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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그런 사람은...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4>

몇 해 전에 여자 장관이 사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음주운전에 걸렸기 때문이다.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혼자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이다. 한 잔 두 잔 먹다 보니 음주측정 한도량이 넘었는데 집에 돌아가다가 경찰에 걸린 것이다. 능력있는 장관이었는데 이틀 후 사임했다. 우리는 동정을 했다. 음주운전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게 밤늦게까지 장관이 일하다니, 그리고 포도주를 마셨더라도 운전기사가 있었더라면 음주측정에 걸릴 일이 아예 없었을 텐데. 그렇지만 경찰도 대단하네, 장관이라고 봐주지 않고 음주측정하다니, 이 나라 경찰은 관용차 번호도 모르나 하면서.

이 나라 공무원이 깨끗하기로 세계 몇 위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러니 경찰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음주측정에 걸린 한국인 이민자가 우리 식으로 경찰에게 돈을 주었다가 오히려 그 일로 인한 죄목까지 추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통하지 않는 것이 우리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이야기거리로 오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경찰에 대해서. 어느 세상이든, 어디든 그런 사람은 다 있게 마련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인데.

이민 온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침에 나간 남편이 몇 시간 안 되어 돌아왔다. 차사고가 난 것이다. 모터웨이(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을 가는데 옆 길에서 차가 하나 튀어나왔단다. 그 차는 잘못 튀어나온 것에 놀랐는지 서버렸고, 남편은 반대 편에서 오는 차를 피해 인도 쪽으로 차를 꺾어 피하려고 했으나 그 차 뒤를 박았다고 한다. 그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했고, 경찰 차가 와서 그 경관도 남편보고 잘못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단다.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견인차 운전수는 일거리가 생겼다고 서 있었지만 둘 다 AA 멤버라 그 견인차를 이용할 일은 없었고.

한 달도 더 지난 어느 새벽에 현관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나가니 경찰이 서 있어서 더 놀랐다. 경찰이 뭔가를 내밀며 소환장이라고 하는 데는 기절할 일이었다. 웬 소환장? 차사고 때문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펴보니 남편에게 법원에 출두하라는 통지였다. 부주의한 운전 혐의로.

기가 막혀하면서 남편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설명을 들은 변호사는 경찰에 편지를 써서 항의를 했지만 경찰은 끄떡을 안 했다. 법원에 가야 할 날짜는 다가오고 억울해하다가 남편은 그 때 상황에 대한 증인이 있음을 기억해내었다. 건수 올릴까 하고 옆에서 기다리던 그 견인차 운전사가 증인이 필요하면 증인 서주겠고 명함을 주었단다.

증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는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증인을 요청하라고 했고, 남편은 견인차 운전수는 사고난 현장에 빨리 가야 하니까 혹시 경찰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경찰에 불리한 증인을 해 줄지 염려를 하면서도 연락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운전수는 그 사건을 기억할 뿐 아니라 증인을 서주겠다고 쉽게 응락을 했다.

증인이 증언하겠다는 말을 들은 변호사는 우리에게 그 현장의 증인이 있음을 알리는 편지를 경찰에 보냈고, 그 편지를 받자마자 경찰은 고소를 취하했다. 우리에게 믿지 못할 경찰이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는. 남편이 사고 직후에 한 이야기로는 상대편 차를 운전한 서람은 비지니스맨 같이 보였고 점잖았으며 차도 좋은 차였다고 한다.

몇 년 뒤 비가 부슬거리는 날 친구 집에 놀러갔다. 주차에 자신없어 어디를 가나 늘 널찍한 공간에 차를 세워놓고 걸어다니는 나는 처음 가는 그 집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갈 마음이 전혀 없어서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들어갔다. 얼마 지나 누군가 그 집 문을 두드리며 혹시 그 집 앞 길가에 차를 세워놓지 않았냐고 묻자 친구가 혹시 내 차가 아닌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문밖에 서서 미안하다고 자기가 내 차를 박았다고, 비가 오고 있어서 창에 김이 서려 차뒷창이 잘 안 보여서 그랬노라고 하면서 명함을 주었다. 어느 전기설비회사의 직원이었다.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에 더구나 비까지 내려 그 일을 보았을 사람이 있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이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나를 찾았을 뿐이라고 느껴지자 고마운 마음과 함께 그 사람의 차는 회사 차던데 이런 일로 회사에서 곤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들었었다.

이 일은 몇 년 전 경찰까지 불신하게 만들었던 사건의 쓰라림이 엷어지게 만들었다. 또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잖아 보여도 일을 왜곡시키는 사람, 가진 것이 많아도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 그런가 하면 어리숙하게 한없이 정직한 사람, 이리 저리 잴 줄 모르는 사람,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화나는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기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여기나 거기나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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