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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民 그리고 人口/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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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民 그리고 人口/8월 13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82>

중국의 1가구 1자녀 운동이 다소 누그러질 기미다. 무서운 인구증가율이 대도시에서는 떨어지고 있어서다. 대만의 일간지 중국시보가 지난 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베이징의 경우 조건에 따라 1가구 2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조건이란 자녀가 질병이나 사고로 노동력이 없어지거나 사망하는 경우다. 고작 베이징에서 그것도 하나뿐인 아들이나 딸이 죽거나 폐인이 돼야 아이를 하나 더 낳을 수 있게 됐다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다소 숨통이 터지는 분위기다.

1979년 오늘 도입된 이 산아제한은 농경문화에 젖어온 중국사회에는 너무 이질적인 것이었다. 남자로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중국인들의 관념은 공산치하 30년에도 바뀌지 않았기에 그 하나뿐인 자녀가 딸이면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둘째 아이를 낳았다가는 20개월 분의 임금인 1만 위안(100만 원)의 사회부양비라는 벌금을 내는 데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식량배급도 중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어기고 낳은 아이들은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헤이하이쯔’(黑孩子)로 불리운다.‘검은 돈’이라는 말처럼 ‘검은 자식’인 것이다. 이들은 호적에 오르지 않았기에 학교의 학적에도 오를 수 없어 문맹이 되는 등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데 그 숫자가 4천5백만으로 한국의 인구와 맞먹으니 문제다.

원래 마오쩌둥은 인구 문제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에게 ‘인구’는 ‘인민’과 비슷한 것이었고 그에게 인민은 반가운 존재였다. “인민은 물이고 게릴라는 물고기”라면 그 물이 많을수록 물고기는 좋은 것이다. 그가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고 비웃은 데는 미국의 첨단과무기와는 또 다른 인적자산을 믿어서였다. 그는 또한 인구가 많아도 사회의 특수층(자본가)이 착취를 하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다는 마르크시즘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마오 아래의 실무자들에게 ‘인구’는 해방전쟁에서 목숨을 바치던 인민이 아니라 뭔가 먹을 것만 달라고 보채는 입으로 보였다. 그래서 여러 차례 산아제한을 해왔으나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등의 변수가 가로막혀 진척이 없다가 마오가 죽자 본격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산아제한이 20여년만에 완화된 것은 베이징의 인구증가율이 0.9%로 줄어들어서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도시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 역사가 또 한번 전환됨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면 ‘인구대국’이라는 말이 떠오르나 중국의 역사를 통해 인구가 1억을 넘은 것은 불과 몇 세기전이다. 명나라 말기라는 말도 있고 청나라 시대라는 말도 있다. 그 이전의 인구는 진나라 시대의 5,6천만 인구가 전쟁과 평화에 따라 오르내렸을 뿐이다.‘삼국지’의 영웅들이 각축을 벌이던 직후에는 8백만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명나라와 누루하치의 군대가 오랜 세월 산해관에서 대치하며 공방을 벌일 때 적진에 쳐들어가는 쪽이 가장 욕심내는 전리품은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중국은 역사적으로 땅에 비해 사람이 귀한 나라였고 그것은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거꾸로 중국이 영토에 비해 인구가 더 많아 땅을 욕심냈더라면 역사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다 근대에 와서 의학과 생활환경이 발전되자 인구가 13억으로 수직상승했으나 그 근대화가 더 진전되자 도시의 인가증가율이 떨어지는 등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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