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시대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30년의 끝자락,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중도를 표방하던 민주당이 민주통합당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강령에 '재벌개혁'을 내걸었다. 한나라당조차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지우네 마네 싸우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7년여만에 처음으로 앞선 여론조사가 나왔다. 대학가에선 90년대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선거 참여를 통한 정권 심판론이 등장했다. 지표로 보나 현상으로 보나 정권교체 열망 지수의 상승세를 체감한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 분배나 복지와 같은 진보적 의제의 확산. 진보정당에게 이런 호기가 또 있을까.
이 마당에 통합진보당이 실종됐다. 지난 12월 당 지지율은 10%를 넘어섰고 이에 고무돼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국회의원 배출을 호언한 당이다. 신년 초 2~3%대로 주저앉은 지지율은 둘째 치더라도 그 당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보통 볼썽사나운 게 아니다. '진보정치 1번지'라는 창원에서 현직 도의원이 직을 내던지고 출마를 준비 중이란다. 그가 지난 2008년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사퇴한 전직 도의원의 행태를 손가락질 하며 당선된 사람이라는 건 코미디로 넘긴다. 문제는 통합진보당이 당원총투표를 통해 그런 그를 총선 예비후보로 최종확정했다는 데에 있다.
2008년 총선이 끝난 직후 일었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심상정', '지·못·미 노회찬' 현상을 기억한다. 열정과 실력을 갖춘 진보정치인들의 시련이 안쓰러운 이들의 미안함이기도 했고 진보정치의 퇴조를 직감한 이들의 한숨이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선출직 공직자가 되지 못하면 백수와 다름없는 이들이 원내 재진입을 위해 배신의 멍에까지 감수하며 통합진보당에 몸을 실은 건 아쉽지만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탄생 과정에 쏟아진 비판을 지금 와 돌이킬 건 아니지만, 유시민이라는 개인을 표적으로 논란이 진행된 것도 곁가지의 과잉이었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학계에선 상당기간 내용이 축적되어 최근 다발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상기하면 진보와 자유주의의 결합을 꼭 어색하게만 볼 일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 같은 진보정치인과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유시민이 망라된 통합진보당만큼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당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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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이름에 진보가 붙어있다고 진보정당이 되는 건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좌클릭했다고 진보정당의 활로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지나온 진보정당사가 증명한다. 기득권을 가진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변화를 모색하고 덩치를 키우는 마당에 메마른 낱말로 진보를 호소하는 통합진보당에 던질 표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 사족. 단병호의 눈물은 그 뒤로도 여러번 있었다. 2006년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비정규직 법안을 날치기 처리했을 때 "미안합니다. 1500만 노동자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못 막았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2007년 7월 이랜드 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된 뒤엔 "육신이 떨어져 나가는듯한 고통을 느꼈다"며 또 눈물을 떨궜다. 원래 잘 우는 사람이었을까? 그가 눈물 흘린 자리엔 진보정당밖에 기댈 곳 없는 '가진 게 쥐뿔도 없는 사람들'의 분노가 더 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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