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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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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도덕

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23>

우리 집 근처 교회에서 운영하는 크리스챤 북 센터가 있다. 그 책방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나이많은 분들이 주로 일을 하고 있다. 그 중 한 분은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원봉사했던 초등학교 성경공부 선생님이다. 그 아주머니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젊어보이니까)의 보조교사였다, 내가.

그 분이 책방에서 한 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다시 카운터에 나타났다.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면서 자기가 한국에 가보았다고 했다. 어디를 갔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사실은 그 동안 영국에 다녀왔는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꿔타느라 몇 시간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종도 공항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를 신나게 설명해주었다, 그 공항이 문을 열기 6개월 전에 서울에 갔다와서 그 공항을 못 보았다는 나의 말에 아쉬워하면서.

그 규모와 유리창 벽에 대한 감탄에 이어 그 분이 가장 감동받은 시설은 사실 화장실이었다. 같이 가던 다른 아주머니가 화장실을 갔다오더니 그 분 보고 화장실을 가보라고 하더란다. 그리고 화장실 벽에 있는 에티켓 버튼을 반드시 눌러보라는 말과 함께. 그래서 그대로 버튼을 눌렀더니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더라는 것이다, 일보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그 분은 이야기하면서 웃고 나는 들으면서 웃었다. 그 분이 마지막으로 붙이는 말은 자기 남편은 아직 영국에서 돌아오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 영종도 공항에 들리면 꼭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 버튼을 눌러보라고 자기가 말했다는 것과 이 이야기를 내 남편에게도 반드시 해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뉴질랜드인을 즐겁게 만들어준 이 화장실 이야기를 남편에게 뿐 아니라 그 뒤 영어연수 온 조카에게도 했다. 그랬더니 조카 하는 말 남자화장실에는 그런 버튼이 없는데요. 그러고보니 남자는 작은 일 보기 위해 문닫고 들어갈 필요도 없으니까를 새삼 깨달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분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을 들어가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 이전보다는 많이 깨끗해졌어도 여전히 붐빌 뿐 아니라 그래서 깨끗할 틈이 없었던 화장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 곳은 공중 화장실이 무척 깨끗하다, 우리가 아직 공중 도덕심이 부족하다는 교훈을 들을 때마다 예화로 듣던 대로, 어디를 가든. 깊은 산속이나 또는 물이 별로 없는 곳이나 수세식 화장실이 아닐지라도 깨끗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깨끗치 않은 화장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몰려드는데 관리하는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한 시간에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는 화장실이 가끔 있다, 바닷가 같은 곳에 있는. 그러니까 우리도 공중도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아 아니면 그 많은 사람에 비해 화장실이 절대 부족해서 화장실이 깨끗치 않은 것이고, 깨끗케 유지하기도 상당히 어려울 거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 오기 전에 이곳을 다녀온 분이 말한 것이 생각난다. 뉴질랜드 사람은 얼마나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지 바닷가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개가 실례를 하면 들고 간 비닐봉지에 그것을 싸가지고 간다고. 그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이민 오고 한 두 해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차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바닷가에서는 쉽게 개들이 실례하고 간 흔적들을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이나 저녁에 개 운동 시키러 나온 사람들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있는 것을 볼 수가 없어졌다. 그리고 나더니 바닷가마다 시에서 만든 경고판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No dogs! 바닷가에 개를 데리고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개를 어디서 운동시켜야 하나. 여전히 사람들은 경고판을 무시하고 개를 바닷가로 데리고 나왔다. 처벌없이 도덕심에 호소하는 경고는 서울이나 여기나 마찬가지다, 무시되는 것이.

그 사이 그 경고와는 직접 상관관계가 없지만 개의 오물 때문에 이웃끼리 싸움이 붙은 일이 저녁 뉴스시간에 나왔다. 어떤 개가 어느 한 집 마당에만 가서 실례를 하기 때문에 화가 난 그 마당 주인이 그 오물들을 모아다 그 개 주인 집 마당에다 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시티 카운슬에 호소했다, 자기 집 마당에 그 개가 들어올 수 없도록 해달라고. 이 일은 나도 가끔 당하는 바다. 우리 집에 울타리가 없고 나무들만 울 대신 서있기 때문에.

어쨌거나 개접근 금지의 경고판이 몇 년 무시를 당하더니 그 경고판이 사라졌다. 대신 세워진 것은 긴 막대 위에 네모난 새장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는 비닐봉지가 가득 들어있고.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어느 날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 바닷가 입구에서 그 봉지를 꺼내는 것을 보면서 개 오물 수거 비닐봉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비닐봉지 든 사람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 비닐봉지는 누가 채워넣나, 이런 것까지 시에서 사람사서 시키나. 다시 며칠 후 바닷가를 나갔다가 궁금증이 풀렸다. 어떤 아주머니가 개를 데리고 나왔는데, 비닐봉지를 한 봉지 들고 나와 그 안에다 채워넣는 것이었다, 물론 자기가 쓸 한 봉지는 남기고.

내가 개를 키운다고 가정을 하고 바닷가에 갈 때마다 비닐봉지를 가져갔겠는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라 해도 가끔 잊어버리고 가지고 말란 법은 없을 거다. 그럴 경우 경고판은 아무 소용없다, 나의 양심에 걸림돌은 되어도. 비닐봉지를 넣어두는 통이 있으니 잊어버리고 바닷가에 나가도 그 통을 보는 순간 마음 편히 한 장 꺼내 들면 되고 또 기억나는 때는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많이 들고 나가 넣어두고. 좋은 제도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분좋게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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