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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사의 “약간의 잡스러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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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사의 “약간의 잡스러움” 예찬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 - 빠뜨렸던 이야기들 <53>

***4. 한운사의 "약간의 잡스러움" 예찬**

얼마 전에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낸 유명한 언론인 홍승면(洪承勉) 씨의 20주기 추모행사를 마치고 그의 부인인 음악가의 초청으로 10여명의 언론인들이 프라자 호텔 중국부에서 점심을 하였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운사(韓雲史) 씨는 홍승면 씨의 친구로 80세를 넘긴 나이라 그 자리에서는 제일 연장이었다. 한운사 씨의 본명은 간남(看南)이고 운사는 아호 격인데 본인이 한운사라고만 하기 때문에 본명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연장이기도 하지만 역시 재기발랄한 작가이기에 화제는 운사가 흥미진진하고 또 재치있게 끌고 갔다. 중국음식에 배갈이 없을 수 없다며 점심인데도 독한 배갈을 혼자 마시면서 말이다. 하기는 그는 80이 지난 나이에 가끔 까페를 드나들고 나는 그와 마주쳐 놀라워했지만.

그러던 끝에 "승면이가 잡스러운 데가 조금 있었더라면……."하고 그 점이 아쉽다고 했다. 서울 음대 명예교수인 부인을 옆에 두고서의 말이니 그 이야기가 더욱 진실되게 느껴졌다. 모임이 끝난 후 많은 언론인들은 그 "잡스러운 데가 좀……"이 그 날의 명언이라 했다.

한운사 씨는 전에 한국일보에 <대야망>이라는 연재소설을 쓴 일이 있는데 외교관, 국회의원을 했고 잡스럽기로 당대에 소문이 났던 엄영달(嚴永達) 씨를 모델로 삼았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외교관 생활을 할 때, 카지노에 미쳐 공금까지 끌어 쓰다가 마지막 돈을 건 막판에는 함께 카지노에 있던 대사 부인에게 재수가 붙으려면 은밀한 곳을 만져야 한다고 사정도 했다는 그런 도박사이다. 또한 카사노바로도 소문이 났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잡스러운 데 대한 유혹, 딜레탕트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 만하다.

"약간의 잡스러움" 그런 게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된다. 운사에게 해설을 부탁할 계제도 아니고 모두들 그럴 나이도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이병주(李炳注) 씨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직답은 피하고 아주 돌리고 돌려서 애매한 이야기만 한다. 카사노바임을 다 알면서 친구간의 예의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주색잡기(酒色雜技)라고 말해 왔다. "약간의 잡스러움"의 풀이도 거기서 시작해야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술과 이성과 도박, 놀이인데 자칫 잘못 말하다가는 항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일본에서 전에 <부도덕강좌(不道德講座)>라는 책이 나왔었다. 매일 매일 똑같이 올바르지만 틀에 박힌 일만 반복하는 데 싫증이 나고 저항을 느껴 일탈(逸脫)을 꿈꾸고 감행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부도덕이란 차원을 스쳐가게 될 것인데 그런 부도덕을 부도덕이라고 윽박지를 꽁생원이 될 필요는 없다. 동양화의 여백 같은 것을 떠올리게도 되고, 농담의 세계도 생각하게 된다.

미국사람들이 <센스 오브 휴머(sense of humor)>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아주 무리하게 확장하면 거기에도 닿는 것이 아닐지. 섣부르게 개똥철학적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공산체제가 사적 영역을 허용치 않고 공적 영역만 강조하다가 실패했다면, 인간의 사적 영역에서도 이성, 제도, 관행에 얽매이지 않은 아주 내밀한 사적인 것이 있을 것인데 그 아주 사적인 것을 어느 정도, 숨구멍만 하게라도 해방시켜야 할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약간의 잡스러움"의 영역이라면……. 하회탈춤의 매력이나 서양의 카니발 이야기까지도 나갈 수 있겠다.

운사와 만난 지 얼마 후 종로구청 앞의 이름이 꽤나 알려진 <감촌 순두부>에서 <창비>의 백낙청(白樂晴) 교수 등과 아주 드물게 소주를 마셨다. 드물게가 아니라 희소하다거나 예외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거기서 예의 "약간의 잡스러움"론을 소개하며 재미있어 하였다.

연세대의 백영서 교수와 <프레시안>의 이근성 고문이 합석했었는데, 백 교수는 내가 홍승면 씨에 빗대어 백낙청 교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냐고 센스 있게 지적하였다. 끄덕였다. 사실 백낙청 교수에게도 "약간의 잡스러움"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그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원리원칙이고 모범적이다. 빈틈이 없다. 그래서 소주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좀 잡스러운 데가 있으면 얼마나 더 인간미가 있겠는가. 이퇴계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흐린 물에 고기가 몰려들 듯. 지금의 <창비>로도 물론 크나큰 성취이지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연하게도 홍승면 씨나 백낙청 교수 모두 수재형 경기고 출신인 것이 흥미롭다.)

"약간의 잡스러움"이 없어 아쉬웠던 사람으로 <한겨레>의 상징 송건호(宋建鎬) 씨를 들 수 있다. <한겨레> 창간 멤버이지만 리영희(李泳禧) 씨는 그런 점에서 좀 다르다. 송 진사로 통했던 송 씨는 술을 못할 뿐만 아니라 주색잡기와 완전히 절연된 선비였다. 그러기에 현대의 지사(志士)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송 선생에게도 한운사 씨가 홍승면 씨에 대해 한 말을 그대로 하고 싶은 것이다. 같은 언론인인 천관우(千寬宇) 씨도 술이 두주불사인 것 말고는 비슷하다.

반대의 경우는 많다. 그 때 "약간의 잡스러움"의 "약간"이 대단히 중요하다. 조금만 지나쳐도 안 된다. 지나치면 멋도 없고, 이병주 씨가 잘 쓰는 말로 "뽄"도 없게 될 것이다.(경향신문 이광훈 논설고문이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이병주 씨는 결과적으로 자기가 "뽄"도 없게 된 게 아닌가)

그 "약간의 잡스러움"에 포함될 수 있는 내가 아는 사람으로는 최석채(崔錫采), 선우휘(鮮于煇), 조덕송(趙德松) 씨 등을 들 수 있으며, 정치인 김상현(金相賢), 민기식(閔耭植) 씨, 시인 고은(高銀) 씨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이 문제로 누군가가 본격적인 에세이를 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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