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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의 소리' 강원용 목사와 술이라니...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 - 빠뜨렸던 이야기들 <52>

***3. '빈 들의 소리' 강원용 목사와 술이라니...**

강원용(姜元龍) 박사(주변에서는 목사보다 박사 호칭을 쓴다)와 알고 지내기는 60년대 중반부터이니 40년이 되어간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인데, 친구들이 혹시라도 낮게 평가하면 나는 적극 옹호하고 나서곤 한다. 우선 요즘 북핵문제와 그것에 대처하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적 우격다짐을 당하여 강 박사가 벌이고 있는 <평화포럼>을 중심한 평화운동은 매우 시의에 맞고 올바르며 또한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만약에 신약의 사도들이 지금 살아있다고 가정한다면 그와 같은 평화운동을 벌여야 마땅할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독교 개신교에서 예장보다는 기장(基長)측이 더 개방적-진취적인 것 같다. 나의 고교 동기생 가운데 박재봉(朴在鳳), 이쾌재(李快載) 목사가 모두 서울의 기장 총무를 맡았었는데(경동교회의 박종화 목사는 내가 그 축복을 받았을 것이라 한다.), 박재봉 목사는 <막걸리 목사>로 통했었다. 청주와 광주에서 YMCA일을 볼 때 그는 거친 청년들과 어울려 계속 대포집을 돌아다녔다. 내가 한 번 그 연유를 물으니 "불량한 청소년을 교화해야 하는데 그들을 교회로 오라면 오겠는가. 내가 대포집으로 찾아가야지"라고 하여 나를 감동시켰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 불행히 병사하였다.

고교동기 이야기에 붙여 한 사람 더 이야기하면 목원대 총장을 지낸 감리교의 유근종(柳根宗) 목사가 있다. 청주서 대학을 나온 후 사업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미국 유학을 가서 신학박사가 된 특이한 경력이다. 큰 교회서 오라 하는데도 안 가고 서울 변두리나 개척교회를 시작했었는데, 그 때 교파는 다르지만 강원용 목사가 격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하은(鄭賀恩) 박사가 살아계셨을 때 그 분과 조향록(趙香祿) 목사를 따라가 <낭만>에서 맥주를 마신 일이 생각난다. 기독교와 술이 무슨 상극이란 말인가. 적당히 마시면 되는 것이다. (기장 측은 음주, 끽연에 관대한 편이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고교 동기에 윤주흥(尹柱興) 군이 있는데 그는 법흥(法興) 스님으로 송광사 주지를 지냈다. 드물게 서울에 와 만나게 되면 내가 맥주를 강권하는데 그는 법차라고 하며 받아들였다. 그에게 은으로 조각된 금강저(金剛杵)를 선물했는데 그 금강저는 서울에서 열린 몽골 전시회에 출품된 것과 아주 비슷한 명품으로 내가 모처럼 좋은 일을 하였다고 흐뭇해 하고 있다.

김옥길(金玉吉) 이화여대 총장 생각도 난다. 신문사에 있을 때 몇 번 집으로 초대를 받았었는데 접대는 항상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빈대떡과 냉면이다. 나는 꼭 술을 내라고 떼를 써서 포도주를 마셨었다.

얼마전에는 강원용 박사가 한남클럽에서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를 위한 만찬을 베풀며 종교인을 중심으로 평화운동가들을 10여 명 초청하였다. 마침 레이니 대사가 미국의 <포린 어페어스>에 북핵문제 해결의 로드맵을 중심한 좋은 논문을 실었기에 그 글이 화제가 되었었는데 술은 와인이다. 나는 아직도 술 실력이 남아있어 와인을 두 잔쯤 하고 테네시주 산인 버번 위스키 <잭 다니엘스>를 시켰다. 그러면서 앞에 있던 기장 측의 박형규(朴炯圭) 목사께도 부시 대통령이 좋아하는 술이니 드시라고 권하였다. 미국 언론에 보니 <잭 다니엘스에서 바이블로>라고 부시를 묘사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만큼 부시는 심한 술꾼이었는데 그 후 술을 끊다시피하고 바이블만 내세운다는 것이다. 술을 끊은 알콜 중독자가 선과 악을 극단적으로 양분하게 된다는 심리학적 분석도 그 자리에서 나왔다.

매우 성공적이었던 사회운동인 크리스찬 아카데미운동이 무르익을 때 나도 자주 갔었는데 초기에는 강 박사가 양주를 푸짐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도 어지간히 마셨다. 듣기로는 강 박사가 선친을 기독교에 개종시키려 했을 때, 아버님이 술 담배를 못하게 하면 믿지 않겠다고 나오고 강 박사는 금연-금주를 계속 고집하여 개종이 성사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이 후회도 되고 한이 되어 강 박사가 술-담배를 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확인해 보는 것도 쑥스러운 일이고 하여 물어보지 않았다.

정릉의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초저녁부터 새벽 3시쯤까지 이태영(李兌榮), 한승헌(韓勝憲), 이홍구(李洪九) 씨 등 여럿이 술을 마셔가며 이른바 소울 서칭(Soul-Searching) 대화를 한 일이 있다. 그 때 이태영 여사는 자신의 과거사와 앞으로의 포부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 마치 강렬한 원색의 추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참 대단한 인물이구나 했다.

부시 대통령은 바이블 구절을 코에 걸 듯 하는데(코에 건다는 것은 일본 표현이다) 강 박사는 성경 이야기를 되도록 안 한다. 절대로 코에 걸고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정신, 그 바탕만이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강 박사를 좋아하는 까닭이 거기에도 있는 듯하다. 강 박사는 신앙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자주 내 믿음이 흔들립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진솔하고 절실한 말에 오히려 나는 감동하는 것이다. 함석헌(咸錫憲) 옹은 "교회당 탑 밑에 내 뼈다귀는 혹 있으리다 / 그러나 내 영은 결단코 거기 갇힐 수 없느니라"고 했지만 강 박사의 깊은 신앙 세계는 어떤지 자신있게 말 못하겠다. 강 박사가 종교 간의 대화에 매우 열성적이라는 것은 그의 종교관이 매우 열린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큰 스님 등과 사회운동에 항상 제휴하고 있음은 언론에 많이 보도된 대로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기일에 나는 망우리에 있는 묘소에 계속 가고 있다. 생전에 법대의 심재갑(沈載甲) 형의 안내로 사직동에 있는 죽산 댁을 방문, 이야기를 나눈 적이 한 번 있으나 진보당원은 아니었지만 그 분의 평화통일노력을 존경하고 또 억울하게 사법살인(司法殺人) 당한 것이 마음 아파 추도식이나마 거르지 않는 것이다. 거기서 자주 강원용 박사를 만난다. 그는 한동안 추도사도 계속 맡아 왔었다.

나하고는 가깝기에 그가 나에게 털어놓는 죽산과 그의 인연은 대단하다. 죽산이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을 때 그에게 지도국장 자리를 제의했으나 그가 사양했다는 것이 첫째 이야기다(그 자리에 고려대의 趙東弼 교수가 갔다.). 둘째로는 죽산이 첫 번째 대통령 후보로 나갔을 때 그에게 선거대책 책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맡지 않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승만정권이 진보당을 탄압할 것이라는 낌새를 느낀 죽산이 강 박사에게 진보당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그 후에 강 박사의 자서전 <역사의 언덕에서>를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당시 혁신 진영에는 김일사(金一史)라는 독립운동을 한 여걸이 있었는데 김 여사가 식사를 하자고 초청하여 가보았더니 죽산이 앉아있었고 당을 맡아달라고 하더라는 것. 강 박사는 해방 후 여운형, 김규식 선생을 따른 이른바 중간노선의 정치 청년이었으며, 또한 잔보당에는 함경도 출신이 핵심이어서 같은 함경도 출신인 강 박사가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죽산과의 일화들이 아귀가 맞는다.

그런 강 박사, 맹렬한 사회활동도 하고 술도 잘 드시고 얼굴에 핏기가 생생했던 그도 이제 80대 후반에 들어서니 허리가 약간 굽고 늙은 모습이 완연하다. 그의 아호는 여해(如海)인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해모임>을 만들었으며 나는 재정적 기여는 못하지만 모임엔 꼭 나가고 있다. 한국의 명사인명록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과 사귄 강 박사에게 나는 작은 감자알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근래 손세일(孫世一) 형이 쓴 <이승만과 김구>를 보니까 이 박사는 젊었을 때 한국 교회가 일본정책을 저해하는 여덟가지 이유(뒤집어 말하면 교회가 강력한 조직체라는 말)를 기술했는데 예컨대 교회는 한국인들이 자유로이 모이는 장소이고 활동력이 많다는 것 등을 들었다. 맞다. 이 박사의 관찰이 비범했다. 강 박사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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