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물(納凉物) : 살아있는 사람보다 덜 무서운 유령들의 재롱**
살아있는 사람보다 덜 무서운 유령, 귀신 등의 재롱을 보며 더위를 식히겠다고 만든 영화 비디오 또는 그 비슷한 것들.
19세기 독일 시인 하이네가 그랬다던가. “유령은 사람이 그들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정말이지 세상에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래도 이 땅의 조상들은 고전적 한국 귀신들을 무서워한 것 같다.
고전적 한국 귀신들이 총동원된 시인 백석(白石)의 시 한 편을 보자.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귀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귀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뚜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 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귀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귀신
나는 고만 질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귀신
마을은 온데간데 귀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이들 고전적 귀신들이 지금은 모두 살아있는 귀신들로 둔갑한 것인지. 이 땅엔 핵(核)귀신 하나 둘러싸고 국내외로 서로 ‘날 각’들 세우는 수많은 패거리 귀신들이 ‘맨천’으로 설치고 있으니 정말 “나는 이 땅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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