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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지탱해 주는 힘, 그것은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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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지탱해 주는 힘, 그것은 연극이었다!

'헤카베' 통신 <4>

8월 20일 아침. 연출 김석만 교수와 몇몇 스태프들은 주최측과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의하기 위해서 올림피아로 출발했다. 숙소에 남은 나머지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부디 연출부가 좋은 소식들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최측과의 면담을 마친 일행이 돌아온 시각은 오후 1시경이었다. 살이 타들어 갈 정도로 뜨거운 뙤약볕을 헤치고 유스호스텔로 들어선 그들의 얼굴은 모두 빠알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때마침 점심 시간이어서 우리 팀은 모두 식당으로 모였다. 올리브 오일로 가득한 그릭 샐러드와 낯설은 그리스 고기 요리. 그리스의 음식은 낮잠 문화와 날씨만큼이나 낯설기만 했다.

김석만 교수는 내일 오전 중에 숙소를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 오늘 오후 동안 이곳에서 편히 쉬면서 공연을 위한 체력을 키우자고 했다. 차편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올림피아 시내로 관광을 떠난다거나,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려서 해변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모두들 김석만 교수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의 낮잠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서둘러 낮잠을 청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오후 5시 경. 주최측의 버스가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드디어 올림피아 시내로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 동안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경험했던 우리들에게 유재원 교수는 1시간 동안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모두들 골목을 누비면서 지인들의 선물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쇼핑을 마친 우리들은 저녁 8시부터 시작되는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드루바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루바 극장은 생각보다 꽤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가파른 언덕을 20분 가량 올라갔더니, 세계대학연극축제의 현수막과 포스터가 우리를 맞이했다. 저녁 공연을 위해 준비해 둔 노오란 전구들이 극장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나지막한 산을 그대로 깎아서 만든 드루바 극장에 도착해 보니, 자연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서 공연을 기다리면서, 유스호스텔에 갇혀서 답답했던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축제 운영위원 안젤리카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서 올린 사이프러스와 불가리아의 공연을 지켜 보며, 자국 문화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공연 모두 생각보다 매우 아마추어적이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연극적 고민을 공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공연은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밤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가족 단위로 관람하러 온 그리스인들이 밤늦도록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들어오던 그리스인들의 연극 사랑. 이 나라 사람들은 일주일에 연극 한 편, 영화 한 편을 볼 정도로 연극에 대한 사랑이 지대하다고 한다. 매 공연마다 적자가 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국 연극의 부활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그리스의 관극 문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도전이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수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좋은 연극을 공연하리라. 언젠가는!

이튿날 아침.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9시에 도착하기로 했던 버스가 늦지 않고 정각에 유스호스텔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경험한 정각 문화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그 동안 여유로운 그리스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아, 우리는 언제쯤 그리스인들의 시간 관념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올림피아 시내의 익숙한 풍경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 버스는 과연 어떤 숙소로 우리를 안내할 것인가. 버스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모두들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우리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어느새 올림피아 시내 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우리의 불안감은 그만큼 커져만 갔다.

'Olympia Village Hotel'. 버스가 멈춘 곳은 올림피아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호텔의 주차장이었다. 넓은 응접실과 깔끔한 식당 그리고 야외 수영장까지. 며칠 동안의 피로를 씻어 주기에 충분한 숙소였다. 그제서야 우리는 긴장을 풀고 진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편안함. 모두들 새로운 숙소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루를 그냥 흘려 보낸 것이 못내 아쉬웠던 우리는 오전 중에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했다. 주최측의 배려로 유적지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유재원 교수의 꼼꼼한 설명을 들으며 헤라 신전과 제우스 신전을 둘러 보니, 금세 고대 올림피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고대 올림픽이 개최되던 넒은 운동장을 바라보며, 우리도 한번 올림픽 선수가 되어 보았다. 올림픽 선수들이 뛰어 들어왔던 아치형 문으로 달려 보기도 했고, 우승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아래서 상념에 잠겨 보기도 했다. 이 곳에서 우리는 기나긴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서 숙소로 돌아오니,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모처럼 입에 맞는 즐거운 점심 시간이었다.

하루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불만은 만족으로, 불평은 감사로, 실망은 기대로 말이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수영장과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으니, 공연날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무사히 공연을 하는 일,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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