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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사나이 朴泰俊씨와 越の寒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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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사나이 朴泰俊씨와 越の寒梅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 - 빠뜨렸던 이야기들 <58>

***9. 철의 사나이 朴泰俊씨와 고시노 간바이**

박태준(朴泰俊)씨와의 인연은 JP와의 것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러니까 포항제철 준비를 위한 사무실을 명동성당 앞쪽에 차렸을 때이니까 60년대 중반이다. 교수 출신의 우병규(禹炳奎) 박사가 언론인으로 김동익(金東益)씨와 나를 그에게 추천하여 넷이서 여러번 자리를 같이 하였다. 아현동의 저택에 가기도 하였다.

포항제철의 10주년행사에 초청되어 마침 조선일보때 동료인 송기오(宋基五)형이 사장비서실장으로 있기도 하여 심야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만취하여 송형의 부축으로 영빈관에 가서 잔 일이 있다.

정치를 한 후, 역시 정치에 참여한 이 '철의 사나이' '강철황제'와 자주 만나게 되고 술자리도 가끔 갖게 되었다. 중국요리집도 가고 <반줄>의 4층에 있던 룸살롱에도 갔다. 그는 회고담이나 시국담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 차라리 과묵하다는 편이 맞을 것 같은데, 가끔은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한다.

6.25때 강원도 동해안쪽에 주둔한 사단에서 사단장이 신임 헌병참모에게 계속 트집을 잡고 기합만 주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헌병참모, 주의깊게 사단장의 말을 들으니 "잡것, 싱싱한 것도....."하는 대목이 잡힌다. 알았다고 그는 동해바다로 나가 수류탄으로 고기를 잡아 회를 쳤다. 큰 접시에 회, 큰 그릇에 초고추장을 갖고 사단장실에 들어간 헌병참모는 초고추장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왔다. "잡것, 싱싱한 것도 모르고......" 아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당시에 헌병간부는 채홍사(採紅使)를 겸하기도 했다는것. 그 실화를 실명을 들어가면서 이야기하니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강철황제'는 술과 음식에 사치를 하는 편이다. 술의 경우, 와인은 종류가 많고 같은 와인이라도 나온 연도의 기후조건에 따라 맛이 다르므로 고르기가 어려워 나같은 사람은 같이 간 사람의 선택에 맡기거나 "나도...."하는 me-tooism(me_too에 ism을 붙인 농담)이다. 전에 파리가 좋아서 2주쯤 체류할 때는 '바보의 한가지 외우기'(일본의 관용구)처럼 <쌩테 밀리온>이란 중상급 정도의 와인만 계속 마셨다. 그 술은 너무 진해 술자리 후반에는 물을 타먹어도 된다기에 미네랄을 적당히 넣어 마시기도 하였다. 여하간 '강철황제'는 그래서 수첩에 몇가지 와인 종류를 적어갖고 다닌다. 그가 선호하는 특수한 중국요리도 마찬가지.

한 해는 아주 드물게 무슨 바람이 불어 그의 아현동집에 세배를 갔었다. 많은 의원들이 북적거렸다. 거기서 <고시노 간바이> 운운 하는 말이 나왔다. 그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한 의원 "강철계가 아니군"하고 무안을 준다. 자주 드나드는 의원이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시노 간바이>는 <越の寒梅>라는 것으로 동경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산맥을 넘는다는 것이니까 니이가타지방을 가리키고 거기서 나오는 간바이라는 사께란 뜻이다.

양조에는 물이 중요하다. 거기의 물이 썩 좋아 그 물로 빚는 사께가 최고명품이라는데 샘물의 양이 적어 생산량이 아주 적다는것. 촌놈이 <고시노 간바이> 맛도 보았다. 발렌타인30년짜리는 그때는 아주 귀했다. 아니 나는 처음 맛보았다. 서울 출신 의원들 모임에 '강철황제'가 그 술을 두 병인가 보내왔는데 주당인 오유방(吳有邦) 의원 등의 성화로 폭탄주로 만들어 순식간에 다마셔 버렸다는 만용담을 전에 소개한 바 있다. 30년 숙성한 술을 몇 달밖에 안된 맥주에 타서 마시다니 명주에 대한 일대 모독사건인데 박태준씨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시는 그 술을 안 주겠다며 어이없어 하였다.

노태우정권 말기에 민정·민주·공화 3당이 통합한 민자당에서는 대통령후보를 누구로 하느냐를 놓고 특히 민정계 안에서 뒤숭숭하였다. 박태준·이종찬씨 등이 거론되었는데 정치부기자 경력의 내 눈에는 상황이 너무 분명히 보여 민정계에서는 맨처음으로 YS불가피론을 폈었다. 너무나 뻔히 보이는데 딴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가까웠던 이종찬씨와도 서먹해졌는데, 하루는 박태준씨가 점심을 함께 하잔다. 롯데호텔 지하에 있는 일식집 <벤께이>에 갔더니 박씨가 심복인 최재욱(崔在旭) 의원과 있다. <벤께이>는 일식집 가운데 최고급에 속하며 값도 비싸다는 소문이다. 이리저리 말이 돌려졌지만 결국 대통령후보 이야기로 귀착되었는데, 나는 오랜 인연인 사람에게 면전에서 말하기가 거북하였지만 정치인으로서 소신대로 안 나갈 수가 없어 분명히 말해버렸다.

"최고위원께서는 일본같은 내각책임제라면 정말 훌륭한 총리가 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제에서는, 글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씨는 오랜 정리를 생각하여 몹시 서운하고 괘씸했을 것이다. 나도 오랜 인정상 참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정치에 있어서 정에 끌리다 보면 과오를 범하기가 쉬운 것이다. 박씨의 경우나 JP의 경우나 나에게는 비슷한 일이었다. 정의로는 끌리지마는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편, 둘은 김윤환씨를 포함하여 모두 지난날의 일본정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는 인상도 있다. 연령도 그렇고, 셋 다 공교롭게 모두 일본통이지 않은가.

'강철황제'는 드디어 김대중정권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다. 내각제의 총리가 아니고 대통령제의 총리지만 어쨌든 총리가 아닌가. 노동부장관을 물러나고 정계를 은퇴한 후 어느 파티에서 그를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쳤더니 "어째, 요새는 조용해"라고 가시 있는 인사다. "납짝 엎드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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