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독립혁명을 둘러싸고 일어난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미서전쟁)이 1898년 오늘 스페인의 패배로 끝난다. 이에 따라 12월 10일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담 결과 스페인은 전쟁배상금으로 미국에 푸에리토리코와 괌을 할양하는 한편 필리핀도 200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넘기게 된다. 쿠바를 독립시킨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한때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 제국주의는 마지막 유산마저 까먹은 셈이다. 16세기에는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함으로써 스페인의 제국주의는 기가 꺾이더니 19세기말에는 또 다른 앵글로색슨의 나라에 당해 미주와 아시아의 마지막 거점마저 잃은 채 유럽의 서쪽 끝 서반아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거꾸로 미국은 19세기말에 이미 오늘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할 수 있는 ‘준비된 대국’이 돼 있었다. 달리 말해 미국의 19세기는 고립주의적인 먼로주의로 시작해서 ‘미국식 평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팽창주의로 끝난다. 그러는 사이 대서양연안에만 자리하던 이 나라는 ‘아시아 국가’를 겸하게 됐다.
미서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모습도 오늘의 그것과 비슷하다. 스페인의 학정에 저항하여 1895년부터 시작된 쿠바인의 혁명을 지지한 것도 후세인의 압제에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을 걱정하는 식이었다. 쿠바에서는 1868년과 1878년에도 혁명이 일어났으나 그 때는 먼로주의를 내세우며 모른 체 하던 미국이 이 때는 혁명에 동조한 것도 그렇다. 세계의 수많은 폭압정권을 모른 체 하면서도 유독 이라크의 독재에는 놀란 표정을 짓는 식이다.
이라크에서 석유가 나오듯 쿠바에서는 설탕이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다만 쿠바의 설탕과 혁명이 미국에 미치는 이해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 종전의 혁명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혁명은 고사했다.
보다 비슷한 것은 언론이다. 많은 미국신문들이 후세인 압제로 신음하는 국민들의 참상을 보도함으로써 전쟁을 부추겼듯 미서전쟁도 신문재벌 윌리엄 허스트가 북치고 장구쳐 ‘허스트 전쟁’이라는 말이 있다.
허스트의 ‘저널 아메리칸’은 1898년 1월 미국주재 스페인 공사 데 로메가 미국 대통령 매킨리를 비난하는 사신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더니 다음 달에는 미국 교민의 보호를 위해 아바나에 파견된 미군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사고로 침몰하자 ‘메인호를 잊지 말자’고 연일 다그쳤다.
메인호 사건은 쿠바 혁명세력이 미국의 개입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으켰다는 것이 정설이나 허스트는 범인이 스페인이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 끝에 4월 20일 의회가 선전포고를 하자 그는 1면 전체를 ‘WAR'(전쟁)라는 세 글자로 채웠다.
허스트는 사실상 전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를 연장시킨 방증이 있다. 그가 미서전쟁에 파견한 화가 레밍턴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그것이다. 레밍턴은 전쟁이 거의 끝나 본사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허스트는 “당신은 그곳에서 계속 그림을 대시오. 전쟁은 내가 이곳에서 계속 대겠소”하며 불허했던 것이다.
그처럼 전쟁을 대는 미국 언론이 최근 들어 한반도 쪽을 자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오싹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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