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일즈맨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글렌개리 글렌 로스(Glengarry Glen Rossㆍ1992)'는 대사 중심의 영화다. 이렇다 할 사운드 트랙도 없고, 특수효과도 없으며, 액션이라고는 침이 약간 튀는 욕설과 삿대질 정도다. 대사를 빼놓으면 사실 볼거리가 없는 영화다. 영화의 스펙터클을 찾는다면 이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끊이지 않는 대사의 넘치는 박진력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대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사에는 속어와 욕지거리의 카타르시스가 있고, 심상찮은 감정이 맥동하는 화끈거림이 있다. 1984년 희곡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마메트(David Mamet)의 희곡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이 영화는 미국식 비어(vulgarism)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ㆍ1949)’이 영혼을 시들게 하는 맹목적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장엄한 비판이라면, ‘글렌개리 글렌 로스’는 애초부터 영혼 따위는 아예 없는, 닳고 닳은 현대판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글렌개리’는 물질만을 숭배하는 왜곡된 아메리칸 드림을 끌어안고 사는 세일즈맨들이 뇌까리는 말을 통해, 하루살이 인생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그들의 벼랑 끝 심리를 엿보게 해 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언행은 사기·허풍·아전인수·무용담·험담·배신, 그리고 도둑질의 몹쓸 반죽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동료를 위하는 마음 같은 인간미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일즈맨들은 모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카고 북부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글렌개리 하일랜즈(Glengarry Highlands)’, ‘리오 랜초(Rio Rancho)’ 같은 이름이 붙은 플로리다와 아리조나의 찌꺼기 주택용 대지에 ‘투자’할 만한 얼간이 고객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경기는 나쁘고 상황은 절박하다. 부동산이란 경기가 좋을 때도 팔기 힘든 것인데, 지금은 경기가 심각하게 안 좋을 때이다. (마메트의 원작은 1980~82년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했고, 영화는 1990~91년의 경기침체를 배경으로 만들었다. 빌 클린턴이 아버지 부시를 몰아내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때의 경기 침체였다.) 게다가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방침을 세워, 세일즈맨들끼리 경쟁을 붙여 한 달 동안의 실적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파면시키겠다고 선언한다. 밖에는 장마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그들은 비좁은 우리에 가둬놓은 짐승들처럼 으르렁대기도 하고 서로와 고객을 교활하게 속이기도 하면서 각자 자기 몫이라고 굳게 믿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데 여념이 없다.
감독 제임스 폴리가 이 영화 속에 가둬놓은 앙상블 캐스트-알 파치노·잭 레몬·에드 해리스·케빈 스페이시·알렉 볼드윈·앨런 아킨·조나단 프라이스-는 가히 환상적이다. 마치 근대 미국 영화사의 인물들을 한눈에 보는 느낌이다. 영화의 줄거리나 의미를 떠나, 그 엔터테인먼트 가치를 보장하는 것은 이들 만만찮은 배우들이 펼쳐 보이는 미국식 비ㆍ속어의 정교한 춤이다. 무대경력이 풍부한 정통 배우들답게 이들은 제 물 만난 듯 마메트의 예사롭지 않은 고난도 대사를 박자 하나 놓치지 않고 소화해 낸다. 욕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직업을 말하든 인생을 말하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폭력적 말 속에는 살아 움직이는 언어의 즉시성이 있다.
마메트는 속어와 욕지거리의 연금술사이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들이 그런 성향을 충분히 보여주긴 했지만, ‘글렌개리 글렌 로스’에서 그의 대사는 유난히 ‘fuck’이나 ‘shit’과 같은 단어로 구두점을 대신한다. 그의 하드보일드 대사에서 욕이 빠지면 문법의 오류가 발생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면, 그 저속한 표현들은 저속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 살벌한 욕과 비어에는 유기적 존재이유가 있고, 마메트식 비속어의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단편적인 소개임을 전제로, 마메트식 비속어 기용의 예로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블레이크(Blake, 알렉 볼드윈 분)의 대사를 정리해 보자.
냉혹한 실적제일주의의 잘 생기고 잔인한 얼굴을 상징하는 블레이크는 ‘동기부여’차 사무실에 나타난다. 모임에 억지로 나온 세일즈맨들을 섬뜩한 독설로 족치며 이들의 기를 짓밟아 버리는 그는 근사한 양복을 걸친 상어이다. 다운타운(‘downtown’, 본사를 의미)에서 나온 그는 세일즈맨들을 소집해 놓고 자기소개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 장면은 원작에는 없지만 원작을 시나리오화 하면서 마메트가 새로 덧붙인 것이다. 이 장면은 시작부터 영화의 긴장의 수위를 한 단계 높여주는 효과를 갖는다.)
블레이크는 우선 이달의 세일즈 실적대회의 1, 2, 3등 시상내용을 발표한다 : “1등은 캐딜락 자동차, 2등은 스테이크 나이프 세트, 3등은 해고(You're fired)다.” 회사 측에 대한 불만을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내온 데이브 모스(에드 해리스 분)가 듣다 못해 “당신 이름이 뭐요?”라고 묻자, 블레이크는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퍼붓는다.
“Fuck you, that's my name! You know why, mister? 'Cause you drove a Hyundai to get here tonight. I drove an $80,000 BMW. That's my name!”
([번역 생략], 그게 내 이름일세! 왠지 아쇼 선생? 왜냐하면 당신은 오늘 여기 올 때 현대 차를 몰고 왔기 때문이야. 난 8만 불짜리 BMW를 몰고 오고. 그게 내 이름이라고!)
싸늘하고도 이성적으로 블레이크가 내뱉는 ‘fuck you’는 적대감 같은 원초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비인간적이고 사무적인 ‘평가’처럼 느껴진다. 감정의 극한을 표현하는 ‘fuck you’가 튀어나온다는 것은 보통 모든 논리와 이성이 헝클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블레이크의 문장을 시작하는 ‘fuck you’는 개인의 감정을 초월한, 물질을 근거로 하여 단칼에 계급이 정해지는 살벌하면서도 정연한 논리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더욱이 볼드윈의 대사 말하기는 마메트의 대사 속에 장치되어 있는 특유의 스타카토 리듬을 자못 고르게 표현해내고 있기에 그 욕의 사무적 효과를 더해준다.
그리고 나서 블레이크는 이 회사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의 ‘ABC’를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A: Always
B: Be
C: Closing.
“Always be closing.” 항상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라. 세일즈맨에게 있어서 계약의 체결(closing)이란 절대적 가치이다. “Because only one thing counts in this life. Get them to sign on the line which is dotted.” (왜냐하면 인생에 가치 있는 것은 딱 한가지이기 때문. 그들이 점선에 서명하도록 하는 것이야.) 영어로 ‘dotted line’이란 흔히 계약서에 점선이 그어져 있는 서명란을 말한다. 마메트는 이것을 ‘line which is dotted’로 변형시켜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표현에 리듬의 변화를 줬다.
블레이크는 이때 또 불만을 표시하는 모스에게 다시 한번 다가가서 확인사살을 한다.
“You see this watch? (차고 있던 금시계를 모스 앞에 벗어 놓으며) That watch cost more than your car. I made $970,000 last year. How much you make? (모스는 잠잠함) You see pal? That's who I am, and you're nothing." (저 시계는 당신의 차보다 더 비싸게 줬네. 난 작년에 97만 불을 벌었어. 당신은 얼마 벌었지? 알겠나 친구? 난 그런 사람이고, 당신은 허당이야.)
물질 위주의 상하관계는 이렇듯 간단히 확립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족치기 세션’을 마무리하면서, 고급 서류가방에서 놋빛 광택이 나는, 줄에 매달린 두 개의 아기 주먹만한 구슬을 꺼낸다.
“You know what it takes to sell real estate? (구슬들을 사타구니 앞에 늘어뜨리며) It takes brass balls to sell real estate." (부동산을 팔려면 어때야 하는지 아나? 부동산을 팔려면 엄청나게 뻔뻔스러워야 한다네.) ‘Balls’란 ‘불알’이란 뜻으로 쓰이는데, 흔히 배짱 또는 대범함을 나타내는 속어이다. (예: He's got balls. = 그는 대범하다, 배짱이 있다.) 여기에다 ‘brass’를 형용사로 곁들이면 ‘놋불알’이 되는데, 그 이미지가 암시하듯이, 어떤 경우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불멸의 뻔뻔스러움 내지는 배짱을 말한다.
‘글렌개리’에서 블레이크라는 캐릭터가 초반에 설정해 놓은 너 죽고 나 살기의 테마는 전개부분 내내 세일즈맨들의 언행을 통해 지속되고, 마지막 장면의 케이오펀치도 이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일말이나마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딸 걱정을 하는 셸 레빈(잭 레몬 분)이다. 대단원에서 그가 사무실을 털은 범인으로 밝혀진 후, 이를 형사에게 일러바치러 가는 사무실장 존 윌리엄스(케빈 스페이시)에게 그는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돌아서는 윌리엄스의 뒤통수에 대고 그가 애절하게 “My daughter”라고 말하자, 윌리엄스는 여기에 한마디로 응수한다: “Fuck you!”
이 말에는 흔해빠진 욕설 이상의 울림이 있다. 영화 초반에 블레이크가 내뱉은 ‘fuck you’와 마찬가지로, 이 한마디의 욕설에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비인간적 사회의 무자비함, 그리고 모진 운명의 무게마저 실려 있다. 마메트의 작품에 뿌려져 있는 무지막지한 듯한 비속어는 문학적 질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지금 소개한 대목들은 음미할 가치가 있는 수많은 대목 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알 파치노의 독백 아닌 독백, 잭 레몬의 광기 어린 무용담, “점심 먹으러 나가지 못하겠어?”를 수차례 반복하는 케빈 스페이시의 대사 등, 이 영화는 거칠면서도 주옥같은 대사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공간이나 묘사술의 한계가 있으므로, 그 나머지를 음미하는 것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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