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요? 어디서 오셨다구요? 참내... 우리가 그렇게 힘들 때는 기자님들 나 몰라라 하더니 이렇게 사람들 다치고 전경들 내려오니깐 이제서야 취재하겠다고..."
22일 오전에 찾은 부안 성모병원 503호 중환자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선혈이 낭자해서가 아니다. 응급실은 깔끔했다. 하얀 붕대에 감싸인 부안군민들의 모습에서 그네들의 처참한 부상 상황은 사진의 한 컷으로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피눈물의 기억은 부안군민들의 '눈동자'속에 남아있었다.
신형식(46)씨는 "기자들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얘기는 다 듣고 취재는 다 해가면서 왜 방송과 기사는 그렇게 나오냐"며 인터뷰를 거부할 듯 하면서도, 전경의 방패에 찍히고 곤봉에 구타당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방패의 기억, "바닥에 박박 갈은 방패로 사정없이 찍어댄다"**
다음은 김성수(49)씨의 이야기다.
"17일 밤 10시쯤 거리에서 촛불 들고 있는데 전경들이 우리를 삥 둘러싸더라구요. 사거리 4개를 빽빽이 막아서
다 막고 몰아붙였어요. 그러더니 사방에서 방패로 다 찍더라구. 옛날에는 방패들고 선 전경들과 대치하면 그냥 서로 좀 밀고 군민들은 구호 좀 외치다가 물러나고 그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사정없이 방패로 찍어요. 1열은 서 있고 바로 뒤의 2열에서 방패를 세워서 목하고 머리를 노리면 주민들은 당할 수 밖에 없어요"
<주민부상1>
군민들과의 대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방패'다. 주민들은 전경들이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을 땐 방패로 바닥을 치면서 위협하고 방패 밑을 바닥에 갈아가지고 다닌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밤에는 부안읍내를 원천봉쇄한 가운데 산발적으로 벌어진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군민들은 "시위끝날 때 까지 있어달라. 기자들만 가면 전경들이 방패로 찍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성수씨는 "중요한 것은 싸울 능력도 없는 나이든 사람, 그냥 구경하는 사람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피눈물 나지 피눈물 나. 내 아들도 내년에 군대가는데 전경은 절대 안 보낼 겁니다"**
황모(52)씨는 17일 전경이 시위대를 진압할 때 도망가다가 전경들한테 둘러싸였다. "순간적으로 목숨은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순간 방패가 손을 찍었어요"
황씨는 손가락 두개가 부러져 철심을 박은 상태다. 황씨는 "의사에게 '엎드린 상태에서 찍혀 깊게 패인 허벅지 상처는 도저히 방패로는 생길 수 없는 것'이라고 들었다"며 "전경들이 칼로 찌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민부상2>
전경한테 맥주병으로 얼굴을 맞아 유리 파편을 눈에서 빼내야 했다는 김운철(42)씨는 "방패든 전경 바로 뒤 전경이 맥주병을 얼굴에 가격하면서 거품이 주위로 확 퍼져 그날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 봤다"며 "만약 군민들이 그랬으면 살인미수라고 당장에 잡아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초반엔 '전경이 무슨 죄가 있냐, 다 위에서 시켜서 저러는 것이지'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아들뻘 되는 전경들한테 욕설 들어가면서 처참하게 맞고나면 그 심정은 말로 다 표현못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황씨는 "내 아들도 내년에 군대가는데, 전경은 절대 안 보낼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억울해도 폭력 쓰면 전경과 똑같이 된다"**
그동안 매번 시위 때마다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자원 활동을 해온 김영국(44, 자영업)씨는 "지금 부안 군민들은 악이 바쳐서 말로 통제가 안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군민들은 이성적으로 대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정말 이가 갈리고 억울하지만 폭력을 쓰면 전경들과 똑같이 되니 흥분한 사람들은 가라앉혀야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실제로 21일 부안 성모병원에 도착한 부상당한 의경을 일부 군민들이 폭행하자 위협을 무릅쓰고 막았다.
한 대책위 관계자는 "촛불시위는 이 싸움의 상징이라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 전경들이 저렇게 막아대니 수협 사거리에서 무조건 강행할 수도 없고... 대책위로서도 군민이 더 이상 다치지 않는 싸움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집회를 부안성당에서 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성당에서 열리는 토요미사까지 전경들이 원천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22일 저녁 7시,'반핵광장'을 빼앗긴 부안의 촛불들은 속속 부안성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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