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소프트웨어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 기술을 배우는 문화적인 환경이 중요하다는데 있다. 누가 지금 나에게 미국에서 무슨 직업을 갖고 싶으냐고 물으면 태권도사범이라고 말할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 받는 한국사람이 태권도 사범이다. 아이들이 부모 말은 안 들어도 태권도사범 말은 절대 복종한다. 태권도사범을 관원들은 Master 혹은 Sir 이라고 부른다. 누가 미국에서 그런 호칭으로 불릴 수가 있을까? 미국의 어느 직장을 가도 사장도 그런 대접을 못 받는다. 아무리 큰 대기업에서도 사장도 다 이름으로 호칭된다. 대통령도 이름으로 호칭되지 Master 같은 최고 존칭은 무도계에서만 존재한다. 미국에서 태권도사범은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누가 아무리 명문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존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20여년 전 내가 미국 콜로라도주의 덴버에 1년 동안 살았을 때 있었던 일이다. 한국에서 온 태권도사범이 새로 태권도장을 열어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 동네를 주름잡는 흑인깡패가 아니꼬왔던지 태권도사범에게 도전을 했다. 한국사범이 덩치도 작고 하니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범으로서 일일이 이런 도전을 다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 때 한번은 언젠가 거쳐가야 할 도전이기에 수락했다. 대련 전에 다쳐도 서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서약도 받았다. 실전과 다름없는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 흑인이 공격을 했으나 사범은 방어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았다. 약 5분간을 그 흑인이 공격을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 흑인은 한번도 사범을 때릴 수 없었다. 더 이상 공격해야 한 대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후에 단 한번의 발차기 공격으로 그 흑인을 때려 눕혔다. 태권도에서 말하는 필살일격이다. 이 사건으로 그 사범은 덴버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그 지역에서 태권도에 대한 도전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도전이 태권도의 세계보급 초창기에는 많았지만 이제는 들어보기 힘들다. 이미 검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훌륭하게도 그 많은 도전들을 초창기 태권도 사범들이 다 이겨나간 것이다.
내 고향은 서울의 서대문구 응암동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초반까지를 응암동에서 살았다. 내가 태권도를 수련한 곳이 그 곳의 경희타잔체육관인데 지금도 가끔 옛 태권도 사부인 최관장님을 찾아 뵌다. 나 역시 존경하는 관장님을 만나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그게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그 관장님이 나의 운동소질을 보고 태권도선수로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당시 공부를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했었고 누구나 예외 없이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에 있었던 아쉬웠던 생각이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그럴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디에 가서 평생에 Master 나 Sir 소리를 들어보겠는가?
미국 태권도 도장에서는 태권도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동도 가르친다. 애국심을 비롯해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교훈도 항상 관훈에 들어있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녀들을 태권도장에 많이 보낸다. 그래야 부모 말을 더 잘 듣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한인교포 부모들은 자녀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한다. 나도 우리 아들을 유단자가 될 때까지 태권도장에 보냈다. 학교공부 때문에 지금은 더 이상 보내지는 않지만 모든 인종들이 다 배운다. 미국에서 바람직한 정신문화를 심어주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태권도이다. 요새는 스포츠화가 많이 되어서 무도정신이 조금 희석되어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더 빨리 태권도의 무도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태권도의 유단자로서 점수를 따는 스포츠보다는 순수한 무도정신을 가지는 태권도를 더 그리워 한다. 육체적인 운동은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태권도장에 갔을 때 느끼는 그 엄숙함이나 무도인의 느낌은 다른 곳에서는 갖기 힘들다.
태권도 도장에 가면 느끼는 문화가 있다. 내가 집에서 우리 아들에게 직접 태권도의 기술은 가르칠 수 있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기술은 태권도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내가 태권도를 배웠다는 것을 인생에서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기술을 배워서가 아니고 그 문화를 배웠기 때문이다. 배웠다기보다는 서서히 젖어 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지금은 태권도와 같은 격렬한 운동은 안 하지만 시간만 나면 태극권 같은 우아하고 정적인 무술을 배운다. 우아하다고 해서 약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아한 가운데서의 힘은 강렬한 것을 능가할 수 있다. 실제로 유명한 실화가 있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가라데의 달인 최배달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 많은 격투기를 해서 모두 이겼지만 딱 한명을 이기지 못했다고 자서전에 써 있다. 바로 태극권을 하는 중국의 진노인에게 패하지는 않았지만 노인에게 이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패배로 인정했다.
소프트웨어와 태권도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표면적인 지식이나 기술보다는 근본적인 가치를 문화적인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집에서는 절대 태권도를 배울 수 없다. 싸움 잘하는 깡패들이 산에 가서 합숙훈련하면서 배워도 마찬가지다. 기술만 있지 올바른 문화는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의 올바른 문화는 엄격한 훈련과 규칙에서 나온다. 올바른 문화 아래서 배우지 않으면 정통파가 아닌 편법과 기술에만 치우친 사이비가 된다. 문화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절대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를 배울 수 없다.
한국에는 소프트웨어에 관한한 정통파가 없다고 본다. 아직 역사가 짧아 문화가 정립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소프트웨어를 잘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자신이 흑인깡패인지 태권도 사범인지를 생각해 보라. 정 반대로 실전을 모르고 교과서적인 이론만 아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지위가 갖는 권위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히딩크도 선수생활을 거쳐 실전을 아는 감독이었기에 권위도 있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태권도에는 사범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사범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나도 소프트웨어 사범으로서 덴버에서 태권도 사범이 경험했던 그 흑인깡패와 같은 도전을 받고 싶다. 나도 결과가 궁금하다. 이론으로는 누구나 다 최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로는 결판이 안 난다. 실제 프로젝트를 놓고 실전으로 겨루어 봐야 안다. 그게 가장 쉽게 소프트웨어의 진수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올바른 문화가 조금이라도 빨리 정립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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