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교수들은 교수가 되면서 비로소 여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22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국여교수연합회(회장 이소우)주최 '대학사회 내 여교수의 참여적 현실' 학술세미나에서는 대학사회내의 성차별에 대한 여교수의 경험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여자가 교수가 된 후의 이야기'는 전무했다고 지적한다.
"여교수들은 그동안 '이 험한 세상에 여자가 교수가 되면 얼마나 행복하냐'고 인식됐지만 이는 마치 '어느 여자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좋은 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는 동화와 같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와 다른 현실이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 것처럼 남성중심적인 대학에서 많은 여교수들은 교수가 되면서 비로소 여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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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도 예외없는 올드보이 네트워크의 장"**
"성차별이 적을 것 같은 지식인들의 대학사회도 예외없는 '올드보이 네트워크' 작동의 장입니다. 여교수들은 가정일로 아무때나 학과 일에 협조를 구할 수도 없고 남자동료보다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여교수의 기여는 크게 기대할 것 없다는 '논리'가 만연해 있어요.
그 결과 보직에서도 명예와 권한이 있는 지위에는 남성이, 의무와 봉사가 있는 지위에는 여성이 담당하죠. 학과운영의 의무는 철저히 공유하되 권리는 남성이 독식하는 겁니다. 게다가 주요 결정이 술자리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여교수들은 자연스럽게 의사결정과정에 소외됩니다" (손승영 동덕여대 여성학)
"여교수의 경우 기존 남성문화를 그대로 수용하며 인내하거나 거부하고 스스로 소외시키든가 합니다. 어느 쪽이든지 주변집단이나 소외집단에서 볼 수 있는 침묵과 혼자만의 생각이 체질화되죠. 시간이 경과하면 이는 체념과 집단적인 무기력으로 연결됩니다.
이런 무기력이 학내의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여교수 스스로 경험한 사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여학생들의 경우에까지도 침묵하게 만듭니다"(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
***교내에서는 임신한 여교수를 보기 힘들다**
"여교수가 한번 출산하려면 출산예정 이전학기에 강의를 몰아서 해놓아야 합니다. 출산예정학기에는 자비를 들여 강사를 고용해야 하구요. 최근 연세대에서는 여교수님 두분이 출산휴가의 명문화 요구 등을 담은 제안서를 교수평의회와 교수협의회에 보낸 바 있습니다.
이전의 제안서들이 '선처'나 '배려'로 마무리하는 것에 비해 이번에는 '이는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며 여성부에 고발될 수 있는 명백한 '남녀불평등', '모자보호' 위반사례로 조속히 처리되지 않으면 학교 밖 여성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고 명시했습니다.
명색이 백년이 넘는 사학에서 이제서야 이런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성평등적 정책을 만들 의사 결정 구조가 전혀 없었던 현실과 출산과 육아 문제의 공론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학교 밖의 힘, 정부나 법률의 힘을 빌릴 각오를 하게 만드는 것이 현 연세대 여교수들이 직면한 현실입니다"(김현미 연세대 사회학)
***계약직의 여성화, 모성보호 전무, 성희롱의 범람...대학에서 여자로 살아가기 힘든 이유**
손승영 교수는 "최근 대학들이 경비절감을 목적으로 별도운영하는 대우전임, 강의교수, 연구교수 등 계약직 직책이 여성들로 채워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학사회 내에서도 '시간강사의 여성화'와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순 교수는 "근대사회의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전업주부가 있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남자를 기준으로 상정된 것"이라며 "가사노동과 연구업적 부담을 동시에 지고 가는 여교수들이 가정을 꾸리고 출산·육아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과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이어 "신입생 환영회나 대동제 등에서 남교수와 학생들이 합세해 '음담패설 경연대회'를 벌인다면 '자리를 썰렁하게 할 것인가 함께 망가질 것인가' 기로에 서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일부 여학생들의 '끗발 있는' 남교수에 대한 접근 시도와 이를 방조하거나 즐기는 남자교수의 풍경은 대학교육이 상품화되어가면서 더 많이 나타나는데 여교수들은 이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배운다"**
김교수는 그동안의 여교수들의 침묵의 이유로 ▲ 성차별적 상황을 부정하거나 예외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간주하는 대학 내의 경향 ▲ 여교수들의 절대적인 수적 열세 ▲ 그동안 성불평등 문제제기를 해온 인력이 주로 여자대학이나 여자가 집중된 전공 소속이라는 점 ▲ 여교수들의 생존전략적 자기 검열 ▲'배부른 자의 불평'라는 비난에의 두려움 등을 꼽았다.
김교수는 이제 침묵을 깨고 '여교수, 그 후의 이야기'를 해야하는 중요 이유 중 하나로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들었다. 학생들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여교수들을 보면서 '교수들도 저럴진대 다른 분야의 여성들은 어떨까'하는 좋은 예화와 설득이 된다는 설명이다.
김교수는 "특히 여학생들은 '자녀'와 '학생'이라는 상대적으로 평등한 시절을 지내왔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라는 당위를 현실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가 성차별이 너무나 분명한 사회와 가정에 나아가게 되면 무력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여교수들이 성차별을 동료들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교육과 역할모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미 교수는 "남학생의 경우에도 여교수의 존재는 의미있는 가치를 형성한다"며 "여성을 '동료'나 '조언자', '상관'으로 받아들이는 교육현장의 경험은 양성이 함께 할 일이 더욱 늘어날 사회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전국여교수연합회 건의문 전문이다.
***전국여교수연합회 건의문**
우리 전국여교수연합회는 대학교수의 성비율 불균형으로 인한 제반 문제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대학 사회에 양성평등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의 모든 대학에 다음과 같이 건의한다.
1.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내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립된 제도적 기구를 교육인적자원부 산하에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2. 모든 대학은 대학내 성차별에 대한 적극적 조치 담당기관의 설치를 의무화할 것을 촉구한다.
3. 모든 대학은 교무위원회 및 인사위원회를 비롯한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여교수의 참여 비율을 20% 이상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
4.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위의 2항과 3항의 실현 내용을 대학 평가에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
2003년 12월 22일 전국여교수연합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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