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오늘 밤 10시 강남 역삼동 서진 룸살롱에서 일어난 조폭들의 집단 살인사건은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폭력배들이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야 그들의 전공이지만 그러면서도 살인까지는 이르지 않는 것도 전문가인 그들의 장기 같은 것이었는데 회칼로 4명이나 난도질해 죽인 것이 우선 그랬다.
그것이 군사정권에서, 특히 5공에서 일어난 것도 놀랍고 민망한 일이었다. 5공은 깡패들을 붙들어다 실시한 ‘삼청교육’을 건국신화로 해서 태어났기에 폭력배란 구경도 할 수 없어야 하나 그들은 사라지기는커녕 이정재의 자유당 시절보다 더 업그레이드돼 있었던 것이다. ‘의리’니 뭐니 하는 케케묵은 용어들을 삭제하고 ‘잔인’과 ‘속전속결’을 입력시킨 것이 그렇다.
이 사건으로 한때 세상이 떠들썩했으나 조폭들이 사라지기는커녕 계속 발전한 것은 물론이다. 하긴 5공만이 아니라 5.16때도 폭력배들은 쿠데타의 구색과 명분을 위한 희생양으로 곤욕을 치렀으나 계속 살아 남지 않았던가.
당시 조무래기 폭력배들은 닥치는 대로 끌려가 거리를 행진하거나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4.19 때의 폭력으로 구속돼 있던 두목 이정재는 감옥에서 끌려 나와 “이제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글을 등에 달고 그 행진에 앞장서는 등 쿠데타를 장식하는 데 최대한 이용됐으나 결국은 사형을 받고 말았다.
자유당시절 천하를 떨게 했던 폭력배 두목이 그처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해도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죽여버렸으나 폭력배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덕에 전두환도 폭력추방이라는 20년 전의 깃발을 다시 써먹을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삼청교육으로 폭력배가 사라지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서진 룸살롱 사건은 새삼 놀라웠다. 당시 그들이 갖고 있던 일본도나 회칼 등 장비와 그 잔인한 수법은 전에 볼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87년의 민주화 국면에서 야당의 창당사건을 방해한 용팔이 사건은 한국 폭력조직의 존재이유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군사독재는 군대라는 무력조직에다 고문을 하는 특수기관도 있어 폭력배가 필요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횟집에 여러 가지 회칼이 있어야 하듯 정권이 부리는 폭력도 여러 가지가 있을수록 좋아서다. 폭력배가 야당 당원을 가장해 야당을 파괴시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따라서 폭력배들은 그 뒤 6공의 '범죄와의 전쟁'을 견뎌내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마피아가 80년대 이후 계속 위축돼 사라지거나 동네 깡패 수준으로 남아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의 경우 폭력배들이 완전히 기업화돼 있고 따라서 정치권과의 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날은 정치권에서 이들을 이삿짐 센터처럼 동원했으나 이제 그들은 정치인과 협상하는 상시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폭력배들을 무서워하면서도 이들을 숭상해 방송의‘야인시대’는 전성시대를 구가하면서 온갖 우스개 소리를 다 만들어 내고 있다. ‘항일 깡패’ ‘정의의 폭력’ …등.
그런 말이 통용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라면 폭력배로 인해 받는 손실도 크게 억울할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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