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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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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겆이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5>

예배가 끝나면 홍차나 커피 그리고 비스켓 몇 봉지를 뜯어 놓는 친교시간이다.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빙을 하고 컵과 잔을 설겆이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불편해서 가끔 들어가 돕는다. 우리하고는 설겆이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여기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국서 살다온 사람들이나 유학 갔다 온 사람들로부터. 그 이야기는 우리가 서양 사람보다 얼마나 깨끗한지를 말하기 위한 예였다. 그래서 나도 퐁퐁물에서 꺼낸 그릇을 헹구지도 않고 그냥 마른 행주질 한다는 이곳의 설겆이 방식을 우습게 알았다.

우리는 퐁퐁을 스폰지에 묻혀서 그릇을 닦고 퐁퐁 묻은 그릇을 흐르는 깨끗한 물에 다시 씻는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퐁퐁을 전혀 쓰지 않았다, 기름이 떡처럼 앉은 경우가 아니고는. 엔간히 기름묻은 것은 종이 타올이나 휴지로 닦아내고 뜨거운 물로 그냥 씻었다. 남들에게는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세제로 오염되어 하이타이 잘 풀어놓은 것처럼 거품이 하나 가득한 한강물을 본 이후로 나 하나라도 세제를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안 쓴다고 그럴듯하게 이야기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흐르는 물로 빠닥빠닥 씻으려고 해도 퐁퐁의 미끈거리는 감촉이 영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 싫어서이기도 했다, 차라리 뜨거운 물에 기름을 녹이는 것이 더 개운하고.

여기서는 싱크대에 물을 받아놓고 퐁퐁을 풀고 그릇을 수세미나 스폰지가 아닌 손잡이가 긴 솔로 닦는다. 그릇을 물 속에서 건져서 솔로 대충 한 두번 문지르고 옆에 꺼내 놓으면 다른 사람이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못 할게 없지 싶어 내가 처음으로 설겆이 돕겠다고 부엌에 들어간 날, 나랑 친한 에릭 할아버지가 너 정말 할 수 있냐고 마른 행주질이나 하라고 한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내가 나보다 적어도 30, 40년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설겆이 물에 손을 담그는 것을 볼 수가 있나, 내가 아예 부엌에 안 들어왔으면 몰라도. 씩씩하게 "No problem"이라고 대답하고는 싱크대에 물을 받았다. 손이 너무 뜨겁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물 찬 물 섞어서. 그런데 할아버지가 보고 웃었다. 뜨거운 물을 더 많이 받으라고. 스폰지가 아니라 손잡이가 긴 솔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거의 손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 퐁퐁 물에 그릇을 담가 닦으니까 되도록이면 손에 물이 닿지 않게 할려고.

그렇게 뜨거운 물로 닦으니 그릇은 마른 행주가 닿기 전에 벌써 반쯤 바싹 말랐다, 이런 방식의 설겆이는 둘 이상이 함께 해야 효과적이다. 그릇을 꺼내는 즉시 퐁퐁 물기를 닦아내야 하니까, 혼자서 하려면 그릇이 식고 물기도 완전히 닦아내기가 어렵다. 물론 미지근한 물로 해도 마찬가지로 물기를 바싹 닦기가 어렵고. 그리고 퐁퐁 물에 그릇을 넣기 전에 물로 거의 깨끗하게 헹구어서 집어넣기 때문에 물도 더러워지지 않는다. 행주가 조금만 축축해져도 새 마른 행주로 갈아쓰기 때문에 마른 행주가 많아야 하는 귀찮음은 있지만.

내가 설겆이를 해보기 전에는 교회에서 차를 마실 때 퐁퐁 물로 닦아 깨끗한 물로 헹구지도 않은 찻잔에 마시는 거라고 속으로 찜찜해했는데 이젠 별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우리 식으로 퐁퐁을 수세미에 묻혀 찬물에 설겆이하는 이웃 한국 사람의 설겆이 방식이 퐁퐁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우리 집에서 함께 이웃과 식사를 할 때 이웃이 설겆이를 해주겠다고 해도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린다.

왜냐, 찬 물에 적신 스폰지에 퐁퐁 묻혀서 그릇을 닦으면 거품이 안 나고 미끈거리는데, 그 미끈거림이 아무리 헹궈도 서울서나 마찬가지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뜨거운 퐁퐁 물로 씻어 다시 우리 식으로 흐르는 찬 물에 헹구어 건져놓고 마른 행주질은 안 하는 식으로 두 방법을 절충하고 있지만.

그래서 나도 이제는 퐁퐁을 많이 쓴다,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퐁퐁 넣고 뜨거운 물 좍좍 틀어 거품이 가득 차지 않은 물에 그릇을 씻으면 영 제대로 씻은 것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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