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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川英治에서 황석영까지/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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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川英治에서 황석영까지/8월 11일

梁平의 '그 해 오늘은' <80>

1892년 오늘 태어난 일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라면 대부분은 검객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더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작품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그가 집필한 ‘삼국지’다. 그것을 간접적으로라도 읽지 않는 이는 드물다.

소설을 읽기가 부담스러워 고우영의 극화 ‘삼국지’를 읽어도 원본은 그것이다. 실은 지난날 다른 소설가들이 쓴 삼국지에서도 그의 작품이 냄새로 배어 있었다. 원산지인 중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한 그의 삼국지는 우리의 삼국지 문화에 가장 넓고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지난날 흔히 있었던 ‘여포’라는 별명이 그렇다. 그 ‘여포’는 성이 여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한결같이 뚱뚱했다. 그러나 원래는 날씬한 미남인 여포가 뚱뚱이로 둔갑하게 된 것은 6.25 직후 학생 잡지인 ‘학원’에 연재된 김용환의 ‘코주부 삼국지’ 때문이다. 김용환은 여포의 됨됨이가 미워서인지 그를 뚱보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쓰던 방천화극이라는 멋진 무기도 빼앗고 대신 무지막지한 도깨비 방망이를 들려주었고 그래서 여포는 뚱뚱이의 대명사 같이 된 것이다.

그런 엉뚱한 대목이 있지만 김용환의 그 만화도 요시카와의 삼국지를 대본으로 한 것이다. 첫머리에서 유비가 차를 사러 가다 황건적을 만나 봉변을 당하는 부분은 코주부의 도깨비 방망이처럼 요시카와가 지어낸 거짓말이다.

당시 피난지인 대구에서 그 만화를 열심히 읽었다는 황석영이 최근 ‘삼국지’ 10권을 내놔 여름 독서가에 열기를 달구고 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10권으로 내 논 이 전집은 작가의 비중 때문인지 지난 6월 15일부터 인터넷 예약에서 보름만에 24만 권이 팔려 새삼 ‘삼국지’시장의 무한함을 실감하게 했다. 88년부터 이문열의 삼국지가 저인망으로 훑듯 천만 권이나 팔려도 엄청난 독자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석영의 ‘삼국지’가 몰고 온 진짜 화제는 그런 독서시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이문열의 아성 같은 ‘삼국지’에 황석영이 뛰어든 점이다. 이문열이 한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황석영은 지난해 계간 ‘문학인’이 바로 문인과 문학관련자 109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두 작가의 비중이 커서만은 아니다.

이문열이 보수세력의 간판 격인 작가라면 황석영은 진보적 문인 사회의 ‘장길산’ 같은 존재다. 이문열이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평생 심사위원이라면 황석영은 자신이 동인문학상 수상 후보로 오르자 그것마저 거절한 것이 그런 것이다. 상을 주는 주체인 조선일보의 친일적이고 친파쇼적인 논조가 그 이유였다.

따라서 삼국지 식으로라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장비와 여포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 합을 싸웠을 것이나 문인들이기 때문에 정면대결을 벌인 적은 없다. 다만 황석영이 동인문학상과 관련해 쓴 글은 간접적으로 이문열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

그러던 두 사람이 이제는 삼국지 시장에서 직접 붙게 됐다. 지금까지 삼국지는 박종화와 박태원을 시작으로 정비석 김동리 조성기 김홍신 등 수많은 작가들이 썼으나 오늘의 시점에서는 이들 두 작가의 비중이 발군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싸움은 '삼국지‘ 같지 않고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맞붙은 ’초한전‘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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