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들어 엄청난 뉴스를 접했다. 우리 국민의 빚과 정부 부채를 합치면 593조원이라고 하니 1인당 부채가 1천2백만원이 넘는다. 이는 우리 국민의 일년 총생산액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는 1년간 우리 국민들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벌어야 겨우 갚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몇 년 전 일본의 총 가계 저축이 연간 GDP를 넘어섰다는 보도를 접하고 경탄한 바 있었다. GDP란 1년 동안의 생산액이니 바로 수입이 된다. 그런데 저축이 1년 수입과 맞먹게 되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한 해 동안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잉여를 모았다는 얘기가 된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생겨난 이래 이 정도의 잉여생산을 쌓아놓았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을 것이고 역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부채가 GDP와 버금가는 수준에 도달했는데 이 또한 전혀 반대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일이 아닌가 싶다. 부채가 1년 수입과 버금가는 상황에서 장차 어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부동산 열기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니 경기가 어렵긴 해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지내고 있다. 물론 개개인으로 보면 수백억대의 자산가도 있고, 수억 원씩 하는 아파트를 여러 채 지닌 갑부들도 많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부채가 1년 총생산과 맞먹고 있으니 사실상 이를 해결할 방도는 아무리 머리를 써봐야 나올 수가 없다.
만일 수입의 20%를 저축해서 빚을 갚아나가면 5년이면 다 갚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전체가 수입의 20%를 저축하면 그 즉시 총생산이 20% 줄어드니 이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20%로 전락한다는 것이니, 이런 엄청난 디플레이션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바로 옆의 나라 일본이 지난 10년간 앓았던 병이 바로 그런 디플레이션이었다.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기가 어려워지자 지출을 줄였고, 그 바람에 혹심한 내수부진으로 고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경우 부채가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면, 수출이 잘 되어 연간 무역수지 흑자가 현재 총생산의 20%에 달한다면 물론 쉽지는 않지만 이론적으로 지금의 부채를 갚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간 1300억 달러 정도의 무역 흑자가 수년간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 또한 사실상 현실감이 없다.
한때 우리는 가계저축률이 세계적으로 높았던 시절도 있었건만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의 삶은 빚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는 것이다.
더러 집을 여러 채 지녔으니 국민 전체야 빚더미에 앉았더라도 본인은 끄떡없다고 자신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토록 취약한 경제 기반에서 약간의 충격만으로도 부동산 시세는 그야말로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택들은 은행 융자를 끼고 있어 거품이 빠져나갈 경우 가격 하락의 연쇄반응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지금 우리는 지난 1997년 IMF위기 당시의 충격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전되었을 뿐 아니라 그간의 이자까지 꼬박 붙어서 이제는 만성 질환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반드시 이런 반문을 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증시가 저토록 900 포인트까지 상승하는 것은 어떻게 된 연유인가 하고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보기로 하자.
<도표>
이 그림은 우리 증시의 지난 20년간에 걸친 변동을 말해주는 지수(log) 차트이다.
그냥 보면 주가지수는 900 포인트 선까지 올라왔으니 옛날과 비교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차트에 그어진 우상향의 선들을 보라.
이 선들은 지난 세월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하고 있는 선이다. 지수 차트이기에 누적률이 반영되어 있다. 이 인플레이션 선을 보면, 지금의 종합지수 900은 1990년의 450 포인트와 같다. 즉, 이 인플레이션 선을 수평선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증시는 그림에 그어진 세 가닥 선에 의해 만들어진 두 구역의 하단부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증시가 하단으로 처음 들어간 것은 1997년 외환 위기가 발생했을 때였다. 그 이후, 1999년에 급상승한 것은 우리가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믿었던 때였다. 하지만 코스닥 등의 묻지마 투자열기가 가시자 다시 증시는 하단부로 주저앉고 말았다.
9.11 테러 이후 반짝 상승세에 묻어 재차 상승했지만 작년 초까지 북핵 문제 등으로 다시 하단부의 한계선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다시 상승해서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증시가 지난 2000년부터 계속해서 채널의 중간과 하단 사이를 왕래하고 있을 뿐 상단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증시 상승이 외국인 투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의 900 선은 1990 년의 450 선이고, 당시의 900 포인트는 지금에 와서 1800 포인트에 해당된다.
인플레이션 선을 반영한 증시의 지수는 단적으로 말해서 그 나라의 질적 지표이다. 이로서 볼 때 우리는 1986년에 크게 도약한 이후, 제자리를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서 1997년 하반기에 지수가 급락한 것이 외환위기였는데, 당시의 분위기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런 하락은 이미 2000년과 2002년에 두 차례나 더 겪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다만 하락 속도가 1997년 당시보다는 완만했기에 공포감이 증폭되지 않았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난 외환 위기로 초래된 총체적 국가부실을 떨어낸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이전하였을 뿐이지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1년 총생산과 버금가는 가계 부채이다.
그러면 앞의 그림을 음양오행으로 해석해보자.
지난 1998년 무인(戊寅)의 의미는 갑목(甲木)의 나리인 우리에게 있어 아직 기초를 다져야 하는데, 성급하게 내실은 없고 소비만 무성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금년 갑신(甲申)년은 무인과 충(衝)이 되는 운이다.
따라서 금년의 모든 일은 지난 1998년과 깊은 의미연관을 갖는다. 그리고 갑신(甲申)의 의미는 갑목(甲木) 밑에 신금(申金)이 와서 ‘야, 대한민국 이제 정신 좀 차리지. 이것은 경고에 불과해’ 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IMF위기 이후의 경제회복은 과다한 신용공급으로 소비를 진작시킨 것이니, 이는 월급을 미리 가불해서 써버린 결과와 동일하다. 그런데 한 개인의 살림이라면 절약을 통해 빚을 갚아나가면 되겠지만, 나라 경제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면, 현재 증시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다시 하단부로 빠지느냐 아니면 상단의 영역으로 진입하느냐 하는 기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은 우리가 정말로 잘 대응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만일 이번에 증시가 하락해서 하단으로 들어가면 하단의 하한을 깨고 아주 저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림: 4월 8일자로 몇 년간 머물던 사무실을 떠나 잠실 신천역 주변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전화번호가 534-7250에서 419-7250으로 변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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