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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의 뉴질랜드 이민일기 <19> 학교이야기 3

이 곳 선생님에 대하여 모두 즐거운 기억만 있느냐, 그건 아니다. 이 곳에 온 지 두 해가 지나 아이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미술이 전공인 분이었다.

뉴질랜드에는 교과서가 없다. 그것이 이곳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처음 놀라는 일이다. 노트 몇 권과 연필 한 두 자루만 들고 다니면 된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나름으로 학습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이 구입하게 하지만 우리 개념의 교과서는 없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보다는 먹을 것이다. 1시에 먹는 점심 말고도 10시 반에 모닝 티 라고 우리로 말하자면 간식 먹는 시간이 있다. 먹을 것만 확실하게 챙겨주면 교과서 빼뜨려먹고 갔는지 준비물 잊어버리고 갔는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에서 다 주니까, 아니 주는 게 아니라 학교에 다 있어서 사용하고 그 자리에 놓고 오면 된다, 크레파스까지도. 교과서가 없으니 배우는 것도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배울 것을 배우지만 선생님의 취향에 따라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각이다. 이 선생님 반에서는 하루도 미술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년 내내 무엇인가 명분을 만들어 손바닥만한 크기의 상장을 주고 그것이 5개 모이면 Gold Certificate 라고 보통 상장보다는 약간 큰 황금 빛나는 상장을 주었다. 상장이 공부를 잘 해서만 주는 것도 아니고 거의 골고루 일년 내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셈이었다. 물론 공부 잘 하고 선생님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먼저 받기 시작하지만 일년이 끝나도 그 금색 종이를 받지 못하는 아이는 한 반에서 한 두명 있을까 말까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막무가내로 선생님을 괴롭히지 않는 한 누구나 다 받는 종이였는데, 우리 아이가 그것을 그 해에 받지 못했다. 학년이 다 되어 가는데, 자기는 아직 5개를 못 모았다고 한탄하는 아이를 보면서 속이 상했지만 아직 몇 주 남았으니 한 개만 더 받으면 되잖아 위로를 했었는데(한 주에 한 번씩 나눠준다, 한 번에 한 아이에게만 주는 것은 아니다), 끝내 그 한 장을 더 받지 못해 황금 종이와 바꾸지를 못했다.

그 해에 그 반에서 그 황금종이를 두 개 받고도 그냥 상장을 몇 개 더 받은 아이가 있었다. 같은 한국 아이였는데, 미술을 잘 했다, 미대 나온 엄마 닮아서. 거기까지는 내가 인정을 해 줄 수 있는데, 그 엄마가 미안해 하면서 설명하는 말이 그 아이가 담임 선생님에게 미술 과외를 한다는 거였다. 면담시간에 과외 활동 하는 것 없냐고 해서 동네 아트 센터에 다닌다고 하니까 자기에게 과외하지 않겠냐고 해서 할 수 없이 시킨다는 거였다. 아트 센터 등록비의 몇 배나 주면서, 그만 두고 싶어도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열이 났다. 학년 마지막 주에는 짧은 영어로라도 가서 따질까, 왜 우리 아이에게 안 주는가를 물어볼 뻔 했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불공평하게 느끼는 것을 알아듣게 설명하느라고 애를 썼었는데,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다시 설명하기가 구차했다. 몇 년 지나 우연히 그 때 일을 아이와 이야기했다. 내 마음이 그랬었다는 것을 들은 아이가 하는 말, 엄마가 안 그러길 잘했어, 내가 선생님께 따졌거든, 왜 그 애만 자꾸 주냐고. 그랬니? 그랬더니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데? 잘 하니까 주는 거라는데, 뭐라고 더 말을 하겠어, 그렇지만 애들은 다 알거든, 그래서 아이들이 그 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Teacher's pet 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 아이가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당하지 않게 편애를 하는 것을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이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내 아이가 선생님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 놀라왔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하두 말이 없어 집안에 문제있는 아이같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자기가 부당하다고 느낀 것을 선생님께 말을 했다니, 그런 말을 해서 끝까지 한 장을 더 못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물어볼 수도 없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선생님에게 어쩌면 고마와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사족으로 우리 아이는 그 다음 해 중학교에서 판화를 잘 만들고 찍어서, 미술 선생님이 그것을 오클랜드 시 전역에서 뽑힌 중학생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에 보냈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세종문화회관 같은 아오테아 센터에 걸린 아이의 작품을 보려고 남편과 나는 자랑스레 관람을 갔고 나중에 그 작품을 학교 기금을 만들기 위한 학교 전시회에서 음악 선생님이 사는 바람에 우리 방에는 다른 판본이 걸려있다. 그래서 아이는 상관안했는데 나 혼자 모성을 발휘하며 상처받았던 마음이 조금 위로를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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