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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영화 무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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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영화 무용론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15> ‘Die Another Day’

모든 007 영화를 하나의 요점으로 압축한다면, 그것은 섹스이다. 제임스 본드가 악당을 물리치고 인류를 멸망에서 건져내는 것은 그가 늘씬한 여성들을 거느리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하는 귀찮은 장애물 코스쯤에 불과하다. 그 정도 능력을 발휘하기에 본드는 그런 여자들을 데리고 잘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는 물론 육체파 여자들이 요구하는 물질적 조건도 다 갖추었다(그의 품위유지비는 MI-6에서 모두 경비로 처리해 준다). 디자이너 옷을 입고 고급술을 즐기며, 단독으로 지구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온갖 신기한 무기와 장비를 사용하는 그는 슈퍼맨도 부럽지 않을 초인적 호색가이다. 007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잘 생긴 영국신사의 화려한 섹시 라이프스타일의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007영화는 남성 판타지의 기본 욕구에 부채질을 하는 영화이다. 더 정확히 말해, 사춘기 소년들이 가지는 몽상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올려놓은 것이다. 모든 남성이 제임스 본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는 것은 좀 과하겠으나, 10대 남성이라면 다 제임스 본드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제임스 본드의 삶은 굉장한 어드벤처의 연속이다. 그는 엄청난 장난감(무기ㆍ장비)을 갖고 해괴하고 흉측한 악당들을 유유히 무찌르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스파이다. 이것 다 좋지만, 007 영화에 널려있는 섹스의 후렴들을 놓친다면 영화를 헛보는 것이다. 시작에 주제곡이 울려 퍼지면서부터 사춘기적 호기심을 충동질하는 출렁거리는 여체들은 007 영화의 '나아갈 길'의 표방이다.

제임스 본드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섹스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기용되는 것은 double entendre, 또는 이중의미를 가진 대사이다. 이는 섹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진 않는 듯 하면서 섹스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기 위한 장치이며, 직설법을 피하는 영국신사인 본드의 캐릭터 설정이기도 하다. 그는 여자를 유혹해도 우회적으로 유혹하며, 섹스의 문턱에 가서도 모든 것을 초연한 듯 여유를 부린다.

최소한 이전의 007 영화에서는 그랬다. 제임스 본드의 원조 숀 코너리는 이런 여유가 몸에 배어 있었다. 1964년 '골드핑거(Goldfinger)'의 유명한 대사 중에 본드걸 푸시 갈로어(Pussy Galore)가 본드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My name is Pussy Galore.” 여자의 성기를 뜻하는 이름에다 ‘풍부하다(galore)’는 뜻의 성(姓)을 가진 이 여자의 소개에 본드는 “I must be dreaming.”(아마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군요)이라고 간략하게 답하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재치있게 응수하는 것은 일찌기 본드 캐릭터의 멋과 매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식의 대사는 불어지만 영어로도 심심찮게 쓰이는 savoir faire, 즉 능숙한 사교적 기지(奇智)를 나타내는 본드식 임기응변의 표본이다. (아무리 섹스가 지상과제라 할지라도 사교적 기지가 없으면 목표달성에 적지 않은 지장이 있을 터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몇 년 전부터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되면서부터 007 영화에 나오는 이중의미 대사를 보면 savoir faire라고 하기엔 와 닿는 맛이 다소 거칠고,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본드적 재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2002년의 ‘Die Another Day’에서, 본드걸 징스(Jinxㆍ할리 베리 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와 본드가 주고받는 대사가 드러내는 것은 3류 시나리오의 저속함이다.

본드: I'm just here for the birds. (망원경을 들어 보이며) Ornithologist.

징스: Ah. Ornithologist. [본드가 망원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그녀의 시선은 망원경을 따라가는 듯하 다가 본드의 아랫도리 쪽으로 내려간다.] Now there's a mouthful.

여기에서 의도하는 이중의미는 ‘mouthful’에 있다. Ornithologist(조류학자)라는 단어가 발음하기 어렵다는 말(mouthful)이 그녀의 시선의 움직임과 함께 ‘한 입 가득’ 이란 뜻으로 변하여 해석의 여지도 없이 직격으로 오럴섹스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중의미치고는 유치할 정도로 원색적이다.

또 런던의 펜싱장에서의 베리티(Verityㆍ마돈나의 카메오)와의 짧은 대화도 그 유치함이 만만치 않다.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베리티와 검으로 2합을 부딪친 뒤]
베리티: I see you handle your weapon well. (무기를 잘 다루시는걸 알겠군요.)

본드: [검 끝을 올려 세우며] I have been known to keep my tip up. (끝을 항상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베리티: [등을 돌리며 - 입고 있는 코르셋의 뒤쪽 끈이 풀려있다] Do you mind? I think I've come undone. (좀 도와주시겠어요? 옷끈이 풀린 것 같네요 여기에서 “Do you mind?”는 “Do you mind helping me?”의 뒷부분을 생략한 것이다.)

“끝을 세우고 있다”는, 설명이 필요 없는 본드의 음탕한 말에 베리티가 응수하는 말의 ‘undone’이라는 말은 옷의 끈이 풀렸다는 말 속에 감정을 못 이겨 사람이 정서적으로 무너졌다, 또는 어쩔 줄 몰라 한다는 또 다른 뜻이 들어있다. (예: “After he broke up with her, she became undone.” 그와 헤어진 후, 그녀의 마음은 무너졌다.) 영화의 줄거리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대사이며, 단지 주제가를 부른 마돈나에게 카메오 출연의 기회를 주는 것과 이중의미 대사를 쓸데없이 끼워 넣는 것 외에는 하등의 의미가 없는 장면이다. 만든 이들은 이 장면이 본드의 멋과 매력에 보탬이 된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저속한 이중의미 대사 중 압권은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사당(사실은 불상이 모셔져 있는 국적 불명의 오두막집이다) 안에서의 마지막 베드 신에서 나온다. 처음에 공중 카메라가 사당 바깥을 맴돌면서 본드와 징스의 대사가 들린다.

징스: Wait, don't pull it out, I'm not finished with it yet. (잠깐, 아직 빼지 말아줘, 아직 다 안 끝났어.)

본드: See? It's a perfect fit. (봤지? 딱 맞잖아.)

징스: Uh-huh. Leave it in. (안에 넣은 채로 있어.)

본드: It's got to come out sooner or later. (언젠가는 나와야 하는데.)

징스: No, leave it in, please. A few more minutes. (아냐, 안에 넣은 채로 있어, 제발 몇 분만 더.)

실제로는 본드와 징스가 마루 위에서 뒹굴며, 주변에 널려있는 다이아몬드 중 한 개를 본드가 여자의 배꼽 안에 넣은 상태로 주고 받는 대사이다. 이런 말장난은 중·고등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낄낄대며 할 법한 수준의 대화이며, 결국 오로지 일차원적 섹스가 주요 관심사인 이 영화의 지적 스케일과 사고의 수준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애써 언급을 피한 것 같기도 한데, 한국 개봉 당시 그토록 논란을 일으켰던 영화의 한반도 모욕에 관한 얘기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지시를 받는 한국군, 국적 불명의 자오(릭 윤)역, 자막 없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 대사 등 불쾌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저급한 영화가 한국과 북한을 제대로 묘사했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만일 한반도를 왜곡했다 하여 우리가 유독 이 영화의 너저분한 세계관을 문제 삼는다면, 지난 40년 동안 007 시리즈가 타인종과 타 지역에 대해 일관적으로 범해온 결례는 우리의 얘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모른 척했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갈수록 아둔패기 장사꾼들의 작품이라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는 007 시리즈 자체를 관람 대상에서 영원히 삭제해 버리는 것이 어떨까 한다.

숀 코너리, 로저 무어, 그리고 어쩌면 티모시 달튼 시대까지만 해도 제임스 본드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서 알버트 브로콜리가 추출해낸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는 모방하기 힘든 멋과 분위기가 있었다. 그때의 본드는 상류문화와 물질, 그리고 섹스의 화려함을 만끽하면서도, 그것에서 초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90년대에 똥배가 나온 브로스넌을 내세워 강행군이 계속되는 현재의 007 세대는 공장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우들의 경직된 분위기와 연기에서 그 포뮬러(formula)에 찌든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조크는 있으나 그 속에 유머가 없고, 이중의미는 있으나 그 속에 재치가 없다. 처음에는 제임스 본드라는 매력적 캐릭터가 거대한 영화 프랜차이즈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그 거대한 영화 프랜차이즈가 본드라는 상품을 찍어내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화가 미국영화에 비해 볼거리가 없는 시대도 지났고, 외국산 영화의 스펙터클이 특별하다는 강박관념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한국도 이제는 할리우드에 못지않은 스펙터클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요즈음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007영화가 제공하는 눈요기 거리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007 영화는 감정적 보이콧의 대상이 아니라, 볼 가치가 없는 만큼 무시당하는 영화가 되어야 옳다. 무시당했다는 피해의식도, 릭 윤이 지껄이는 한국어에 분개하게 되는 이름 모를 감정도, 불현듯 스스로 성숙했음을 발견했을 때 모두 공중에 흩어지게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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