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지맹(城下之盟)이라는 사자성어의 뜻은 두 나라가 동맹관계를 맺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항복한 것을 듣기 좋게 부른 것이다. 그것이 성문을 중심으로 싸우던 시절의 이야기라면 근대에 와서는 함상지맹(艦上之盟)이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1842년 오늘 영국과 청국 사이에 체결된 난징(南京)조약이 그렇다. 난징에 정박한 영국 군함 콘윌리스호 함상에서 양국의 전권대사 사이에 체결된 이 조약은 아편전쟁에 대한 항복의식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한 세기 뒤인 1945년 일본이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의 전함 미주리함의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과 비슷하나 내용은 더 가혹한 것이었다. 진주만을 기습해서 박살낸 일본과는 달리 청국은 영국군(520명)보다 수십 배나 많은 2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홍콩 등을 할양하는 등 일본으로서는 줄래야 줄 수도 없는 배상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홍콩은 1997년 155년 만에 중국에 반환됐으나 아직 그 상처가 낫지 않은 것은 물론 언제 나을 것인지 기약도 없다. 홍콩반환 6주년을 맞은 지난 7월 1일 홍콩 주민 50만 명이 시위를 벌인 것이 그런 것이다. 중국인들이 모두 견디는 공산주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홍콩판 국가보안법 같은 국가안전법 제정에 반대한 그 7백만은 대륙의 13억 주민들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땅이 중국에 반환됐다 해서 그동안 영국화된 주민들이 저절로 중국인으로 환원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주민들의 기세에 눌린 홍콩 당국은 문제의 보안국장 레지나입(葉劉淑儀)을 갈아 치우고 그 자리에 암브로즈리(李少光)를 임명했으나 이들의 이름이 풍기는 어감도 중국보다는 LA의 차이나타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홍콩의 경우 99%의 주민은 중국인이지만 그 사회는 영국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위에 중국인들이 미국식 비즈니스를 하는 복잡한 사회로 변질돼 있고 그것은 홍콩의 빛이자 그림자인 셈이다.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로 시작되는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에 비친 홍콩은 밤거리를 부르는 것이지만 그 빛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과는 전혀 달리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이 뒤섞인 신비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홍콩이 동방과 서방의 접점이 된 것은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냉전시절 홍콩은 중국대륙의 붉은 이데올로기가 전파되는 관문으로 경계를 받더니 막상 중국으로 환원되자 중국의 공산주의가 아직 해방시키지 못한 ‘중국’으로 눈총을 받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본토에서는 살 수 없는 금서를 사가는 것도 그런 것이다.
어쩌면 홍콩은 영원히 중국 공산당이 해방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 자체가 사회주의를 탈피하고 하고 있어 홍콩이 중국화 되기보다 중국이 더 빨리 홍콩화 되기도 해서다. 홍콩이 중국의 미래라는 말이 그것이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홍콩 아가씨’에서 느껴지는 ‘홍콩(香港)의 향기는 사라져 가고 있는 점이다. 지난날 미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최대의 영화 문화를 자랑하던 홍콩에서 성룡 주윤발 등 스타들이 헐리웃 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도 그렇다. 중세의 베네치아나 피렌체처럼 국가보다 더 큰 문화역량을 가졌던 이 도시국가는 신비를 잃은 채 대국의 한 행정구역으로 편입돼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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