 현대사 관련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편성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제1야당의 대표에 박근혜씨가 선출된 상황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고의적으로 박정희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연속해서 말이다.
***일부 신문,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보나**
박정희의 식민지 시기 행적과 관련되는 만주의 친일파를 내보내더니,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치적'의 하나인 베트남 전쟁 참전 문제를 비판하고, 박정희를 살해한 암살범을 찬양하는 프로그램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는 강남 투기 문제를 방송한다고 하니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박정희 시대에 대한 총체적 비판을 가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을 일반인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잘 아는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 이러한 비판은 몇 가지 점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은 1시간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하여 대체로 기획 기간을 합쳐서 최소한 4개월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사 관련 프로그램은 관련 연구 성과를 읽고 나서 그것이 방송제작에 적합한 소재인가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 시사 프로그램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래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알기로는 방송사의 프로듀서들은 저마다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맡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좋은 평가는 못 받고, 시청률은 낮고.
필자에게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방송 주제에 관한 내용을 처음 자문했던 것이 지난 해 11월 말이었고, 12월 중순쯤에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12월 중순에 어느 정도 주제가 선정되었을 때에는 이미 1차적인 연구가 끝났던 상태였다.
또한 12월 중순의 시점에서 방영시기까지도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다. 아마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4개월 전에 계획적으로 주제를 정해서 고의적으로 방송을 하고자 했다는 비판을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중립적'으로 보이고자 '강제로' 방영의 시기를 늦추지 않은 방송사 내의 실력자를 비판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다.
둘째로 방송의 내용이 고의적으로 한쪽 편의 내용만을 전달하면서 박정희 시대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를 연구하던 아니면 역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던 간에 완벽한 객관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주제를 정한다는 것, 또 그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기 위하여 특정한 자료를 구하여 이용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연구자나 제작진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히 '객관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얼마나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 했느냐의 여부이다. 현대사 연구자로서 베트남 관련 프로그램과 김재규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에도 역시 제작진의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녹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필자는 이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두 프로그램이 박정희 또는 그가 만들어갔던 시대의 비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베트남 전쟁 관련 프로그램은 박정희 시대라고 하는 특정 시대의 문제와 함께 국가권력과 개인의 문제에 대해 접근한 '수작'이었다. 역사에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국가권력에 의해서 어떻게 무시되고, 파괴되어 가는가의 문제는,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실미도>라는 영화를 통해서도 이미 확인된 일이었다.
'김재규' 편은 김재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의 고민과 함께 오히려 김재규의 배후에 혹 미국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의 의혹을 제기하면서 한국현대사의 오랜 고민인 한미관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박정희만을 보고 있으면, 정말 중요한 또 다른 주제는 논의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사라진다.
***'꼬투리 잡기'는 개발시대의 잔재**
지금 팽배되고 있는 꼬투리 문화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 건전한 토론의 문화가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가를 절실히 느끼도록 한다.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던 프로그램에서 특정한 주제를 선택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보기보다는 주제와 소재를 꼬투리로 해서 비난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개발시대의 문화가 다시 한번 재현되고 있다. 개발이라는 나무만을 볼 뿐 환경, 인권이라고 하는 숲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한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현대사 연구자들을 씁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악습이 보인다. 아직도 연좌제에 연연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통해서 부역의 아픔을 지고 살아와야 했던 사람들. 이들에게 적용되었던 연좌제가 이제 제1야당의 당수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니.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또한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다. 국내 주요 일간지 중 두 곳에서 인터넷의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특정인의 토론 내용을 공통적으로 인용하면서 꼬투리를 잡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방송에 전문가인지, 아니면 방송에 관심이 많은 일반 시청자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인터넷은 익명을 보장하니까 심지어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인지도 모른다.
단지 위안이 되는 점은 현대사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거리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이다. 꼬투리를 잡아서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독재정권의 악습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소수 부역자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연좌제가 왜, 그리고 어떻게 유명한 정치인에게도 적용되게 되었는가? 외국인들이 한국의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진전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화들은 왜 다시 나타나고 있는가?
현재 자문위원의 위치는 내용을 자문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제작진이 가져온 아이템을 가지고 그것이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대체로 제작진이 가지고 온 아이템들은 자문위원들에 의해서 반대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문위원들이 반대하더라도 제작진이 그대로 밀고 나갈 수도 있고, 자문위원의 반대에 의해서 아이템이 바뀔 때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방송되는 몇 개의 아이템에 대해서는 제작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했었다. 따라서 이 글이 제작진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 아님을 유념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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