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과정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잘못을 했는가 ?" 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철저한 사실 검토와 신중한 논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그 질문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재판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해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안은 국회가 대통령을 소추한 내용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훨씬 범위가 좁고 초점이 뚜렷한 질문이다.
국회의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1) 노 대통령이 "특정 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했고, (2) 노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 그리고 참모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해 국정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법적 정당성을 상실"했고, (3) 노 대통령은 "국민 경제와 국정을 파탄시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국민에게 IMF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고 있다" 라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 발의와 소추 결정 과정에서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무슨 근거로 국회가 제시한 탄핵의 사유를 검증하고 결정했는가 ?
대한민국 헌법은 "공직자의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국회가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렇다면 국회는 우선 노 대통령의 탄핵을 발의하기 전에 노 대통령의 구체적인 어떤 행위가 구체적인 헌법이나 법률의 어떤 특정한 조항을 어떻게 위반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믿을 만한 사실 검토가 있었어야 한다. 그리고 수사에서 나온 사실을 가지고 법률적 검토가 있었어야 한다.
국회의 탄핵 소추서는 탄핵 사유 1항에 대한 사실적 근거로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개입 경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특정 정당을 공개지원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그런 행위가 선거법을 위반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얼마나 심도있게 논의되었나?
탄핵 사유 2항에 대한 사실적 근거는 "노 대통령측의 불법정치자금 수수규모가 113억에 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의 발표를 인용한 것이지만 국회 차원에서 사실 검토가 있었는지 ? 사실이라 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직무집행"상 일어난 일이었는지 ? 탄핵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일어난 직무집행상 일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선거중에 불법정치자금을 모았다면 그것은 형사적 책임을 물을 일이지, 대통령으로 직무집행중 일어난 탄핵의 대상 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노 대통령측," 즉 집단의 행위가 아니라 "노 대통령," 즉 개인의 행위가 탄핵 대상이다.
노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현재 특별검사가 수사를 하고 있다. 측근과 참모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이유로 탄핵을 하려 한다면, 최소한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를 보고 그 내용 중에서 탄핵 사유를 찾았어야 했다.
탄핵 사유 3항은 아무런 사실적 근거가 없다. 구체적으로 노 대통령의 어떤 행위가 국민에게 "극심한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탄핵사유서는 헌법재판소에 재판을 청구하는 기소장이다. 가부간에 증명이 될 수 없는 주장만 담은 탄핵 사유를 가지고는 객관적인 법률 적용을 통해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낼 수 없다.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은 탄핵 사유가 책으로 한 권이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있다. 책으로 한 권 분량의 노 대통령 위법 사실이 있다면 당연히 탄핵소추서에 탄핵 사유를 정당화하는 사안들을 적시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도 곧바로 탄핵 소추로 갈 수는 없다. 헌법의 명문 규정에는 없지만 그 위반의 내용과 정도가 중대한 경우에만 탄핵이 가능하다고 읽어야 한다. 위반 내용이 있었는지, 그 위반이 얼마나 중대한 것이지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헌법이 국회에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준 것은 그러한 판단을 신중하게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탄핵제도에서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하기 전에 신중한 검토와 판단을 해야 한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되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다. 미국의 경우 하원에서 탄핵 소추를 받더라도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은 직무 수행을 할 수 있다.
국회가 탄핵 사유로 제시한 것들이 노 대통령의 탄핵으로 갈만큼 중대한 것이었나 ?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도부는 탄핵으로 가기 전에 노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탄핵소추가 끝난 다음에도 노 대통령이 사과만 했다면 탄핵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노 대통령의 잘못은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정도였다는 결론이다. 그 정도 수준의 잘못으로 탄핵소추를 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국회가 신중한 판단을 못했다는 결론이다.
정말로 노 대통령 잘못의 정도가 사과로 끝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사과를 하지 않아서 국회가 응징을 해야 했다면, 탄핵보다는 파장이 적은 대안을 논의했어야 한다.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고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대통령 탄핵 논의 과정에서 경고(CENSURE)가 심각하게 고려되었다.
대통령 탄핵에 관한 한 세번씩이나 선례가 있는 미국의 대통령 탄핵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회에서 노 대통령을 탄핵한 절차가 얼마나 졸속했는지 알 수 있다. 외국의 언론이 대한민국을 웃기는 나라(JOKE REPUBLIC)라고 해도 이 점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국회의 탄핵소추서를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 모른다. 작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국회에서 상정해서 통과되는 과정에서도 아무도 소추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서면으로 대체했다는 탄핵소추 사유에 대해서는 그 후에도 별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탄핵소추안이 작성할 때 어떤 사실을 근거로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검증을 했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탄핵재판 과정에서라도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재판은 무언가 걸릴까 하고 낚시대를 던져넣고 휘저어 보는 장난(fishing expedition)이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직무까지 정지시켜 놓고, 대통령직을 걸고 하는 과정 "아니면 말고 식"의 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탄핵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후대에 대통령 탄핵 문제가 나왔을 때 탄핵의 선례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1백년 후, 2백년 후 후손들이 이번 탄핵 사태를 연구하면서 찾을 수 있는 자료가 얼마나 있나 ? 신문, 방송의 무성한 말 중에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받을 잘못을 했는가?" 하는 핵심에 대한 당대의 논의와 자료를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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