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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세계전략, 그 모순과 극복의 지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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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세계전략, 그 모순과 극복의 지점 (2)

'김민웅의 반전평화주장' <18> 아메리카 제국의 역사

***2. 아메리카 제국의 역사**

최근 미국 지식사회는 "제국 논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9) 미국이 제국인가 아닌가에서부터 그래, 제국이면 어떠냐에 이르기까지 그 공방은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국가적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부시 정권의 군사주의적 세계전략에 의해 불거지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2004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제국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야 할 정도로 이 문제는 이제 공적 논쟁의 중요 축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이는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의 <제국(Empire)>10)이 출판된 이후,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는데, 논쟁은 네그리 등이 오늘날 민족국가의 주권적 경계선이 소멸되면서 이전의 제국주의 지배 질서는 사라지고 전 지구적 제국의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 데서 촉발되었다. 비판자들은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관성은 여전히 존재하며 중심과 주변부의 차별적 위계가 심화되어가고 있고 따라서 민족국가의 주권적 경계선이 소멸되기는커녕 더욱 분명하게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와 동시에 전 지구적 제국 건설을 저지하려는 저항 운동의 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하며, 자본이 주도하는 권력체제 아래 억압되어 있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11)

이러한 논의의 진행양상은 <제국주의>라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고전적인 정복지배 체제가 여전히 가동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집중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네그리의 논쟁이 아메리카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세계체제의 전면적 보편화의 문제는 주목했으나, 제국주의 체제의 약탈과 침략주의에 대한 전 지구적 민중들의 결속되어가는 계급주의적 저항이 가져오고 있는 변화와 그 장래의 전망에 대해서는 명확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미국의 제국 성립의 역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집중해서 보자면 오늘날 우리가 부시 정권의 세계적 행동 양식에서 보고 있는 반동적 폭력체제의 강화는 이미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축적되어온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연장선 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대외정책사와 관련한 기록과 자료들을 보노라면, 그 본질적 목표는 달라진 것이 없고 각 시기와 그 발전단계마다의 국가적 내지는 자본의 총역량에 따른 그 규모와 강도의 상대적 차이와 함께 제국주의 전개양상의 유동적 변화, 즉 진전과 후퇴 그리고 조정기의 과정적 차별성이 있을 뿐인 것을 목격하게 된다.12)

오늘날 부시 정권이 지향하고 있는 지구적 제국의 건설은 바로 이러한 제국건설에 대한 미국 역사의 내부에 축적된 일련의 요구들이 총집결하여 최종적 결말을 지으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부시 정권의 미국은 오늘의 현실을 지난 시기 미국의 역사가 집중해온 제국의 목표, 즉 세계정복을 완성하는 단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전략이 갖는 본질적 내용과 그 한계를 진단하는 작업에 이 아메리카 제국의 전개사(展開史)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설정하고 있는 세계정복의 목표는 거슬러 따지고 들면 19세기 중엽 미국이 남북 전쟁을 완료하고 난 뒤, 북부의 자본주의 체제의 주도권이 군사적으로 확인되면서 이를 토대로 독점자본의 성장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지고 난 상황이 그 출발점이 된다.13) 이들 독점 대자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의지에 의해 미국은 눈을 밖으로 돌리면서 당시 이미 노쇠한 스페인제국의 식민지였던 쿠바와 필리핀을 강점하게 된다. 제국주의 국가건설의 목표를 지배계급의 합의된 사안, 즉 19세기 판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1898년이 다가오는 시기, 미국 내에서는 바로 이 지배계급 내부에서 이른바 제국주의 논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결국 국가발전의 최고 목표는 제국 건설이라는 식으로 합의가 되면서 미국은 "문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내세워 침략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는 1823년 남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간섭주의 정책을 공식화해나간 먼로 닥트린(Monroe Doctrine) 이후의 실질적인 대외팽창주의가 실현되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식민지로 만든 쿠바에는 현재, 1959년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이후에도 관타나모에 여전히 미군 기지가 있고 필리핀에는 철수했던 미군 기지가 다시 복구되고 있다. 1세기에 걸친 제국의 지배가 아메리카 대륙 동서에 걸쳐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정복의 첫 발자국이 그렇게 시작되었고 이 야욕은 멈출 줄 모르고 지금껏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14)

1910년대에서 20년대에 걸쳐 이미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안의 지역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고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주도권을 강력하게 다진다. 이 시기에 미국이 추진했던 일체의 식민주의 정책은 1945년 이후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영향권이 확대되면서 제3세계권내에서 그대로 추진되어간다.

1914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의 시기는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역량을 고도화해나간 미국이 세계정복의 목표를 놓고 영국을 추격하면서 독일과 경쟁했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테오도르 루즈벨트에 의해 대표되는 군사주의 정책과, 윌슨으로 상징되는 달러 외교의 두 축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계적 패권의 기반을 구축해나간다.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이 경쟁은 미국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지만, 결국 두 나라는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면서 제국주의적 팽창체제의 주도권 쟁탈전을 벌인 셈이었다. 부시 정권이 세계 여론으로부터 히틀러와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까닭도 바로 그러한 내면적 공통점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난 후 미국은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반 세계자본주의 대안 체제와 마주하여 역사적 패권의 향방을 놓고 일대 격돌을 벌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추구한 것은 자신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지배체제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자신의 영향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구 파시스트 세력을 복구하여 이들이 제국주의 동맹체제 내부의 주도세력이 되도록 하며 안보국가론을 통해 반노동적이며 반혁명적인 종속형 군사주의 정권을 지원, 육성해나간다.15) 냉전시기에 미국의 관할 하에 있던 국가들이 파시즘의 새로운 유형을 보였으며 군비경쟁이 격화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정책적 결과물이자 체제적 요구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 냉전체제는 국제적 역학의 관점에서는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서로의 지배영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유보 내지는 잠정적 휴전상태로 유지할 것을 합의했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합의는 양측의 지속적인 팽창의지간의 충돌로 깨어질 가능성을 본원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쉽게 파괴되지 않았던 것은 냉전시기 양 진영이 충돌할 경우 상호 멸망의 명백한 가능성이 가지고 있는 핵무장 체제(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견제력이 역설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전략적으로는 <공포의 균형>이었던 동시에, 아메리카 제국이 전지구적 규모로 팽창할 수 없었던 근본적 제약조건이었다. 하지만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냉전의 지정학적 판도가 무너져 내리면서 미국은 공포의 균형이라는 조건에 제약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 대신 <공포의 독점>이 보다 대세를 장악하는 아메리카 제국의 일극적 지배에 필요한 전략이 되었고, 따라서 이제 더 이상 다른 어떤 포장이나 꾸밈이 필요하지 않은 노골적인 방식, 즉 자본과 군사력의 직접적인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안정적 축적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시장의 틀을 만들 국제적인 협상과 합의에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력을 선두에 내세워 이를 관철시키는 것을 우선적 요구로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미국의 지배계급내부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각 주도세력의 철학과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고,16) 국제정세 속에서의 미국의 위치변화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며 또한 대변하고 있는 자본의 성격이 가지고 있는 차별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첫 단계로 등장한 자본의 직접 지배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주도권에 의한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나타났는데, 경제회복을 위한 이윤의 극대화 창출에 필요하다며 <구조재조정(Structural Adjustment)>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무역기구 WTO나 국제통화기금 IMF등의 강제적 압박을 통해 실제로는 각종 수탈을 위한 체제를 만들어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를 옥죄어갔으며 이들의 경제를 빚과 투기로 찌들게 하면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른바 경제구조 개혁의 기만과 모순을 알아차리고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 지구촌의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사태는 바뀌어 갔다. 세계체제 내부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는 보다 심화되어갔고 주변부 내에서도 사회적 양극화는 정치적 갈등을 첨예하게 만들었고 정치적 변혁의 동력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 동력이 세계적 민중연대의 방향으로 그 진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국제수준의 시장 조성을 위해서"라는 식으로 호도해온 초국적 독점자본의 수탈기구와 이를 통솔하고 있는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거대한 지구촌적 차원의 민중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1999년 시애틀의 반 WTO 시위는 그 세계사적 신호탄이었으며 이후 <세계사회포럼>의 모태가 된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로의 집회는 세계체제 전체의 변혁을 겨냥하는 반체제 운동의 연대가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인 면모를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17)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자본의 지배를 차질 없이 관철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의 보다 강력한 사용이 절실해졌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론자로 알려진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인 토마스 프리드만 (Thomas Friedman)이 "맥도날드(McDonald)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맥도널 더글라스(McDonell Douglas/군수산업체)가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할 정도로 군사력의 보장 없이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 제국의 유지는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었다. 제국의 위기에 대한 폭력적 대응이 미국 자유주의 지식인 내부에서도 하나의 정책적 원칙이 된 것이었다. 이 원칙의 정치적 수행자가 바로 부시 정권인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역사적 이해를 관철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부시정권 이전에 이미 미국은 클린턴 정권 시기에 NATO의 주도하에 전개했던 코소보 전쟁을 통한 군사주의 체제 강화와 이후 이라크 공습 등을 비롯하여 테러법안 통과 등으로 부시의 전쟁국가 강화의 기반을 마련해놓았다.18)

단지 이들 두 정권간의 차이라면, 국제적 합의의 틀이라는 면모로 미국을 축으로 하는 제국주의 동맹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과정을 중요시하지 않고 미국의 일방주의적 선제행동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서구 제국주의 동맹과의 관계를 소위 대서양 연맹이라는 국제주의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최대한 무력화시키면서 자신의 패권체제를 일극화시키는 노력에 집중할 것인지의 선택으로 그 입장이 갈라지는 것이다.

즉, 아메리카 제국주의 체제의 세계적 완성을 위한 전략의 차별성이 있을 뿐, 세계제국에 대한 구조적 요구와 세계관적 열망은 미국 지배계급의 정치적 지향성에 있어서 정파간에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전쟁정책과 전쟁경제는 축소되거나 폐기될 수 없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기본요소인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난 100여년에 걸쳐 거대한 폭력기구를 기반으로 하는 제국건설의 길을 맹렬하게 걸어왔던 것이다.

***각주**

9) 자신의 저서 American Empire: The Realities and Consequences of U.S. Diplomacy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2002)를 통해 클린턴 시기로부터 이미 부시의 제국주의 전략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파악하고 있는 앤드류 바세비치(Andrew Bacevich)가 펴낸 The Imperial Tense: Prospects and Problems of American Empire (Chicago: Ivan R. Dee, 2003)에는 아메리카 제국에 대한 각종 공방이 실려 있다.

10) Michael Hardt & Antonion Negri, Empire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2000)

11) 미국 좌파 지식인 사회에서 네그리의 제국 개념에 대한 비판이 치열한데 그와 관련한 책으로는 폴 파사반트(Paul A. Passavant)와 조디 딘(Jodi Dean)이 편집한 Empire's New Clothes: Reading hardt and Negri (New York: Routledge, 2004)와 뉴 레프트(New Left)의 편집위원인 고팔 발라크리쉬난(Gopal Balakrishnan)이 편집한 Debating Empire (London: Verso, 2003)등을 꼽을 수 있다.

12) 1921년에 나온 스캇트 니어링(Scott Nearing)의 The American Empire (New York: The Rand School of Social Science, 1921)이나 1925년 스캇트 니어링과 청년 공산당원 조세프 프리만(Joseph Freeman)이 공저한 Dollar Diplomacy: A Study in American Imperialism (New York: Modern Reader paperbacks, 1925)등을 읽으면 오늘날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미국의 대외정책상의 팽창주의와 그 행태의 야만성을 보게 된다.

13) 남북 전쟁이 완료되고 스페인 전쟁이 일어난 시기까지 미국은 독점자본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상당정도 축적하게 된다. 이에 대한 연구로는 수정주의 사가(史家) 월터 라페버(Walter LaFeber)의 The New Empire: An Interpretation of American Expansion 1860-1898(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63)가 주목할 만하다. 또한 매튜 조세프슨(Matthew Josephson)의 The Robber Barons (New York: Harvest Book, 1934)는 남북 전쟁 이후 독점 대자본의 성장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자본의 집중과 제국주의적 기초, 그리고 민중들의 고난을 잘 그리고 있다.

14) 이 시기 미국은 구제국의 해체기라는 이행과정에 개입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추진한다. 비서구 지역의 민주주의와 기독교적 선교사명이 결합되는 방식은 이후에도 되풀이 되어 미국의 대외정책을 규정하게 된다. William Pomeroy, American Neo-Colonialism: Its Emergence in the Philippines and Asia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70) 미국은 필리핀 강점 과정에서 야만적인 학살행위를 저지고 필리핀 민중들의 저항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게 된다. 이와 같은 미국의 식민주의 정책은 지속적으로 도처에서 반복된다.

15) 가브리엘 콜코(Gabriel Kolko)는 2차대전 종결과정에서 미국이 이렇게 우파세력의 복원을 통해 자신의 영향권을 확정짓는 역사를 치밀하게 증언한다. 그의 책을 통해서 우리는 어찌해서 미국이 해방공간에서 친일잔존세력의 복원을 관철하고 이를 토대로 한 식민지배 정책을 추진했는가에 대한 까닭을 파악하게 된다. The Politics of War (New York: Pantheon Books, 1968)

16) 극우적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은 이른바 하늘이 미국에게 부과한 <명백한 운명 (Manifest Destiny)>라는 개념과 깊이 결합되어 침략적 선교전략에 기초한 정복주의적 선교지 확대로 이어진다. 이 논리는 그 표현의 차이가 다소간 있을 뿐,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만들어 내는데 있어서 근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공화당 극우파의 실질적인 정치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택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아메리카 제국의 절대선을 전제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국제법적 규제와 제한은 의미가 없으며 도리어 <명백한 운명>의 실현에 장애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Martine Marty, Righteous Empire: The Protestant Experience in America (New York: Harper Torchbooks, 1970), Sara Diamond, Roads to Dominion: Right-Wing Movements and Political Power in the United States (New York: The Guilford Press, 1995) Eyes Right!: Challenging the Right Wing Backlash ed. by Chip Berlet (Boston: South End Press, 1995)

17) 세계사회포럼의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는 주장과 구호는 다른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식의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 체제 절대 신성화 전략에 대한 반격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Another World is possible, ed. by William Fisher and Thomas Ponniah (Nova Scotica: Fernwood Publishing Ltd., 2003) Istvan Meszaros의 Beyond Capital (New York: Monthly Review, 1995)은 이른바 TINA 논리에 대한 반론과 함께 자본의 권력체계를 정밀하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필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18) 코소보 전쟁은 사회주의 체제의 전격적인 자본주의화를 위한 폭력적 전환 과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유럽 제국주의 동맹은 클린턴 정권 하의 미국과 연대하여 "인도주의적 개입"을 명분으로 한 침략을 통해 국가 자체를 전복하고 해체하여 제국주의 지배영역을 확대한다. Michael Parenti, To Kill a Nation (London: Verso, 2000), Masters of the Universe?: NATO's Balkan Crusade, ed. by Tariq Ali (London: Verso,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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